“기준 맞출 수도, 급성기 전환하기도 어렵다” 한숨…요양병원협회, 재활병동제 도입 요구

재활의료기관 지정 기준을 공개되면서 요양병원들의 기대는 한순간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특정 몇몇 의료기관을 위한 기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4일 설명회를 열고 1기 재활의료기관 지정 기준을 공개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3명(수도권 이외 지역은 2명) 이상이어야 하고 1인당 입원환자는 40명 이하여야 한다. 그 외 인력 1인당 입원환자 수는 간호사 6명 이하, 물리치료사 9명 이하, 작업치료사 12명 이하다.

특히 전체 입원환자 중 회복기 재활 환자 비율이 40% 이상이어야 한다.

재활의료기관 지정을 준비하고 있던 요양병원들은 “기준을 맞출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요양병원 이사장은 “그동안 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대한요양병원협회가 공론화에 나섰다.

요양병원협회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협회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요양병원이 급성기병원으로 전환해 재활의료기관으로 지정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병상 간 이격거리 1.5m, 4인실 이하 등 급성기병원 시설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요양병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급성기병원으로 전환하려는 요양병원은 주차장 면적도 기존보다 2배 확장해야 한다.

요양병원을 급성기병원으로 분리 개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재활의료기관 지정을 위해 급성기병원을 분리 개설한다고 해도 진료실, 검사실, 방사선실 등을 추가로 설치해야 해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의료법인이 아니면 이중개설금지법(의료법 제33조 8항) 때문에 요양병원을 급성기병원으로 분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대한요양병원협회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협회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재활의료기관 지정 기준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요양병원은 참여할 수 없는 구조” 한숨

김철준 재활위원장(대전웰니스병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양병원이 급성기병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준을 충족해 전환한다고 해도 지방 요양병원들은 의료인 구인난, 재활환자 비율 등으로 재활의료기관 지정이 힘들다”며 “장기적으로 요양병원에서 하는 재활치료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결국 피해는 환자들이 입는다”고 비판했다.

차승식 감사(웰시티요양병원 이사장)는 “재활의료기관 지정 사업에 참여하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참여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요양병원은 회복기와 유지기를 같이 할 수 있다. 그런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재활 인프라의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재활의료 전달체계도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손덕현 회장(이손요양병원장)은 “정부는 재활의료기관 30개소 정도를 지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정도로 회복기재활의료체계가 전국적으로 구축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현 상황에서 정부가 재활의료기관 지정사업을 강행하면 회복기재활병원이 대도시에만 집중돼 시군구 지역 환자들은 재활난민으로 전락하고 더 많은 의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활의료기관 지정 아닌 병동제 도입 요구

손덕현 요양병원협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재활의료기관 지정제가 아닌 재활병동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양병원협회는 기존부터 요구해온 재활병동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종별을 전환해야 하는 재활의료기관 지정제가 아닌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일부만 재활병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요양병원이 구축해 놓은 회복기재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병동제의 장점이라고 했다.

요양병원협회에 따르면 현재 요양병원에는 전체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25%인 563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물리치료사는 전체의 19%인 7,107명이 상근하고 있다. 전문재활치료를 하는 요양병원도 366개소다.

손 회장은 “요양병원은 현재 병동제 방식으로 재활, 호스피스, 치매, 암 등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비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상황에서 최적의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요양병원이 회복기재활을 충실히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전문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재활 심사기준과 수가 구조가 급성기병원과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이라며 “급성기병원과 재활기준 등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활의료기관 지정 기준 완화는 환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손 회장은 “인력 기준 등을 완화하면 요양병원과 재활의료기관이 다른 점이 뭐가 있겠느냐. 극히 일부 요양병원들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환자 중심의 재활의료 전달체계 마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유일한 대안은 병동제 방식의 회복기재활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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