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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미래의학 성장 동력, 전공의 교육의 변화에서 찾아야

기사승인 2019.08.12  12: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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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지난 4월에 16년 만에 개최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학술대회에서 다뤄진 큰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전공의교육’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전공의 교육 분야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교육평가 인증에 관한 내용과 선진화된 전공의 교육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제도를 본 받아 전공의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규정하는 전공의 법을 만들어 각 수련병원들에 대해 규정 준수를 엄중히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혹독한 전공의 과정 인권 유린 사례, 세계 의학계 도마 위에 올라

반면 유럽은 전공의도 일반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주 48시간의 근무를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몇 해 전 프랑스 인턴 근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여 유럽연합 인권위원회로부터 지적을 받아 시정 조치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의학교육연합회 실행위원회에서는 전공의대표(Junior Doctors Network)가 한국과 타이완의 혹독한 전공의 근무실상을 도마 위에 올려 세계적으로 규탄(?)에 나선 적이 있다. 두 나라의 경우 주당 100 시간을 초과하는 가혹한 근무 형태를 유지하는 국가들로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 차원에서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마도 이는 우리나라 전공의대표가 국제적인 전공의 모임을 통해 발표했던 내용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80시간 근무가 법으로 규정되기 시작했을 때 일부 교수들은 외과 계열의 경우 절대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는 어떻게 48시간으로 교육이 가능했던 것일까.

미국도 과거 80시간제로 전환, 성과 위주 역량바탕 교육으로 진화 발전

미국은 과거 80시간 근무에 맞는 교육환경 개선을 우선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명확한 체계와 구조가 없는 과거 방식의 일정한 시간적 개념에 의존하던 ‘시간제 교육(Time based education)’에서 교육의 결과와 성과를 중시하는 ‘성과 위주의 교육(Outcome based education)’으로 전공의 교육에 대한 개념과 시각의 틀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당시 파격적이었을 만큼 성과바탕교육은 일반 교육학에서 도입한 개념이었고, 이는 의학적 교육의 맥락에서 역량바탕교육(Competency Based Education)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적절한 네이밍으로 설정되면서 오늘날 체계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캐나다의학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는 전공의 교육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전체 전문의가 갖추어야 할 역량을 집대성하여 ‘CanMEDS’로 명명, 지난 30년 한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지난 2015년에는 최신판을 선보였으며, 이는 세계 의학계로부터 전공의 교육과 평가인증의 기본토대로 삼고 있다. 미국도 뒤질세라 소위 6 Competency Project(Outcome project)를 바탕으로 미국식 전공의 역량의 기본 얼개(Competency Framework)를 완성하여 현장 교육에 적용하고 있다.

주 80시간 전공의 수련방식은 도제식 교육 얼마든 싹틀 수 있는 환경

전공의 교육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북미와 우리나라, 그리고 48시간으로 규정하는 유럽의 전문의 역량은 어떻게 다를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주당 80시간 근무 형태는 주 5일간 매일 12시간 근무 하면서 주말에 추가로 20시간 근무를 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아직도 재래 방식의 도제식 교육이 얼마든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비해 주 48시간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과거의 도제식 교육은 이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존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전공의 교육에 대한 체계와 구조가 보다 명확하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시스템적으로 운영되고 유지되어야만 계획했던 교육목표와 일정을 무난히 소화해낼 수 있는 근무 형태인 것이다. 더구나 휴가기간도 도합 연 7주 정도가 된다고 하니,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역량으로 이런 것들을 모두 커버해낼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이런 이유에서 네덜란드는 종래의 능력 있는 전공의에게 교수를 대신하여 믿고 맡기는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여 ‘위임가능 전문 직무’(Entrusted Professional Activities)로 규정하고 직무마다 필요한 역량과 수준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위임가능 전문 직무 개발 역량별로 5단계 성취단계로 세분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전공의교육의 성장을 유아의 성장개념과 유사하게 최초의 단계인 관찰 수준의 초보과정에서 전적으로 옆에서 지켜보며 매우 제한된 저난이도의 직무수행과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여전히 감독 하에 직무수행 그리고 한 단계 더 발전하여 혼자서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준과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을 교육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모두 5단계로 나누어 전공의 역량 따른 성취단계를 세부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혼합하여 전공의가 갖고 있는 역량을 실시간으로 현장 평가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역량바탕교육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 전공의교육은 전공의 역량의 기본 틀과 함께 위임가능전문직무와 이정표(Milestone) 개념의 혼합된 양상으로 역량바탕 교육으로 새롭게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토론토대학 정형외과 영역의 시범 운영에서 나온 긍정적인 결과에 힘입어 캐나다의 나머지 임상 전문과목도 점차 모두 역량바탕 교육으로 일대 전환되고 있다. 이 같은 역량바탕 교육은 약 1년이라는 교육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명확히 증명된 것으로 의학교육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역량바탕교육의 이면에는 주기적이며 공정하고 엄격한 전공의 학습평가가 함께 동반돼야 가능하다는 단서가 따라 다닌다.

역량바탕 교육도 엄격한 학습평가 동반돼야 성공 가능

80시간 근무시간 변경을 위해 많은 수련교육기관은 전공의교육 시작 전 집체교육(boot camp)을 실시하고 이 기간에 1년차 전공의가 반드시 먼저 습득해야 하는 ‘필수 과정’을 만들어 교육하고 있다. 이런 제도는 종래의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에서는 전공의 1년차 후 점차로 정해지지 않은 기회에 습득했던 내용들을 전공의 시작 전 교육과정이 제도화되고 시스템적으로 안착을 유도하여 집체교육에서 효율적인 역량습득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필자는 1983년부터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전공의 과정을 밟았는데, 당시 외과계열에 소속한 모든 전공의는 첫 2년 동안 매주 화요일 오전 8시~10시 2년간의 일정에 따른 외과 공통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했고, 모든 전공의는 이 기간 동안 소속과의 통제가 아닌 외과의 교육과정에 따라 순환근무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6개월 마다 4회의 필기시험을 치르고, 2년 후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외과계 공통시험(Principle of Surgery)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전문의 고시 응시자격이 부여됐다. 성형, 정형, 신경, 심장, 흉부,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 모든 외과 계열의 전공의가 통과해야 하는 전문의 1차 관문의 시험이었던 것이다. 북미 지역에서 외과계 전공의 공통과정은 1950년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영국의 기본외과 훈련 3년 과정의 캐나다식 발전 모델로 추측된다.

캐나다 등 북미 지역 ‘외과 공통시험’ 패스해야 전문의 고시 치를 수 있어

공통수련이 끝나고 각자의 전공과목 교육으로 소속이 변경되며 또 다른 형태의 정규교육 과정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익숙하지 않는 ‘Academic Half Day’(혹은 ‘Resident Down Time’)로 명명되는 전공의를 위한 순수 정규수업 시간이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캐나다와 미국에서 이 과정을 밟도록 하는 전공의교육 과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개, 전공의교육 과정은 월례세미나, 학술지 초독회, 임상사례토론, 주별로 진행하는 주제별 학습 등으로 대부분 1시간 단위로 진행됐다. 우리나라 전공의도 이와 매우 유사한 방식이다.

이제 법정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으로 단축되면서 전공의 교육의 정규수업과정은 점차 내실을 기하는 방향에서 표준화되어 가고 있다. 주중 4시간의 근무시간을 이용하여 임상과별로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계획된 시간표대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교육을 위해 자료는 사전 배포를 원칙으로 토론을 이용한 교육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오전과 오후를 연결하여 연속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오후에는 시뮬레이션 또는 초음파기기 등 실제 기기를 이용한 실습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적 개념 전공의 교육체계 정착에 정부의 재정 지원은 필수

이런 전공의 교육의 구조화와 체계화를 위해서는 교육학 전공자나 전공의교육을 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병원별로 갖고 있는 수련교육과나 센터에 이러한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과 인력을 확보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갖추지 못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전공의교육의 단위가 일제가 물려준 의국제도로 구조화나 체계화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진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교육목표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라고 부탁해도 이러한 교육 체계와 교육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이는 교수진에 대한 역량개발의 숙제가 함께 맞물려 진행돼야 되는데, 개별 임상 교수 입장에서는 병원 측에서 압박하고 있는 수준의 임상업무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한데 별도로 시간을 빼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고, 여기에 교육에 종사하는 시간적 손실에 대한 기회비용의 부담이 그 어디에서도 충당되지 않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전공의교육에 대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전공의 교육비는 이제 어디에서인가 조달되어야 한다. 병원은 비영리체제 하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작동원리로 운영되고 우리나라 병원 경영자의 수준에서 전공의교육에 대한 필요성, 시급성, 당위성 등은 설득하기 쉽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나라 전공의 시험, 만능 수준 선진국과는 실전 역량에서 현격한 차이

한번쯤 북미에서 교육받은 본과 4년 학생과 우리나라에서 인턴과정을 수료한 1년차와 임상문제를 놓고 각자 서로의 접근 방식과 문제해결 역량을 관찰하고 측정해보았으면 한다. 솔직히 교육의 효율성 측면에서 북미에서 본과 3학년 실습만 마쳐도 겉으로 드러나는 임상적 실무 역량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나라 전공의 수준이면 어디서든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마주치는 실전역량에서 아직도 향상시켜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는 교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전공의 교육에서 교육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는 연차별 수련계획서는 얼핏 보면 매우 엄격한 규정을 요구하는 기준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모든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던 나라에서 법적 규정을 만들어 전공의교육에서 획득하여야 할 교육의 양적인 결과를 입증하는 자료로써 전문의시험 응시를 위한 ‘신임(credentials)자료’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런 방식을 당연하고 대단한 전공의교육과정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이런 방식이 과거 80년대 이후 20세기까지 통하고 성공했다 치더라도 첨단 과학과 4차 산업혁명이 서로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융, 복합으로 작용되는 21세기 전공의 교육에는 상당 부분 시대착오적인 제도라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나라 전공의 양성 3만 불 규모에 맞게 공적재원 역량중심으로 전환돼야

이제 전공의 교육은 역량바탕으로 전환되고, 주 80시간에 맞는 교육제도를 내실 있게 바꾸어야 하며 이에 필요한 재원 확보는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국민소득 300불 시절에 탄생한 전공의교육이 3만불 시대의 시대적 요구를 맞출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의국위주의 도제식 교육도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

과거 300불 시대에 절체절명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구국(救國)의 심정으로 의학계 스스로 양성해 낸 전근대적 전공의 교육 방식은 이제 3만 불 규모의 경제력에 걸맞게 선진국처럼 국가와 국민에게 질적인 의료로 보답하는 ‘사회 참여’ 형태로 일대 전환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낡은 사고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dsahn@korea.ac.kr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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