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이한결 홍보이사

의사수 부족으로 의료공백 문제가 제기되며 1979년 공중보건의사제도가 도입됐다. 그 이후 공중보건의사는 의료취약지에서 예방접종이나 단순 진료 등의 업무를 수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의사수 증가, 정보망 및 교통의 발달 등으로 인해 의료취약지는 현격히 감소했다.

더불어 전문의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공중보건의사 다수는 갓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일반의다. 지역사회 민간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진료 업무를 보건지소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또 하나의 이유다. 급속도로 변모하는 환경에서 이제는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에도 일정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중보건의사의 보건사업 참여가 중요함을 강조해왔다. 행정 중심으로 진행되던 보건사업에 의사가 참여함으로써 보건사업의 전문성과 효과를 높이자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공공보건의료정책과 배치되지 않는다.

현재 보건사업은 미흡한 공중보건학적 근거를 토대로 행정 편의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불분명한 기준으로 대상자를 특정해 시행되는 경우가 다수다. 튼튼한 기반과 단단한 기둥 위에 세워지지 않은 모래성이 쉬이 무너지듯 지역보건사업의 미흡한 기획과 부실한 집행은 결과적으로 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더욱이 역량 강화 요구에 직면한 보건소가 전문 인력을 발굴, 교육, 배치하는 일은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역학조사관 직역에서 급여 수준 등의 문제로 의사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감안할 때 지역보건법에 명시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보건소의 역량강화는 요원하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도모해야 할까.

지역사회 맞춤형 보건사업의 질을 높이는 첫 번째 단계로 대공협은 소규모 생활권에 이미 배치된, 의학적 지식을 갖춘 공중보건의사를 보건사업 기획, 조정, 평가 인력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보건교육사업안을 제시한다. 여타 직역의 기존 인력을 교육하는 것보다 의학적 지식을 함양하고 있고 보건소에서나 혹은 보건지소에서 각종 행정적 권한을 갖고 근무하는 의사 인력이 보건사업에 투입되는 경우 앞서 언급한 많은 어려움을 넘어 보건소와 지역사회의 역량 증진을 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공협은 보건교육사업에 초점을 맞춘 보건교육사업협의체를 꾸렸다. 보건교육사업협의체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공공의학회, 전국보건소장협의회 등이 함께 하기로 했다.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사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유관기관 및 단체가 협력하고자 한데 모인 것이다. 지역사회 건강증진을 위한 공중보건의사 자원의 활용 필요성에 대해 의료계와 복지부 모두가 오래도록 충분히 공감해온 만큼 이제는 복지부가 상기 협의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장이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본 협의체를 통해 의과 공중보건의사 보건사업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표준교육안이 마련되면 이후의 지역보건사업은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춘 공보의들이 사업에 주도적으로 관여해 지역맞춤형 보건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가 발굴, 공유, 확산되어 전국의 시군구 단위에서 실질적 효과를 나타내는 보건사업의 자생적 기획 및 집행이 상당히 수월해지며 점차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실효성이 의문시되던 각종 보건사업이 공중보건학적 관점과 근거에 기반하여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효과적인 지역사회 건강증진 및 보건사업 집행을 위해 보건 전문가로서 공중보건의사뿐 아니라 지역사회 의사의 참여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의료의 질을 평가하듯 보건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체계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보건의료 현장에서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사의 보건교육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공공보건의료 발전계획의 각 분야 및 과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공보의 대상 보건교육사업이 실제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본 사업을 통해 배출된 능력있는 공중보건의사 인력을 어떤 직역에 속한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 논의는 본 사업에 참여하는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에서 진료를 배제할 것인지를 포함해 실무적 관점에서 본 사업에 참여하는 공중보건의사가 실질 역량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지의 세부 교육안 등의 안을 포괄한다. 기존 보건교육과의 연계성도 빼놓지 않고 고려돼야 한다.

또 기존에 없던 역할을 부여받게 될 공중보건의사가 적극적으로 보건교육사업뿐 아니라 보건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유인책 제공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지난 2018년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에 공중보건의사를 보건사업에 참여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되었으나 다양한 이유로 지금까지 공중보건의사의 보건사업 참여율은 상당히 저조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뿐 아니라 지자체·복지부 등이 공중보건의사 교육사업 등에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국회는 지역 보건사업의 질을 강화하기 위한 농어촌의료법 등 개정을 통해 공중보건의사 인력에 대한 고전적 정의 및 인식을 탈피하고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소의 역량 강화를 단기간에 달성하기 쉽지 않듯 본 보건교육사업안 역시 단기간에 완전한 면모를 갖춰 집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시범사업을 통해 본 사업의 효과를 작은 규모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면 지역 보건사업에의 의사 참여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부디 본 교육사업 안이 여러 전문가 단체로 구성된 보건교육사업협의체와 더불어 정부 부처와 함께 활발하게 논의되어 지역사회 의료를 넘어 지역사회 보건 영역에까지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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