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醫 “명백한 원격의료…방문간호사 처방약 전달, 대리처방이자 법률 위반”
복지부 “법 테두리 안에서 시범사업 진행…처방약 변경 시 대면진료 해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원격의료 지원 시범사업이 추진되자 의료계가 우려를 표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이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는 것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라북도의사회에 따르면 전북 완주군은 지난 14일 운주면과 화산면에서 '원격의료 지원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범사업 대상자 선정은 고혈압·당뇨·허리통증·무릎관절 등 만성질환으로 보건지소를 이용하는 재진환자 중 거동불편, 고령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우선 원칙을 적용하며, 1차 대상자 중 공중보건의사의 대면진료를 마친 후 건강관리 및 진료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환자 중에서 40명을 최종적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시범사업은 공보의가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해 환자의 가정에 방문한 방문간호사에게 의료 관련 전문지식 및 치료지침을 전달하면 방문간호사가 원격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바탕으로 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처방약을 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북의사회는 16일 성명을 통해 “이번 시범사업은 명백한 원격의료”라며 “정부와 복지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역 의사들을 무시하고 대면진료 원칙을 외면한 채 의료를 산업 육성의 도구로 삼아 힘없는 공보의를 이용해 밀실에서 이를 시행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뇨병, 고혈압이라고 단순히 혈당, 혈압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면서 “합병증이 있는지 진찰하고, 순응도를 점검해야 하며, 각 환자에게 알맞은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대면 진료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만 원격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전북의사회는 방문간호사를 통해 처방약을 전달하는 것 역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문제 삼았다.

전북의사회는 “원격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바탕으로 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처방약을 전달하는 건 명백한 대리처방이자 법률 위반”이라며 “의료법에 의하면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환자에게 교부할 수 없고 간호사는 대리처방의 직계가족 대상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북의사회는 이어 “완주군 내 의료사각지대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개선하려면 원격의료 지원 시범사업이 아니라 확실한 의료전달체계 수립, 대도시와 수도권으로 쏠린 의료 자원의 합리적 배분, 환자이송시스템의 질적 개선 등에서 방안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라며 “취약계층이 대면 진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더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완주군의 원격의료 지원 시범사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의료법 위반에 대해 법적 고발은 물론 원격의료 저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해 투쟁하겠다”고 천명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완주군에서 시행되는 원격의료 지원 시범사업에 큰 우려를 표했다.

의협 박종혁 대변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섣부른 시범사업으로 인해 국민 건강권 훼손이 우려된다”면서 “정부가 과연 국민 건강권이라는 가치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이 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허용한 의료법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법 중 원격의료 관련 내용을 담은 34조 1항에 ‘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해당한다)은 컴퓨터ㆍ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어 의료인 간 원격의료 대상에 간호사가 제외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1항에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만 해당한다는 의미는 정보를 제공하는 의료인을 제한하는 의미기 때문에 원격지에 간호사가 가서 환자와 함께 정보를 제공받는 건 위법이 아니라는 것.

의료정보정책과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원격지에서 협진을 제공받는 사람은 당연히 간호사가 포함된 것”이라며 “때문에 이번 시범사업도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는 ‘간호사가 약을 가져다’ 주는 부분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간호사가 처방약을 가지고 가는 부분에 대해 의료계 반발이 있는데, 사실 의사-의료인 간 협진에서 협진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는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시범사업을 통해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대상환자가 만성질환자 중 재진환자기 때문에 같은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많아 간호사가 약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라며 “만약 의사가 처방약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원격지에 나간 간호사가 환자를 데려와 대면진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는 현재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9개 시도, 45개 시군구에서 시행하고 있다. 9개 시도 중 이번에 이슈가 된 전북 완주와 제주도 제주시·서귀포시 등 2개 시도는 올해 추가된 지역이다.

또한 전북 완주와 같이 방문간호 모형을 채택하고 있는 곳은 이미 시범사업을 하고 있던 충청남도 홍성군이 있으며, 제주시도 방문간호 모형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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