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이승우 회장 “한 청년의 죽음으로 드러난 수련환경 문제점”

건강했던 31세 청년이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사인은 ‘해부학적으로 불명’이었다. 그는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 113시간 일했다. 지난 4주간 그의 평균 근무시간은 주 100시간이었다. 근로기준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은 주 52시간이지만 그가 일하는 곳은 ‘예외 지역’이다.

지난 2월 1일 가천대길병원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 신형록 씨의 이야기다.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88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법이 제정된 이후 발생한 사건이기도 하다.

근로복지공단은 신 씨가 숨진 지 6개월 만에 과로사로 인정했다. 고용노동부는 12주 동안 주 평균 근무시간이 60시간 이상이면 만성과로로 판단한다.

신 씨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해 온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대한민국 전공의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며 씁쓸해 했다.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전공의법이 제정됐지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전공의가 많은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지난 18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고(故) 신형록 전공의 산재 인정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회장은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전공의가 근무 중이던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지만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임세원 교수 사건에 가려져 안타까웠다”며 “정부도 신 씨의 죽음에는 아무런 입장도 발표하지 않고 침묵했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신 씨가 사망하고 나서 과로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전공의에 대한 과로사를 인정할 경우 파급 효과가 커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며 “산재 인정을 받자 기뻤고 안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에 마음 졸여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법 제정 이후 주 80시간만 근무했으면 과로가 아니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만성과로 기준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다. 또 주 52시간을 초과하고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으면 만성과로로 판단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법적으로 36시간 연속근무를 허용한 상황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 회장은 “주 80시간보다는 36시간 연속근무가 더 힘들다. 미국도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이지만 연속근무는 16시간으로 제한한다”며 “더욱이 병원은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만성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중 업무부담 가중요인으로 꼽히는 예측곤란, 정신적 긴장업무 등이 모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제2, 제3의 신형록’이 생기지 않으려면 업무 조정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 청년의 죽음으로 인해 과로가 일상적인 수련환경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개별 수련기관 문제로 치부해서도 안된다”며 “전공의법으로 근무시간은 제한했지만 업무강도에 대한 조정이 없었다. 진료 외 잡무도 많다. 전공의 근무시간 중 20%는 잡일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야간 근무 시 전공의 한명이 보는 환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 전공의 한명이 환자 50~100명을 보는 상황은 환자안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전공의 담당 환자 수를 제한하려면 입원전담전문의가 필요하다. 수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는데 하루 빨리 본 사업으로 전환해 입원전담전문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 참여기관에 전공의 정원을 추가 배정하는 복지부 계획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 회장은 “수련병원들이 입원전담전문의를 더 고용하도록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보인다”면서도 “전공의를 사은품이나 기념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불쾌해했다.

이 회장은 이어 “전공의 정원 추가 배정으로는 한계가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만 움직이지 지방 수련병원은 전공의 확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병원을 움직이게 하려면 의료기관인증 평가 지표에 입원전담전문의를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달로 대전협 회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신 씨 사망 사건은 전공의 과로 문제를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수련교육 내실화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전공의는 배우고자 하는 피교육자”라며 차기 집행부에서는 수련교육의 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