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 뜰까⑥…릴리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버제니오'

세계 최초, 국내 최초, 퍼스트 제네릭 등 제약사가 의약품 출시를 알릴 때 많이 언급하는 단어 중 하나가 ‘최초’다. 이는 의약품 시장에서 선점이 중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의약품은 환자에게 한 번 처방이 이뤄지면 변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번째, 세 번째 제품을 내 놓는 제약사들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한다. 지각변동을 노리는 ‘후발주자’들은 어떤 약들이 있는지 <이 약 뜰까>라는 코너를 통해 소개한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서 주목받고 있는 약제를 꼽는다면 CDK4/6 억제제를 빼놓을 수 없다.

유방암은 수용체의 분자적 특성에 따른 유형(subtype)으로도 분류되는데, 전체 유방암 중 약 70%가 호르몬수용체(HR) 양성(+),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HER2) 음성(-)이다. 이 HR+/HER2- 유형은 지난 50여 년간 호르몬치료라고도 불리는 내분비요법이 1차 치료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초기에 내분비요법을 받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민감도가 떨어져 질병이 진행되는 경험을 하고, 내분비요법으로 암세포가 억제되지 않으면 전신부작용 등이 발생할 수 있는 항암화학요법을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치료 환경 속에 2000년대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RDs, 풀베스트란트 등)가, 2010년대엔 전이성 유방암 치료를 위한 표적치료제인 mTOR 억제제, CDK 4/6 억제제가 등장하면서 전이성 유방암 치료 옵션이 다양해졌다. 이 중 CDK 4/6 억제제는 기존 내분비요법과 병용시 단독 대비 생존율 개선 등을 입증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CDK 4/6 억제제와 아로마타제 병용요법, CDK 4/6 억제제와 풀베스트란트의 병용요법을 ‘HR+/HER2- 유형의 재발성 또는 진행성 유방암을 위한 치료법’( Category1)으로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CDK 4/6 억제제는 2016년 화이자의 입랜스(성분명 팔보시클립)를 필두로, 2019년 5월 릴리 버제니오(성분명 아베마시클립), 10월 노바티스 키스칼리(성분명 리보시클립) 등이 허가를 받았다.

내분비요법 실패 폐경 전·후 환자 OS·PFS 연장 입증

이 중 버제니오는 MONARCH 2 임상시험을 통해 내분비요법에 저항성을 나타낸 환자에서 풀베스트란트와 병용 시, 단독요법 대비 폐경 전/후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을 7.2개월(병용요법 16.4개월, 단독요법 9.3개월), 객관적 반응률은 약 2배(병용요법 35.2%, 단독요법 16.1%) 각각 연장시켰다. MONARCH 2에는 국내 환자가 84명도 참여했다.

최근 유럽종양학회 학술대회(ESMO 2019 Congress)에서 발표된 MONARCH 2 임상시험의 2차 유효성 평가 변수 관찰 결과, 버제니오는 국내에서 허가된 CDK 4/6 억제제 중 유일하게 풀베스트란트 병용요법에서 폐경 상태와 관계없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전체생존기간(OS)을 연장시켰다(버제니오와 풀베스트란트 병용요법 중앙값 46.7개월 vs 풀베스트란트 단독요법 중앙값 37.3개월). 또 이 연구에 대한 탐색적 분석에 따르면, 버제니오와 풀베스트란트 병용요법은 항암화학요법 실시까지 걸리는 시간의 중앙값도 위약군 22.1개월 대비 50.2개월로 연장시켰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연희 교수는 “진행성 유방암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 동안 전신 부작용이 심한 항암화학요법 사용을 최대한 연기하며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을 기대해 왔다”며 “CDK 4/6억제제는 지난 몇 년 간 HR+/HER2- 진행성 유방암을 치료하는 방식을 개선해 왔다. 이 중 버제니오가 전체생존기간(OS)의 유의미한 연장을 입증했다는 점은 내분비 요법 후 암이 진행된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서 상당히 고무적인 발견”이라고 말했다.

복약순응도에서도 유리한 약제

버제니오는 MONARCH 3 임상시험을 통해 1차 치료에서의 유효성도 입증했다. 1차 치료에서 아로마타제 억제제와 병용 시, 단독요법 대비 무진행 생존기간을 약 2배 가까이 연장시켜 유의한 개선을 보였다(병용요법 28.18개월, 단독요법 14.76개월). MONARCH 3에서도 예후가 나쁜 특징을 보이는 하위그룹(간 전이 환자, 높은 종양 등급을 보인 환자, 짧은 재발기간을 보인 환자,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음성 환자, 뼈 외에도 전이된 환자 군)에 대해 일관된 무진행생존기간 연장효과가 나타났다. MONARCH 3에는 국내 환자 59명도 참여했다.

버제니오는 CDK 4/6 억제제 중 유일하게 별도의 휴약기간이 없는 용법으로 허가를 받았다는 점도 주목되는 점이다. 전임상 결과, CDK 4 & 6 억제가 일시적으로 중단될 경우 암세포가 다시 증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즉, 버제니오와 같이 휴약기간이 없는 용법은 지속적으로 표적을 억제해 유방암 세포의 노화와 사멸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는 전임상실험에서 관찰된 바 있다. 이와 함께 버제니오는 식사 여부와 상관없이 복용이 가능해 복약순응도 측면에서도 편리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 치료제와의 차별화, 대규모 임상에서 나타난 유용성과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한 버제니오가 난치성 질환인 전이성 유방암의 치료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현재 버제니오 병용요법의 1차 치료 및 2차 치료에 대한 급여적용 심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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