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학회 임윤희 홍보이사 “환자 80%가 자살 충동 경험…삶의 질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 10명 중 8명이 자살 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국내에서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시급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통증학회 임윤희 홍보이사는 지난 17일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69차 학술대회 및 연수교육’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CRPS 환자들의 삶의 질’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전국 37개 수련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CRPS 환자 25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질환 및 경제상태 등 환자들의 삶의 질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 현재 치료받고 있는 CRPS 환자들의 65%는 20대에서 50대까지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는 연령층이었다.

또 주부, 학생 등을 제외한 응답자 75% 이상이 발병 전 사회·경제적 활동을 했지만 발병 이후에는 이들 중 3분의 2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원인으로는 통증점수(10점 기준) 7점 이상의 극심한 통증과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으며, ‘발병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부위가 확대됐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치료에 필요한 병원비는 응답자 절반 이상에서 건강보험, 의료급여 등을 이용해 자비로 부담하고 있었으며, 응답 환자의 26%만이 ‘산재보험이나 국가지원금으로 생계유지를 한다’고 응답했다. 그 외 환자들은 가족, 지인, 대출 등을 통해 생계유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RPS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은 일반인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응답자 80%가 ‘자살 충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가벼운 일상 활동에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응답한 비율도 절반을 넘었다.

또 응답자 전체의 평균 수명 시간은 4.9시간에 불과했으며, 그중 45%는 하루에 4시간도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첫 진료 후 확진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에서 1년 사이’가 28.2%로 가장 많았으며 ‘1년에서 3년 사이’, ‘3개월에서 6개월 사이’가 그 뒤를 이었다. ‘3년 이상’이라고 응답한 환자도 16%에 달했다.

3차병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임에도 확진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임 이사의 설명이다.

세계보건기구 ‘삶의 질 간편형 척도’를 이용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육체적·정신적·사회적·환경적 요소 모두에서 ‘중등도 이상의 척수마비환자’의 결과 보다 낮은 점수가 나온 부분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왼쪽부터)통증학회 박휴정 기획이사, 전영훈 회장, 홍성준 특별위원장, 임윤희 홍보이사

임 이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CRPS 환자수는 명확하지 않으나 201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연간 발병률이 인구 10만명 당 29명 수준”이라며 “즉, 매년 1,000명 이상의 환자들이 새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환자들의 통증 실체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오해들은 더욱 환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임 이사는 이어 “이번 조사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질환 자체로도 힘든 상황일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분에서도 매우 열악한 상황에 노출돼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환자들의 전체적인 삶은 질을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라고 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런 건 최근 법원에서 처음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의 통증을 신체적 장애에 준한다고 인정해줬다는 점”이라면서 “그러나 아직까지 통증은 공식적으로 장애인 판정 척도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치료가 되지 않는 통증은 장애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통증학회 전영훈 회장은 “CRPS 환자들에게 사회적·경제적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사회적으로 CRPS에 관심을 갖고 국가에서도 환자들에게 어떠한 지원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현재 학회 차원에서 CRPS를 장애 판정 기준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환우회와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CRPS의 진료표준화 지침을 마련한다는 게 통증학회의 계획이다.

통증학회 박휴정 기획이사는 “CRPS는 명확한 발병 원인을 찾을 수 없는데 이를 반대로 말하면 정확한 치료법도 모른다는 이야기”라며 “이에 CRPS를 진료하는 병원들끼리 모여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향후 진료표준화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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