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EMR 셧다운제 실태조사’ 발표…“보여주기식으로 EMR 기록 막기만 급급해”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규정을 맞추기 위해 여러 수련병원들이 ‘EMR 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일부 전공의들이 의료법 위반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수련병원들이 대놓고 전공의들에게 타인 아이디 사용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협 로고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7일 전공의 1,076명이 참여한 ‘EMR 셧다운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전협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을 비롯 수련병원 수십 곳에서 비정상적인 전자의무기록(EMR) 접속이 이뤄지고 있었다.

전공의의 전자의무기록 아이디는 근무시간 외에는 접속이 차단되기에, 당직을 하는 타인의 아이디를 이용해 처방기록을 입력하고 있었던 것.

결국 일선 전공의가 정규시간에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이 직접 진찰하지 않고 진단서 등 증명서를 발행하거나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A대학병원 전공의는 “업무량이 많아 도저히 정규 근무시간 내에 (업무를)해결할 수 없다. 환자를 직접 확인하고 처방하지 않으면 처방해 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교수가 환자를 보지도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다음 당직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내놓고 간다. 일을 다음 사람에게 던지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B대학병원 전공의는 “병원 수련담당 부서 및 의국에서 대놓고 당직자 아이디 사용을 종용하고 있다”면서 “전공의법 때문에 근무시간 외 처방을 냈다가 걸리면 오히려 전공의가 사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로 EMR 접속차단이 업무량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 보장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응답자 85%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결국 EMR 셧다운제가 전공의 수련교육환경의 근본적인 개선책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위반하게끔 전공의를 내몰고 있다는 게 대전협의 지적이다.

대전협 이경민 수련이사는 “전공의법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제한돼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수련병원은 보여주기식으로 80시간을 넘지 않도록 EMR 기록만 막기 급급했다”면서 “수련병원들이 이렇게 하면 법이 제정됐다 한들 어떻게 수련환경이 개선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EMR 접속을 차단한다 해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의 양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서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수련병원이 서류상으로 전공의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근거를 생산해낼 뿐”이라고 꼬집었다.

박 회장은 “서류상으로는 마치 전공의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근무시간이 지나도 타인의 아이디를 통해 처방하며 일해야 하는 게 전공의들의 불편한 현실”이라며 “대전협은 이 문제를 절대 간과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EMR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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