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열린 故임세원 교수의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의 죽음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꿈꾸던 내게 큰 충격과 울림을 줬다. 그가 남긴 발자취와 그의 죽음 뒤에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유족의 결정은 특히 그랬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고인의 유지가 내게 울림을 준 이유는 본과 3학년이었던 지난해 10월 의대생 실습에서 만난 내 환자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나간 학생 실습 시간에 나와 면담을 한 환자 역시 ‘1형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고 있었다.

흔히 조울증으로 알려진 1형 양극성정동장애는 기분이 들뜬 상태인 조증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우울증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정신장애다.

내 환자는 조증 기간에는 온갖 음식을 쌓아두고 병동 환자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활달한 모습을 보인 반면 우울증 기간 동안은 무기력하게 병동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면담을 통해 환자는 조울증이 처음 발병한 20대부터 조기 약물치료를 받았고 이후 재발할 때마다 꾸준히 병원에 방문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자신의 증상이 악화될 때면 입원이나 외래 치료를 즉시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환자는 기능 저하 없이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그 환자가 극단적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은 데는 가족의 끊임 없는 지지도 있었지만, 사회 복귀가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을 버텨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임 교수님의 환자도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면, 사회의 보살핌을 받았더라면 그날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 교수님의 죽음 이후,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조기 치료와 사회복귀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 예방보다는 위기상황 대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정신질환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발병 후 즉시 치료 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사회에 돌아가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직업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직업재활센터는 13개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무서워하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품고 가야 할 사회의 약자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아픈 사람들이 차별 없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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