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업무정지 및 환수 처분 취소…유권해석 통해 간호사의 환자 가족 유사 지위 인정

노인요양시설 간호사에 대리처방을 했다는 이유로 업무정지처분 및 환수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이 법정다툼 끝에 구제받았다.

서울행정법원은 A의료재단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지난 2016년 10월, 복지부는 A의료재단이 운영하는 B의원에 대한 현지조사(조사대상 기간: 2015년 1월부터 같은 해 12월, 2016년 6월부터 같은 해 8월까지)를 진행했다.

현지조사 이유는 B의원에서 이뤄진 대리처방 때문이었다. 진찰료 산정 기준에 따르면 환자가 직접 내원하지 않고 환자 가족이 내원해 의사와 상담한 후 약제를 수령하거나 처방전만을 발급받는 경우에는 재진진찰료 소정점수의 50%를 산정한다.

하지만 B의원은 환자 가족이 아닌 노인요양시설에 소속된 간호사가 내원해 상담했음에도 재진진찰료 등을 요양급여비용과 의료급여비용으로 청구해 지급받았다.

B의원이 진찰료 산정기준을 위반해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고, 원외 처방전을 발행해 약국 약제비를 받게 한 금액은 각각 요양급여비 5,409만원, 의료급여비 1,009만원으로 확인됐다.

이에 복지부는 B의원에 요양급여기관 업무정지 82일과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40일 처분을 내렸으며, 공단도 475만원에 대한 환수처분을 명했다.

그러자 A의료재단은 “요양급여기준에 의하면 환자의 가족에 의한 대리 진찰 및 원외 처방전 발급이 허용되며 거동이 어려운 요양시설 입소 환자의 경우 환자 본인이 매번 가족들과 함께 의료기관을 방문하거나 환자 본인과 떨어져 지냐는 거족이 의사에게 환자의 건강상태, 증상, 과거력 등을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오히려 요영시설 소속 간호사가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노인복지법 상 보호자를 ‘부양의무자 또는 업무 도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노인을 보호하는 자’로 규정한 것을 고려했을 때 환자를 보호하는 간호사도 환자 가족과 유사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간호사에 의한 대리 진찰 및 원외 처방전 발급도 허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요양시설 소속 간호사가 민법상 가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한 업무정지 및 환수 처분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B의원이 속임수를 사용해 요양급여비용 및 의료급여비용을 청구하지 않았고,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에 의한 대리처방을 허용하는 개정의료법이 시행 예정인 점, 일부 환자의 가족이 간호사에 의한 대리진료에 동의서를 작성해 준 점, B의원이 실제 진료행위를 한 후 급여비용을 청구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복지부의 업무정지 처분과 공단의 환수 처분에는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고 항변했다.

법원은 A의료재단의 주장을 인용, 복지부의 업무정지 처분과 공단의 환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노인요양시설의 간호사가 그 시설에 입소한 환자를 대신해 요양기관 또는 의료급여기관에 내원해 담당 의사와 상담한 후 약제를 수령하거나 처방전을 발급한 경우 비록 노인요양시설의 간호사가 환자의 가족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관련 규정을 유추하면 이 경우에도 요양기관 또는 의료급여기관이 관련 요양급여비용 또는 의료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환자의 가족이 노인요양시설을 자주 방문해 환자를 잘 관찰하지 않는 한 상근하는 간호사보다 환자의 건강상태를 충분히 알기 어려우며 의료인에게 환자의 건강상태를 더 잘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노인요양시설의 간호사는 입소자의 건강상태를 충분히 알 수 있고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입소자의 질환 등을 의사 등의 의료인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오는 2월 28일 시행 예정인 의료법 개정안은 특정 요건에 한 해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 등에게 처방전을 발송할 수 있으며 대리수령자는 환자를 대리해 그 처방전을 수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을 종합했을 때 복지부의 업무정지 처분과 공단의 환수 처분은 부당하기에 모두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실무에서 대리처방이 많이 이뤄지고 있고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서도 대리처방에 대해서 진찰료를 인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의료법에는 대리처방에 관한 근거규정이 없었다”면서 “이에 궁여지책으로 복지부는 ‘환자 가족’에 한해 여러 가지 조건 하에서 대리처방이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부의 유권해석은 의료법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대리처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요건에 대해서도 그 기준이 불명확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면서 “이번 사건도 바로 대리처방의 허용되는 요건에 관한 해석상 논란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전했다.

현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구제받을 수는 있게 됐지만, 다른 사례에 있어선 여러 병원들이 의료법 위반 등으로 부당한 제재와 처벌을 받았다”면서 “늦게나마 대리처방에 관한 의료법이 개정된 건 다행이지만 개정 의료법 시행 이전에라도 대리처방과 관련한 부당한 해석이나 법 집행은 없었는지 점검하고, 그로 인해 부당하게 제재나 불이익을 받은 의료기관에 대한 권리구제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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