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가정형 호스피스 본사업 시행되면 혼란 가중…“암 환자가 구급차 타고 외래 와야 하나”

#. 호스피스 클리닉의 전문의 A씨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기 위해 내원한 환자 B씨의 아들을 만났다. 췌장암 환자 B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말기 암 진단 후, 호스피스 돌봄을 권고 받았다. B씨는 일상생활수행능력(ECOG) 4단계로, 자가 관리가 불가능하고 전적으로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의존하며 지내야 한다. 주로 암성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받고 있다. A씨는 환자의 질환 및 상태를 입증할 의무기록, 진단서 등을 토대로 B씨가 가정형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 A씨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초진이라고 하더라도 말기 암환자들에게는 관행적으로 환자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하다면 가족 등 대리인이 대신해 상담을 받도록 하고, 마약성 진통제가 포함됐더라도 암성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증상조절을 위해 가족을 통한 대리처방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그럴 경우 범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2월 28일부터는 개정 의료법 시행령이 시행됨에 따라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한 환자 중 재진환자에 한해 동일한 상병,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환자 가족 등의 대리처방이 가능하다. 이를 어길 경우 의사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의 벌금, 환자의 보호자 등에게는 500만원의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처방전을 대리 수령할 수 있는 범위는 ▲환자의 직계존속ㆍ비속 ▲직계비속의 배우자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노인 의료복지시설 근무 종사자 등이다.

그러나 호스피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 개정을 통해 대리처방 수령자 범위는 늘어났지만, 대리처방 조건들이 말기 환자가 대부분인 호스피스 완화의료 현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3월 가정형 호스피스 본사업을 앞두고 의료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던 대리처방, 처벌 규정 신설로 사실상 차단

그동안 의료현장에서는 환자가 병원을 직접 내원하지 않더라도 동일상병, 동일처방에 한해 환자의 ▲환자의 직계존속ㆍ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 보호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해왔다. 다만 대리처방의 경우 재진진찰료의 50%만 지급했다.

그러나 이를 어기더라도 처벌규정이 없어 노인요양시설 종사자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대신해 처방전을 대리수령하거나 비록 동일처방이 아니더라도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찾기 힘든 말기 암 환자의 경우 대리처방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거동이 어렵기 때문에 환자를 직접 초진(대면진료)을 할 수 없더라도 가족 등 대리인을 통해 환자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면 편법임을 알면서도 대리처방을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임종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이라고 해도 동일처방이 아니라면 직접 병원에 내원해야 한다. 대리처방 규정을 어길 경우 의사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의 벌금, 환자의 보호자 등에게는 500만원의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임종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의 경우 병의 진행경과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한 증상이 새롭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 같이 동일한 처방이 이뤄지기 어렵고, 암성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대부분으로 대면진료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사실상 대리처방 조건에는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3월부터 가정용 호스피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의료현장에서의 혼란은 더 가중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A씨는 “말기 환자는 동일 상병으로 동일 처방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병의 경과에 따라 매우 다양한 증상이 새롭게 발생하기 때문에 동일한 상병이 나올 수도, 동일한 처방을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A씨는 “더욱이 이 시기 환자 돌봄의 목표는 적극적인 증상 조절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 있는데 동일하지 않은 약을 수시로 새롭게 처방해야 하는 말기 환자 진료의 경우 의료법 개정안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의약분업 이후에는 원내 투약 가능한 목록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처방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아닌 다른 약을 처방 받으려면 (약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 대신 무조건 보호자가 와서 대리처방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많아 보호자들이 대신해 초진을 보기도 하는데 이대로라면 약을 처방받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외래로 와야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말기 환자 특성 고려한 대리처방 별도 가이드라인 필요

이에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들은 환자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한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의 경우 초진 및 재진 진료 모두 대진할 수 있도록 ‘초진환자의 대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병만 동일하다면 동일하지 않은 약의 대리처방도 인정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보험이사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말기진단을 받은 환자이면서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환자의 직계존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 일정범위 사람들에게 초진 및 재진진료를 대진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또 “동일상병이라면 동일하지 않은 약의 대리처방도 인정해야 한다”면서 “이 경우 초진 및 재진진찰료를 산정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가정에서의 생애 말기 돌봄을 원하는 말기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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