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 받고 있는 ‘외상진료체계 분야별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
김윤 교수 "복지부 권역외상센터 정책 '부적절'…병원과 이 교수 간 감정문제로 떠넘겨"

경기도가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아주대병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아주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아주대병원과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간 갈등은 유희석 의료원장이 이 교수에게 욕설을 한 대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이 비상에 걸리면서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병원간 갈등이 사실상 세간의 관심에서 묻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 병원으로 복귀한 이 교수가 권역외상센터장직을 내려놓자 경기도가 현장조사에 나서는 등 아주대병원과 이국종 교수간 갈등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는 모양새다. 경기도는 이번 현장 조사를 통해 권역외상센터의 중증외상환자 진료방해, 진료거부, 진료기록부 조작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지난 2011년 이 교수가 ‘아덴만의 영웅’으로 알려진 석해균 선장을 살리면서 건립 필요성이 급부상했고, 이에 따라 세워졌다. 그런 권역외상센터는 어쩌다가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이 모(母)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외상센터가 가진 한계가 이번 사태로 가감 없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아주대병원과 권역외상센터 간 갈등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관련기사: 태생적 한계 드러낸 외상센터…갯수 늘고 규모 줄면서 母병원 의존 높아져).

‘외상진료체계 분야별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당초 전국 6곳에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고 자원을 집중해 제대로 된 외상진료체계 구축을 구상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이 보고서를 낸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잘못된 정책 추진과 관료주의적인 문제해결 방식이 잘못된 결과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를 만나 아주대병원과 권역외상센터 간 갈등의 원인과 운항이 중단된 ‘닥터헬기’ 문제, 또 앞으로 권역외상센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 아주대병원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아주대병원 사태를 보면 첫 번째로 인력문제가 있었다. 간호사 인력을 충원해 준다며 예산 배정을 받았지만, 전체 예산을 신규 간호사 채용에 사용하지 않았다. 일부는 신규 간호사 채용에 썼지만, 일부는 기존에 뽑았던 인력에게 사용했다.

복지부 공문을 보면 외상센터 전체 간호사 인력을 늘려주겠다고 한 건 아니다. 외상센터 중환자실 간호사를 늘려주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복지부장관과 복지부 면담 이후 외상센터 전체 간호 인력을 증원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계획을 세워 병원에 제출했는데 병원이 처음 (이 교수의 계획대로) 통과시켜 줬다가 추후 복지부가 중환자실 인력만 늘려준다고 하니 중환자실 인력만 늘리고 다른 인력은 늘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즉, 복지부가 67명을 채용하라고 했지만 아주대병원은 36명을 신규 채용하고 31명 인건비는 기존 채용한 중환자실 간호사 인건비로 사용했다. 그런데 31명에 해당하는 인건비는 아주대병원이 계획서를 제출할 당시 자비로 인력을 충원해 외상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원래 아주대병원 자금으로 운영하겠다고 한 걸 복지부 돈을 받아 모르는 척 하고 인건비를 대체한 거다. 그러고 나서 (복지부로부터 받은) 돈을 반납한 게 아니라 기존 이미 늘려놨던 간호 인력 인건비로 충당하면서 전용 논란이 일었던 거다. 여기서 복지부의 문제가 드러난다.

- 복지부도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외상센터 전체 간호 인력이 부족한데 왜 중환자실 간호 인력만 지원해 주겠다는 잘못된 지원정책을 세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면 그 이후 수정하면 됐을 텐데 ‘아주대병원은 복지부 규정을 어긴 게 없다는 식’으로 문제의 핵심을 오히려 덮었다. 결론적으로 복지부의 관료주의적인 문제해결 방식이 문제를 키웠다.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쉽게’ 할 수 있는 것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이번 사태를 더 키운 셈이다.

- 독립적으로 외상센터가 운영됐다면 아주대병원 사태가 불거지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에 지난 2011년 연구 보고서가 주목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정부가 어떤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병원들은 예산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사업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노력한다기보다 국가지원을 받고 병원 몸집을 불리고, 이를 토대로 병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외상환자 진료? 심·혈관 환자 진료?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있는 것 같지 않다. 권역외상센터도 마찬가지다. 막상 권역외상센터가 되고 나면 응급환자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어 보인다.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고 수가는 더 주는데도 매일 수가는 낮다고 하고, 환자들은 병실 배정을 못 받고, 중환자실 배정을 안 해주니 응급실 과밀화로 환자들은 바닥에 누워 있고 난리법석이 되는 거다.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매번 나오는데, 환자들이 많이 와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병원이 응급환자에게 병원이 가진 중환자실, 수술실, 병실을 내주지 않아 심화되는 문제도 있다.

- 아주대병원과 이 교수 간 갈등이 ‘닥터헬기’ 운항 중단 사태로도 번졌다. 아주대병원 닥터헬기의 경우 중증응급환자가 아닌 중증외상환자만 태우도록 했다는 닥터헬기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권역외상센터에서 닥터헬기를 운영했기 때문에 중증외상환자만 태웠을 수도 있는데, 닥터헬기 프로그램은 외상센터를 개원하면서 환자 이송을 위해 시작했다. 물론 중증응급환자도 급하면 헬기에 태워 오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아주대병원이 외상환자를 태우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면 다른 (외상센터들의) 닥터헬기는 봐야 할 외상환자를 보지 않으면서 엉뚱하게 응급환자만 많이 보는 게 문제라고 본다. 아주 엄격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상환자는 골든타임이 1시간, 급성심근경색은 2시간, 뇌졸중은 3시간이다. 시간을 다투는 정도를 따지자면 중증외상환자가 급성심근경색과 뇌졸중보다 더 급한 질환이다. 그런데 닥터헬기 운영하는 다른 병원들이 헬기로 이송하는 환자 중 외상환자 비율이 20%도 안 된다. 그 병원들이 헬기를 잘못 운영하고 있는 거다. 지금 봐야 할 외상환자들을 안 보고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아주대병원이 타 지역의 권역외상환자들도 데려가 진료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 것 같더라.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지인지 모르겠다. 그 지역에서 환자를 보지 않으니 아주대병원이 가서 환자를 어쩔 수 없이 받아 오는 건지, 지역 내 권역외상센터가 받겠다는 환자를 아주대병원이 가서 뺏어 오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자라고 생각한다. 11시간 동안 병원을 떠돌다 사망한 ‘민건이 사건’을 생각해 봐라. 아주대병원이 진료권역을 넘어가 민건이를 받은 게 잘못인가? 전북대병원이 보낼 곳을 찾다가 없어서 결국 아주대병원으로 보낸 것이었다. 병원들이나 의사들이 타 지역 권역외상환자들도 아주대병원이 데려가 진료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심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를 남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 아니겠나. 심지어 서울에서 발생한 권역외상환자도 아주대병원으로 넘긴다. 서울에 있는 그 많은 대학병원들이 외상환자 진료를 잘 했다면 그 환자들이 아주대병원으로 전원을 오겠냐는 거다. 아주대병원이 가서 데려오는 게 아니라 전원 받아 데려오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책임 진료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타 권역외상센터들의 문제다.

- 권역외상센터들이 아주대병원으로 외상환자를 전원 시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의료진들에게 책임성이 없다. 이 때문에 당직체계가 안 갖춰져 있으니 당직을 안 서는 거다. 또 당직표가 있더라도 환자 진료를 안 보는 거다. 더 나아가 아주대병원처럼 환자가 오더라도 중환자실, 수술실, 병실을 안 내주는 거다. 의료진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환자를 함부로 전원 시키지 못 하도록 하는 엠탈라(EMTALA, 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Active Labor Act)법이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전원 시키도록 하지만, 그 지역 내 발생한 환자를 책임지도록 하는 게 골자다.

병원에 온 환자를 볼 수 있으면 보고 볼 수 없으면 안 보겠다고 할 수 있나. 환자가 모든 상황을 고려해 때에 맞춰 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해외 응급센터들도 수술해야 할 환자 2명을 동시에 봐야한다면 우리나라처럼 모두 전원 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우리병원, 우리 지역 내 발생한 환자를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들에서는 이 같은 책임 의식을 본 적이 없다. 볼 수 있으면 보는 거고, 볼 수 없으면 안 본다. 이 같은 책임을 수가가 낮다거나, 인력이 없다는 외부적 요인으로 떠넘기는 식이다.

- 각 권역외상센터들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주대병원 사태를 다시 돌아보자. 아주대병원은 외상센터가 아니라 아주대병원 전체가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거다. 그렇다면 아주대병원과 아주대병원장은 권역센터로 지정받은 그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거다. 그리고 복지부는 아주대병원을 권역외상센터로 지정해 줬음에도 아주대병원이 병상이나 인력지원도 없이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면 이를 관리 감독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하지 않았다. 벌을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나섰어야 했다는 거다. 복지부가 아주대병원장과 이 교수의 사이가 나쁘니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잘 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복지부의 책임을 감정의 문제로 떠넘기고 그걸 마치 아주대병원과 권역외상센터의 문제로 만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복지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복지부가 세운 당초 외상센터 정책들이 불완전하거나 부적절해서 생긴 문제다. 그런데 이를 아주대병원장과 이 교수의 개인적인 문제로, 또 아주대병원과 권역외상센터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다. ‘유체이탈 화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아주대병원은 물론 복지부가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정작 복지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난감한 뿐이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지겨워할 때까지 기다리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복지부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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