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전사들①]분당서울대병원 격리병동 권선희 책임간호사
"의료진 자녀 입교거부 메르스 때 기억으로 '엄마 병원 다닌다 말하지 말라' 농담"

지난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확진환자로 판정된 후 시작된 신종 감염병 사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첫 번째 환자는 그 사이 완치 돼 퇴원했지만, 지역사회 감염이 의심되는 31번째 환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검역 중심에서 지역사회 감염 확산 차단에 방점을 둔 방역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는 전문들의 지적이 잇따르면서 일선 의료현장에는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확산된 상황이라면 한 순간의 방심이 구멍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맞써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의 피로도도 만만치 않다. 장기전에 대비한 의료진들에 대한 대비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진들을 직접 만나 신종 감염병이라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들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늘어나면서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들도 바빠졌다. 지난 2017년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으로 지정된 분당서울대병원도 마찬가지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은 9개의 음압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우한을 방문한 한국인 남성이 4번째 코로나19 확진자로 판정되면서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지난 1일과 2일 12번 환자와 14번 환자가 차례로 격리됐다. 9일에는 25번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아 격리 치료를 시작했다.

의료진들도 바빠졌다. 4번 환자는 지난 9일 오전 퇴원했지만, 여전히 격리병동에는 3명의 확진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으며, 진담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의심환자들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라 간호사 25명이 투입됐다.

중환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보통 2인 1조로 간호사를 투입하지만, 현재는 4인 1조로 구성돼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야간에는 간호 인력을 1명 더 추가 배치해 5명이 격리병동을 책임지고 있다. 인력풀이 충분히 확보돼야 방역체계 구멍을 막을 수 있다는 게 병원의 전략이다.

하지만 현장의 의료진들은 앞으로가 '진짜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력을 투입해 의료진의 소진을 막고 있지만, 지역사회 감염으로 악화되고 확진환자가 늘어나게 되는 상황에서도 격리병동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촘촘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격리병동 책임간호사로 확진환자 간호를 맡고 있는 권선희 간호사는 충분한 인력풀을 가동해야 하며, 치밀하고 체계적인 반복교육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격리병동에 투입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으로 지정되면서 전담간호사로 투입됐다. 코로나19 상황을 맞닥뜨리고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숱한 교육을 통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분당서울대병원도 메르스 사태 이후 준비가 잘 돼 있었다. 환자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준비해 놨던 예비인력을 차례차례 투입했다. 전담간호사 이외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간호 인력들을 예비조로 구성해 감염병 확산 범위에 따라 투입하는 방식이다. 에볼라 당시 방호복을 탈의할 때 감염노출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만큼 방호복과 보호 장비 착용이 중요한데 CPR 등 급박한 상황에서 인력이 부족하면 소홀해질 수 있다. 그만큼 인력지원이 중요하다.

- 감염병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해왔나.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에 대한 기본교육을 진행한다. 관심 있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1년에 2번 워크숍을 개최하는데,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상황, 사망상황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대로 모의훈련을 진행한다. 동시에 전담간호사들은 하루 정도 더 시간을 내 집중훈련을 받는다. 처음 훈련을 받았을 때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환자를 살릴 수 있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심폐소생술도 어려운데 방호복을 착의하고 격리공간으로 들어가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니 자신이 없었다.

- 교육과정이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해 냈나.

구체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긴박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때문에 응급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모두 만들어 반복 교육을 했다. 갑작스러운 심 정지 상황에서 방호복을 빠르게 착의하기 위한 방법이나 누가 먼저 격리병실로 들어가고 주치의한테 누가 노티를 할지 등 순서 하나까지 구체적인 상황별 시나리오를 짜고 시간을 재서 반복적으로 훈련했다. 환자가 퇴원하면 이후에도 복습하듯 리뷰하고 다시 훈련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순간이 오더라. 훈련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이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릴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개인 보호구를 착용 중인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진(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 방호복 착의까지 얼마나 걸리나.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크다. 꼼꼼하게 착의하면 4~5분 정도까지 걸리기도 한다. 장갑을 두개 끼고, N95 마스크도 새지 않도록 테스트 하고, 레벨D 방호복을 입는다. 여기에 더해 후드를 쓸 때는 기계 전원을 켜고 제대로 되는지 확인해야 하니 1명이 점검조로 함께 착의 실에 들어간다. 장비도 써보니 사람이 연결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다. 오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점검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CPR 상황을 훈련할 때는 방호복 입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방호복을 입을 때 긴 머리가 시간 지체요소가 되자, 머리가 긴 간호사들은 머리를 묶어 올리고 일 하는 방안을 내기도 했다.

- 방호복 착의를 하면 많이 답답하다고 들었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확진환자 입원 후 기본 정보조사 후 설명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데, 탈의하고 나오면 몸에서 쉰내가 난다. 손을 씻은 것처럼 땀이 난 적도 있다. 설명이 오래 걸리는 날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손이 불어있는 날도 있다. 방호복을 탈의할 때도 단계별로 알코올 소독을 하는데 알코올 냄새가 코를 훅 찌르고 올라오기도 한다. 격리병동은 멸균공간과 비 멸균공간 구분이 명확하다. 오염을 제거 시키는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 격리병동에서 전담간호사로 일 하며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여러 차례 훈련을 반복했다지만 매일 출근하는 병동이 아니기 때문에 낯설다. 가장 낯선 것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격리병동에 있는 의료진과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전화로 가능하다. 격리병동에 있는 의료진의 갑작스런 실수를 막으려 해도 빠른 대응이 쉽지 않다. 익숙하지 않으면 실수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처음부터 교육이 잘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눈 밖에 안 보이는데, 오래 일하다 보니 손짓, 발짓만 해도 통하더라.

환자 확인 후 격리병실에서 나오는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진들(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 메르스 당시 일부에서는 의료진 자녀들이 학교 등 입교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가족들은 불안해 하진 않나.

아이들에게 농담으로 엄마 병원 다닌다는 말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친정어머니도 너무 걱정하신다. 딸이 지금 총알이 날아다니는 야전병원에 있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병원이 가장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환자를 대면하는데 방호복을 잘 입고 벗으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말이다. 사실 병원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특히 격리병상 준비가 참 잘 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메르스를 겪고 나서도 발전했지만, 지금은 그런 큰 경험 없이도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꺼려졌을 테지만 그런 느낌이 없을 정도로 안전하게 일 하고 있다.

- 코로나19 지역사회 확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메르스 이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염병을 대비해 비축해 놨던 물품들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현재는 물류팀에서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물품은 빛의 속도로 조달해 준다. 주사기 같은 물품은 다른 병동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니 부족할 경우 빌려 쓸 수 있지만, 방호복 등은 부족하다고 해서 빌려 쓸 수 없는 격리병동 만의 고유 물품이다. 사태가 점차 장기화되다보니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다. 소비되는 양이 눈에 보이지 않나. 이대로 버텨 낼 수 있을까 싶었다. 사태가 더 지속되면 물품조달이 충분히 이뤄져야 할 텐데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 방호복과 보호 장비가 없다면 의료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의료진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평소 하던 일이 아니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일을 하다 보니 피로감이 상당하다. 격리병동 책임간호사이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지치지 않게 챙기는 일이 내 역할이기도 한데 지치지 않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더욱이 확진환자 간호를 맡고 있기 때문에 방호복을 벗고 나서도 다른 의료인들에게 전파하면 안 되니 진료실이 아닌 공간에서도 마스크를 늘 착용하고 있다. 의료인 마스크라지만 하루 종일 착용해야 하니 쉽지 않다. 격리병동 간호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쉽지 않다.

- 의료진들의 소진을 막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해 동안 경험해 보니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불안감과 긴장감을 덜어내 소진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훈련이 정말 중요하다. 다른 간호사들에 비해 긴장감이 덜한 이유도 반복된 훈련의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방호복 입는 횟수도 적으면 적을수록 내가 맞게 입고 있는지 의심이 쌓이니 불안감이 드는데, 훈련을 많이 하고 나면 다음 스텝을 충분히 예상하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부담을 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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