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감염학회, 긴급심포지엄 열고 신종플루-메르스 섞은 '코로나19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요구
'보건소→스크리닝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거점병원·국가지정격리병원→중증환자 치료병원' 구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50명을 넘어서면서 대응 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 접어든 만큼 봉쇄(containment) 전략에서 대면 접촉을 줄이고 경증과 중증 환자를 나눠서 격리·치료하는 완화(mitigation) 전략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종 감염병 진료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응급실 폐쇄와 의료진 격리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감염학회,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예방의학회가 지난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코로나19 대응 긴급 심포지엄’에서는 정부가 지금까지 유지한 봉쇄 전략으로 지역사회 감염을 최대한 늦췄다면 앞으로는 완화 전략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감염학회,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예방의학회는 지난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긴급 심포지엄을 열고 코로나19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밀집도 줄이는 완화 정책 추진 시기”

예방의학회 코로나19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는 “봉쇄 전략을 하다가 지역사회 확진자가 나오면 완화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 지역사회 감염이 나오면 역학적으로 접촉자 격리가 불가능하다”며 “환자가 급증하기 때문에 경증은 자가격리로, 중증은 병원격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 교수는 “봉쇄와 완화 전략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있다. 봉쇄 단계에는 접촉자 검역을 강화하고 환자는 모두 병원 격리하지만 완화 단계에는 접촉자 격리가 불가능하고 환자도 경증과 중증을 구분해야 한다”며 “직장에서도 기존에는 개인과 환경 위생 관리를 강화하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한시적 재택근무나 근무시간 유연제 등을 시행해 밀집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 교수는 “현재는 봉쇄 전략을 유지하면서 완화 정책을 추진할 시기다. 봉쇄 목적은 유행 시기를 늦춰서 진단키트 등을 개발하고 지역사회 감염에 대비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신종플루 유행 당시에도 처음에는 접촉자를 조사하고 격리했지만 나중에는 일일이 검사하지 않고 임상적 진단이 나오면 타미플루를 처방했다”고 말했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책이사인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교수는 다른 환자와 호흡기질환자 간 동선을 분리한 ‘발열 호흡기 클리닉’ 운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엄 교수는 “사스(SARS)를 경험한 중화권은 발열 호흡기 클리닉을 운영해 발열 증상이 있는 호흡기질환자는 병원 진입 단계부터 동선을 분리한다”며 “우리도 독립된 출입구와 진료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발열 호흡기 클리닉 도입을 위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돼야 하기에 이를 도입하겠다는 기관에 대한 지원과 보상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심환자 검체 채취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메르스(MERS) 수준에 맞춰진 보호구 착용을 간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코로나 검체 채취 ‘병목 현상’…“신종플루 때처럼 하자”)

“스크리닝센터-거점병원-중증환자진료병원 체계 필요”

병협 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인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현 단계를 ‘그레이존(gray zone)’에 비유하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종플루와 메르스 대응체계를 섞은 ‘코로나19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 2주 정도 늦게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것은 초기 대응에 성공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이사장은 “보건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선별진료소를 검체 채취를 하는 스크리닝센터로 전환하면 검체 채취 병목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며 “분리된 공간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의료기관들이 있다. 이에 기존 외래 환자와 분리해서 호흡기질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정해 그곳으로 호흡기질환자를 보내는 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이사장은 또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을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하고 트리아지(환자 분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3차 의료기관이 되도록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제대일산백병원 이성순 원장은 “지역사회 감염 국면으로 전환된 이상 봉쇄 전략은 가능하지 않다. 조기 진단과 사망을 낮추기 위한 적절한 치료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중국 후베이성을 제외하면 사망률이 0.3% 정도다. 위험한 독감(인플루엔자) 수준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의심환자가 다녀간 응급실을 폐쇄하고 의료진을 무조건 14일 격리시키면 오히려 다른 응급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코로나9가 메르스나 사스 수준으로 치명적이라면 바로 격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료진 격리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