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마음상담의원 최영훈

문 앞이다. 인위적인 페퍼민트 향이 방안에서 뿜어져 나온다. 화사한 분홍색 장미벽지, 하이얀 침대보, 진한 코발트색 환자복. 그럼에도, 그 안에 깊게 움을 묻은 죽음의 향취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감기라 하고 마스크라도 하고 올 걸…’

왕진 때마다 반복되는 순간적인 상념들이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변하려는 안색을 다듬고, 어린이집 교사 같은 한껏 온화한 미소를 던진다. 주름과 검버섯이 만개한 얼굴, 안개가 서린 듯한 눈, 조금만 세게 움켜져도 바삭하고 아스라질 것 같은 여윈 몸매. 게다가 내부의 기능은 더 아수라장이다. 간병인은 물론, 처자식도 못 알아보며, 밤낮마저 구분하기 힘든 정신 상태, 죽마저 삼키기 어려워 콧줄에 의지해 겨우 영양을 유지하는 소화 기관. 死神같은 이는 반응이 거의 없다.

‘얼마나 더 연명할 수 있을까. 한 반 년.…‘

“오늘 따라 더 젊어보이세요. 무슨 좋은 일?”

순간 이런 진부한 인사말도 식상해져 대화를 얼버무리고 방을 나온다. 이런 식으로 30여명의 입소자들을 진료한 후 서둘러 직원들과 인사를 마치고 요양원을 나선다. 문 밖이다. 참았다는 듯이 한껏 공기를 들이 마신다.

처음 요양원 왕진의를 의뢰 받았을 때는 선선히 아니 기꺼이 응했었다. 개업한 지 몇 개월 안되었던 터라 과외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경로가 생겼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름 성실히 진료를 했고, 그 덕분인지 다른 요양원들에서도 문의가 와서 서너 군데 왕진도 더 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거듭될수록 점차 열의가 식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의학의 제일 목적은 환자들에게 生을 찾아주는 것일진대 이들에게는 언강생심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방문할 때마다 死의 입구에 한걸음씩 다가앉은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확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지 가시는 길이 덜 힘들도록 거들어 주는 목발에도 미치지 못하리란 자괴감이 들었다. 어느날 많이 정이 들었던 어르신이 안보이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신 것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입소한 분들의 예전 삶은 제각각이었다. 3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셨다던 교수님, 제법 이름 있는 중소기업 창업주, 평생을 막노동으로 사셨던 노동자….그러나, 여기서는 다 똑같은 치매 환자일 뿐이었다. 칠십억이 넘는 인류의 生은 천태만상이겠지만, 老病死의 과정은 비교적 평등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은 호전, 완치라는 단어 대신 퇴행, 소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죽음’이라는 명사가 가장 어울리는 장소이다. 불교는 인간의 운명의 굴레를 ‘生老病死’로 표현한다고 한다. 요양원 입소자들은 生을 지나 老에 접어들어 病을 지니고 死로 가는 문턱에 다다른 분들이리라.

老에 접어들어 치매라는 病이 들면 성품의 변화가 찾아온다. 耳順은 사라지고, 어린아이처럼 잘 토라지며, 쉽게 분노하고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난다. 더욱더 자기중심적이 되고, 편집증도 생겨 배우자를 의심하게 되며 나중에는 집에 물건이 없어지고 돈을 도난당했다며 수선을 피우기도 한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효자도 만정이 떨어져 나가게 되고 가족간의 갈등이 불거지게 된다. 인지기능이 침범되면 물건을 둔 곳을 잊거나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 사물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게 되고, 더 진행되면 외출 후 집에 오는 길을 못 찾게 되고, 자신의 중요한 과거사는 물론 가족의 이름도 기억 못하게 된다. 결국 가족의 존재마저도 잊어버리게 되고, 종내에는 자신에 대한 기억, 즉 자아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말기에는 모든 언어 구사 능력이 상실되고, 말이 없어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내게 되고, 대소변을 못 가려 벽에 똥칠을 하게 되기도 한다. 걷기 같은 기본적인 능력도 상실되고 뇌는 더 이상 신체에 무엇을 하라고 명령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얼마 안 있어 死의 문지방을 넘게 된다.

게다가 이 곳에 자발적으로 온 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게는 영문도 모르고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집은 아닌 것 같은데, 집이 어딘지는 모르겠고, 가족은 아닌 것 같은데 가족은 누군지 모르겠고….처음 입소한 이들은 희미해진 고향에 대한 향수로 애태우다가 그 기능마저 소실될 즈음에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어느 그리 멀지 않은 날, 내가 병원에 진료하러 출근하였는데 갑자기 자녀들이 병원에 들이닥쳐 나보고 어디 잠깐 가자고 그런다. ‘어어 지금 근무중이야’라고 항변하나 막무가내로 가자고 한다. 도착해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곳이다. 내가 왕진 가던 요양원 중의 한 곳이다. 어리둥절해 있는데 환의로 갈아입히고는 당분간 여기서 좀 지내세요라고 한다. ‘병원은?’ 하고 물으니 저희들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며 문을 닫고 나간다. 문은 굳게 잠겨 버린다. 불현듯 나의 미래도 이렇게 전개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끔 스치고 지나가곤 한다. 전혀 터무니없는 미래는 아닐 것 같다. 의사랍시고 老病死를 거스를 재주는 없으니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처음 보는 이인데, 왠지 이름이 낯익었다. 아아, 한 동네에 살았던, 연락이 끊겼던 친구의 아버님이었다. 너무 반갑기도 설웁기도 하여 인사를 드리나 다행인지 전혀 못알아 보셨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하셨다고 들었었는데, 예전의 그 좋던 풍채는 흔적도 없고, 겨우 뼈와 가죽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차트를 보니 당뇨, 고혈압, 뇌졸중 등의 이력이 적혀 있었다. 좌측편 마비가 와서 보행이 불가능했고, 콧줄에 의지해 식사를 해야 했다. 움직임이 가능한 우측도 그리 기능이 좋지 못하고 간혹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 근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만성적으로 무심히 환자분들을 대하던 둔감해진 내 뇌세포에 그 모습은 강한 일격을 주었다. 나의 미래가 겹쳐졌기 때문일까. 그날따라 더욱 영혼의 힘이 빠지고 우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상봉 후 달포쯤 지났을 때였다. 그 이에게 평소처럼 문안을 드렸다.

“요즘 무슨 재미로 사세요?”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이었다. 흐릿하지만 맑은 느낌이 드는 두 눈이 잠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할 일이 없어” 하며 미소를 지었다.

“네?”

“해방…이야…티비 볼래.” 더욱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내 뇌리를 강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개업 초기 병원 경영의 여러 가지 어려움, 두 아이 양육 문제 등 산적한 문제를 파헤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겉으로 볼 때는 깔끔한 도회지 중년 남성인척 했으나 속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내 인생이 고달프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학교란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심한 경쟁, 이성을 알게 된 후론 실연의 고통, 취업 후에는 과도한 업무, 결혼 후 부양과 육아의 짐, 개업 후 경영 압력 등을 견뎌야 했다. 실로 만만치 않은 인생의 하중이다. 그런데, 그 이는 그 모든 짐을 벗어 놓은 상태였다. 누가 그이더러 숙제를 하라 하는가, 일을 하라 하는가, 처와 육아를 책임지라 하는가, 세금을 내라 하는가. 이제는 모든 노동에서 해방되어 젊은 나보다 훨씬 자유로운 모습이다.

生이 아름답고 老病死가 추하다는 것은 비교적 젊은 나의 시각에서 바라본 오만과 오판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부처가 生老病死에서 벗어나려 출가하였다가 깨달은 것은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으리라. 그 이는 얼마 안 있어 死의 길로 떠나셨다. 나는 애도인지 축하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세월이 더 흘렀다. 올해로 어느덧 오십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언젠가 열릴 死의 문을 무심히 관조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생각하면서.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맞은 어느 초로의 농부의 심정이 이제야 절실히 이해가 와 닿는 느낌입니다. 항상 글을 쓰도록 옆에서 격려를 해준 사랑하는 아내 한뫼, 책상머리에서 내려오고 싶을 때면 어른거려 다시 올라가게 하는 두 아이 상수, 지오. 하나뿐인 여동생 소영, 우리 가족 삶의 모범이 되 주시는 장인, 장모님. 다 제가 글을 쓰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지원군입니다.

불완전과 모순으로 덕지덕지 땜질이 되어 있는 글을 택해주신 건 앞으로도 계속 글에 대한 갈망을 놓지 말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뇌에 의식이 남아있는 한 펜을 놓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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