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헐링 라이트펀드 투자선정위원장, 코로나19 등 국제보건 문제 해결사로 라이트펀드 활용 강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전세계 감염자가 지난 31일 기준 80만명을 넘어섰다. 글로벌 시대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한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이미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로 확산되며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및 풍토성 감염병은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는 점에서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 사망자가 수천만명에 이를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세계적으로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뛰어든 제약회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치료제와 백신이 언제쯤 나올지 확신할 수 없다.

특히 이러한 신종 감염병의 경우 당장에는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제약회사들이 많더라도 팬데믹이 끝나면 치료제와 백신 개발의지가 흐지부지된다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백신, 치료제 같은 약물은 시장 가격이 저렴한 데다 약물 하나를 개발하는데 10년 이상, 수억 달러의 비용이 소모되어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렵다.

따라서 감염병 및 소외질환 분야에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연구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R&D 기금을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D에 기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RIGHT Fund: Research Investment for Global Health Technology Fund)이다.

지난 2018년 7월 한국에 처음 뿌리를 내린 라이트펀드는 보건복지부, LG화학,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종근당, 제넥신 등 5개 제약사,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이 공동 출자한 기금으로, 감염병에 대한 백신, 치료제, 진단 기술 R&D 프로젝트를 선정, R&D 비용을 지원한다.

이에 감염병 연구 분야 글로벌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폴 헐링 라이트펀드 투자선정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 사태에서 보건의료 분야 연구자들과 제약기업 등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들었다. 폴 헐링 위원장은 스위스연방공과대학 이사회 부회장, 스위스 바젤대학 신약개발 과학 부분 교수, 노바티스제약 글로벌 연구소 총책임자를 역임한 바 있다.

- 코로나19 같이 필수적이나 수익성이 낮은 감염병 분야 R&D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민간, 정부 등 다양한 주체들이 R&D 지원을 분담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전 세계 정부, 국제기구, 민간기업, 시민사회가 협업해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해 더 나은 해법을 찾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이전보다 민관협력을 통해 이 분야 R&D가 활성화되고 있다. 라이트펀드도 이같은 차원의 민관협력으로 한국정부, 한국기업,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이 공동 출자해 저개발국가의 보건의료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감염병 분야 백신, 치료제, 진단 기술 R&D를 선정,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필수적이지만 수익성이 낮은 질병 분야 R&D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라이트펀드 같은 민관협력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 라이트펀드 같이 감염병 등의 보건의료 R&D를 위한 민관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각 주체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점 활용은 한정된 자원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 때문에 민관협력을 통해 가장 우선 시 되는 보건의료 문제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현재 진행되는 연구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그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가 빨리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물적, 지적, 기술적 자원이 필요한지 파악해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바티스 열대병연구소도 각 국가, 세계보건기구, 게이츠재단 등 다양한 주체와의 연계를 통해 인류의 보건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각 주체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성과를 이끌어내려 했다. 지금의 라이트펀드도 마찬가지다. 라이트펀드는 한국의 우수한 보건의료 R&D를 발굴한 뒤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해외 R&D 및 PDP기관과의 협력을 활성화해서 각 주체의 강점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활용해 성과를 내려 한다.

- 라이트펀드의 투자선정위원장을 맡기 전부터 한국 기업 및 연구소와 꾸준히 교류해온 것으로 안다. 제약산업계 글로벌 리더로서 그간 한국의 경우 제약 R&D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가? 감염병 같은 국제보건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제약 R&D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은 제약 R&D 분야에서 후발 주자였지만, 발전 속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빨랐다. 또한 최근 10년간 민간과 정부 모두 바이오 R&D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제약 분야 R&D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제약 및 백신 부문의 제형개발, 제조기술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창출했고, 글로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또한 한국의 진단기술은 이미 월등한 수준이며, 이는 최근 COVID-19 사태에서도 증명됐다. 이러한 한국 보건의료기술의 강점들은 저개발국가가 현존하는 치료법에 접근 못하는 요인들, 즉 생산용량 부족, 고비용, 유통 취약, 의료진 부족 등 국제 보건 문제 해결에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 라이트펀드 투자선정위원회 회장으로서 연구 프로젝트 선정 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의 강점을 가장 잘 활용한 프로젝트인지 보게 될 것이다. 또한 개도국의 감염병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이고 빠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이트펀드는 이 때문에 5가지 투자 원칙을 마련해 R&D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있다. 5가지 투자 원칙은 ▲저소득 국가의 공중보건 필요도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 ▲한국 생명과학 분야의 강점 활용 정도 ▲감염병 예방 및 치료에 대한 글로벌 불균형 해소 기여도 ▲투명성과 공정성 등으로 연구 프로젝트 선정 시 이를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 라이트펀드의 첫 기금 지원 R&D 프로젝트에는 어떤 것이 있었으며, 선정 이유는 무엇이었나?

지난해 처음 선정한 R&D 기금 지원 프로젝트는 백신 R&D 2건, 치료제 R&D 1건, 진단 R&D 2건이었다. 백신 분야 R&D 중에 6가 백신(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 간염, 뇌수막염, 소아마비 백신)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는 최빈국 아이들의 필수 백신 접종률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 또다른 백신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의 5세 미만 아이들을 위한 신접합콜레라백신이다. 경구용 백신은 효과가 높지만, 5세 이하의 영유아에서는 이 백신의 효과가 감소한다. 치료제 R&D 프로젝트는 오조나이드 기반의 새로운 말라리아치료제 개발을 위한 저가의 연속제조공정 개발이다. 이 과정은 오조나이드 기반의 새로운 말라리아치료제의 제조 비용을 크게 낮출 것이며, 현재의 대규모 배치 프로세스를 제한하는 제조 안전 문제도 해결할 것이다.

진단 R&D 중 하나는 말라리아 환자에게 G6PD 결핍증을 선별하는 2세대 버전 진단 기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에서는 진단기기의 사용자 오류를 줄일 수 있게 샘플 수집기 사용을 용이하게 했다. 진단 스트립 유효 기간을 18개월 이상으로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분자진단을 이용해 현장에서 광범위약제내성결핵을 진단할 수 있는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 진단기는 리팜피신을 비롯해 플로로퀴놀론, 아이소나이아지드, 아미노글리코사이드에 내성을 보이는 결핵균까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진단기는 두 개의 샘플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에 포팅되어 30 분 내에 결과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봤듯이,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선 초국가적 협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한국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며, 마지막으로 감염병 분야 한국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전자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기술들을 접목한 보건의료 R&D를 통해 원거리 지역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빠른 감염병 진단이나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대한 감시체계를 수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놀랍게도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휴대전화 사용 범위는 백신 커버리지 보다 높다. 이러한 잠재력을 고려해 라이트펀드가 질병 감시 플랫폼을 투자공모 범위에 포함시킨 것으로 안다. 이와 관련한 좋은 연구 제안서를 빠른 시일 내 검토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한국 연구자들과 기업들이 라이트펀드의 연구기금 지원 프로젝트에 더 많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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