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 진료비, 한의원이 의원 앞질러…한방 자보 진료비 47%가 비급여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업무를 맡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한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실한 심사 기준 때문이다. 건강보험 기준을 준용할 수 없는 비급여 진료비가 전체 한방 진료비의 4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지만 관련 기준은 부실해 심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의과의 비급여 진료비가 자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보 진료비, 한의원>의원

자보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 진료비에서도 한의원이 의원을 앞질렀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3년 전체 자보 진료비 중 16.6%를 차지하던 한방은 2014년 19.1%, 2015년 23.0%로 그 비중이 늘었다. 심평원이 자보 진료비 심사 업무를 위탁 받은 지난 2013년(7~12월) 한방 진료비는 642억원이었지만 2014년 2,722억원, 2015년 3,576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한의원들이 교통사고 환자 진료에 주력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구기관 수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자보 진료비를 청구하는 한의원은 2015년 기준 1만2,867개소로 전체 한의원의 94.5%가 교통사고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의원 중 자보 진료비를 청구하는 곳은 21.0%인 6,188개소였다.

총 자보 진료비 중 한의원이 가져가는 금액도 의원보다 많았다. 2014년 한의원의 자보 진료비는 1,911억원으로 2,439억원이었던 의원보다 적었다. 하지만 1년 만에 상황은 뒤바뀌어 한의원의 자보 총진료비는 2,479억원으로 급증해 의원(2,468억원)을 앞질렀다. 의원은 전년도 대비 1.2% 증가한 반면 한의원은 29.7%나 증가했다. 한의원의 자보 총 진료비는 종합병원(4,129억원)과 병원(2,660억원) 다음으로 많았다. 가장 높은 자보 진료비 증가율을 보인 곳은 한방병원으로, 2014년 787억원에서 2015년 1,100억원으로 39.8%나 늘었다.

한방병원과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수도 증가 추세다. 한방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013년 22만8,068명에서 2014년 32만2,687명, 2015년 58만2,500명으로 3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



한방 진료비의 47%가 비급여

문제는 한방 자보 진료비의 절반 가까이가 심사 기준이 미흡한 비급여 진료라는 데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한방 자보 진료비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45.2%에서 2015년 47.8%로 2.6%p 증가했으며 의과 비급여 진료비의 2.6배에 달한다. 한방 비급여 진료비 중 61.1%는 한방첩약이 차지했으며, 추나요법 15.6%, 한방물리요법 11.0%, 약침술 11.0% 순이었다.


한방 진료비는 급증하고 있지만 심사 기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보 진료 수가는 건강보험 기준을 준용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에 규정되지 않았거나 요양급여로 정하지 않은 진료항목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 자보 수가는 국토부에서 전문가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고 있다.

한방 비급여 진료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방첩약은 심평원 건의로 최근 관련 기준이 그나마 구체화됐다. 기존에는 아무런 기준 없이 한방첩약 1첩당 6,690원만 산정돼 있었다. 하지만 국토부가 지난 6월 27일 ‘자동차보험진료수가에 관한 기준’을 개정하면서 그나마 기준이 마련됐다. 개정된 기준에 따르면 한방 첩약은 환자의 증상 및 질병 정도에 따라 적절하게 투여해야 하며 1회 처방 시 10일, 1일 2첩 이내에 한해 1첩당 6,690원이 산정된다.

그러나 한방탕전료는 여전히 아무런 기준 없이 1첩당 670원으로 수가만 산정돼 있으며 복합엑스제, 한방파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사항 범위 내에서 실구입가로 산정한다.

비급여인 추나요법에 대한 자보 수가 기준도 ‘신체를 두부(악관절 포함), 경·상지부, 흉·요추부, 골반·하지부의 4부위로 구분해 2개 부위 이상을 시술한 경우에는 소정점수의 50%를 가산한다’가 전부이다.

약침술의 경우 ‘신체를 두·경부, 흉·복부, 요·배부, 상지부, 하지부로 구분해 2개 부위 이상을 시술한 경우에는 소정점수의 50%를 가산한다’는 기준에 따라 심사하고 있으며 최근 약침약제 수가 산정 기준이 ‘실사용량’에서 ‘1회당 2,000원’으로 개정됐다.

비급여 진료에 대한 자보 수가 기준은 국토부가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부분 건강보험 기준을 따라가고 있으며 건강보험에 규정되지 않은 것들은 내부적으로 검토해서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논의기구가 별도로 있지는 않고 심평원이나 관련 단체 등이 건의하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 여부를 검토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으며 협의해서 의견을 조율한다”고 말했다.

한방 진료비 심사에 애 먹는 심평원

그러나 심평원은 비급여에 대한 자보 수가 기준이 부실해 심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심평원 자보심사운영부 관계자는 “한방의 경우 전체 진료비 중 47%가 비급여다. 반면 의과는 대부분 급여로, 비급여는 2.5% 정도밖에 안된다”며 “모호한 기준 때문에 한방 진료비 심사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자보 수가를 산정하기 위해 정해진 과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관련 단체들과 합의해서 운영된 감이 없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사안별로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평원이 지난해 10월 자보 한방물리요법을 총 12개 세부 행위로 분류하면서 각각 수가인정 기준을 정한 것(‘자동차보험 진료수가 한방물리요법에 대한 행위분류 및 산정기준’)도 부실한 심사 기준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존에는 모든 한방물리요법이 청구코드 하나로 통일돼 있어 청구 및 심사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평원이 최근 공개한 ‘자동차보험 심사위탁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도 미흡한 한방 진료비 심사 기준이 문제로 지적됐다. 연구진은 “건강보험 기준 비급여 한방진료비 및 경상 장기입원 내원 환자 등에 대한 심사 기준인 ‘한방 표준임상진료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입원 진료비 중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근골격계 손상질환, 후유증으로 호소하는 신경계·순환계 질환 등 표적 질환, 한방 전체 진료비의 28%를 차지하는 첩약 및 장기요양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는 등 한방 진료비 중 특별히 금액이 크거나 증가율이 높은 항목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한방진료비에 대해 심평원이 정할 수 있도록 관련 고시의 개정이 필요하며 한방의료기관의 인력·시설·장비에 대해 실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가 기준 논의 기구 설립 필요성 제기


부실한 심사 기준 때문에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처럼 자보 수가 기준 등을 논의하는 별도 기구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비급여에 대한 자보 수가 기준을 만드는 기전은 없었다. 보험사와 관련 단체들이 모여 논의해서 결정하는 수준이었다”며 “자보 진료비 심사 업무를 맡아서 하다 보니 자료 확보가 어려운 비급여에 대한 심사가 특히 어렵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보 수가에 대해 논의하는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 심평원에는 심사권만 있기 때문에 국토부가 자체적으로 기준이나 수가를 의결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를 행정력을 갖춘 분쟁조정위원회의 형태로 발전시켜 국토부나 심평원 내 독립된 기구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자보 심사위탁 효과 분석 보고서’).

심평원은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에 분쟁심의회의 법적 지위체계와 기능역할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현재 분쟁심의회는 민간자율조정기구라서 심평원이 심사한 결과에 대해 다시 심사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맞지 않다”며 “건강보험 권리구제절차의 분쟁조정위원회처럼 행정적 권위를 갖는 분쟁심의회를 국토부 소속으로 설치하거나 심평원 내에 독립된 3심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라고 했다.

자보 수가 관련 기구 설립에 대해서는 국토부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보 수가 기준에 대해 논의하는 별도 기구가 있으면 우리도 좋다. 현재 국토부 내에서 자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2명뿐일 정도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며 “복지부에 있는 건정심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가 현재 국토부에는 없는데, 생긴다면 관련 업무가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 부족한데 기준이 마련되겠나”

한방 진료비 심사 기준을 마련하려면 안전성과 유효성부터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가 약침술 등 한방 진료에 대한 자보 수가를 산정할 때마다 문제로 지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의료계 관계자는 “횟수만 나와 있는 자보 수가 기준을 보면 한방의 현실을 알 수 있다”며 “의과는 질환별로 의학적인 기준이 있다. 신경학적 증상이 없을 때 CT나 MRI를 찍으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니 그에 따른 급여 기준 등도 정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한방의 경우 척추 디스크를 동반하지 않은 요통일 때는 침을 몇 번이나 맞아야 한다는 등의 질환별 기준이 없지 않느냐”며 “알면 알수록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자보에서 한방 진료에 대한 수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준을 정하려면 의학적인 타당성과 안전성, 유효성이 검증돼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한의계 내 학문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검증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가 기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의사가 살고 한의학이 살려면 동의보감에만 집착하지 말고 한방 진료 행위와 한약 등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스스로 검증해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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