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 외래진료비 40% 이상이 한방…지난해 800억원 이상 과잉진료 추정

한방 자보 비급여 비용 높아지지만 심평원에는 심사기준도 없어

지난 3월 10일, 30대 초반의 남성 A씨는 운전 중 뒤차가 들이받는 사고를 당해 차량의 후미 번호판이 손상되는 피해를 입었다. 사고 이후 B한의원을 내원한 피해자 A씨는 ‘경요추 염좌 및 긴장’이라는 진단을 받고 거의 매일 한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4월 15일까지 29일간 보험사에 청구된 그의 치료비로 무려 157만9,620원이 나왔다. 하루 평균 진료비가 5만4,469원으로, 이는 건강보험 환자의 한의원 평균 외래진료비 2만732원의 두 배 가량 되는 수치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만약 이 환자가 한의원이 아닌 의원에서 진료를 받는다면 어떨까. 교통사고 환자 중에 의-한방 협진 의료기관에서 동일 기간 진료를 받는다면 진료비나 진료일수가 달랐을까.

A씨처럼 지난 3월 교통사고 후 ‘경요부 염좌’ 진단을 받고 의-한방 협진의료기관에서 2개월간 진료 받은 40대 여성 환자가 있다. 그녀는 5월까지 동일한 의료기관 내에 있는 의원과 한방병원을 오고가며 진료를 받았다.




의원은 51일간 내원했고 이중 한방병원은 28회 방문했다. 총 진료비는 176만4,080원. 의원은 51일간의 진료비가 총 47만3,280원이었던 데 비해 한방에서는 129만800원이 청구됐다.

의원 진료횟수가 한방보다 1.8배 많지만 정작 진료비는 한방이 2.7배 많고, 일당 진료비는 무려 4.9배 높았다. 왜 그럴까.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물리요법 등은 적응증이 중복되는 유사한 치료인데도 의-한방에서 각각 시행됐다”며 “교통사고 피해자가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자동차보험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고가인 한방 비급여 치료가 이뤄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자보 외래 진료비 44%한의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3,579억9,800만원으로 이중 45.7%인 1,635억8,100만원이 비급여 진료비다. 전년도 비급여 진료비 1,225억6,200만원에 비해 33.5%가 늘어난 것으로 첩약, 추나요법, 약침, 한방물리요법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방 비급여 진료비가 급증하면서 전체 자보 외래 진료비의 절반은 한방의료기관에 지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자보 외래 총 진료비가 5,324억4,739만원이었는데 이중 ‘한의원’ 비용이 전체 43.7%로 1위를 기록했고, 금액으로는 2,324억5,356만원이었다. ‘한방병원’의 외래 진료비 472억8,366만원까지 더하면 전체 외래 진료비의 52.5%가 한방에 지출됐다.

한방 진료비 증가에는 한방을 찾는 외래 일수 급증도 한 몫 했다. 지난해 한방의료기관의 내원일수는 전년 대비 한방병원에서 25.5%, 한의원에서 22.8%가 증가했고, 심사 결정된 총 진료비도 각각 41.8%와 29.4%가 늘어났다.

전체 의료기관의 외래 내원일수가 전년대비 10.3%, 총 진료비가 18%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한방은 두 배 이상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방병원과 한의원의 자동차보험 사고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환자유치에 나선 결과라고 해석했다.

순천향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위탁 수행한 ‘자동차보험 심사위탁 효과분석 보고서’에는 “자동차사고의 일반적인 패턴과 달리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한방 병의원에 대한 선호도가 상승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자동차보험사고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적극적인 환자 유치의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의료기관별 1인당 진료비를 분석하면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보건소 포함)의 평균 진료비는 안정화되고 있는 반면 한방의료기관의 평균 진료비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연구진은 “한방의료기관이 수익극대화를 목적으로 자보 환자에 대해 (의료서비스의) 과잉공급 또는 고액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고가의 물리치료 반복 시행 빈번

한방 진료비 증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고가의 한방물리치료가 대표적이다. 의과와 동일한 의료기기를 사용하거나 유사한 행위를 하는데도 비급여라는 점을 악용해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씨가 사고가 발생한 3월 10일 B한의원에서 받은 진료비만도 무려 20만6,804원이다.

세부적으로는 기본진찰료 1만1,820원과 급여항목인 ▲침술(경혈침술, 투자법 침술, 침전기자극술) 1만2,360원 ▲부항(자락관법 2부위 이상) 8,540원 ▲기타 변증기술료 등 6,624원 이외에도 다수의 비급여 진료를 받았다. ▲약침술(1만1,360원) ▲첩약(당귀수산 14만7,200원), 한방물리요법으로는 ▲경피경근온열요법 ▲경피적외선조사요법 ▲ICT(8,900원)까지, 이 모든 행위가 단 하루에 이뤄졌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한방물리요법은 각 행위 종류별로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한방의료기관별 청구가격이 천차만별이다”라며 “과잉청구에 대한 통제가 없음에 따라 불필요한 물리요법 시술이나 의료기관별 청구단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보에서 한방은 첩약(1첩당 6,690원), 추나요법(상대가치점수 149.16점), 약침술(97.47점) 등에서는 책정된 수가가 있지만 한방물리요법은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기준’ 제8조에 따라 해당 진료에 소요된 실제비용으로 청구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대표적인 한방물리요법 중 ‘근건이완수기요법’은 최소 3,000원부터 최대 6만원까지, ‘경추견인’도 4,000원에서 5만원으로 청구기관마다 금액이 다르다.

이를 의과와 비교하면 유사한 물리요법에 수가는 7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특히 한 보험회사에 지난해 10월부터 1월까지 청구된 물리요법 진료비 자료를 보면, 한방의료기관 내에서도 한방물리요법의 가격은 최소 10배에서 최대 77배까지 차이가 났다.

구체적으로 4개월간 청구된 한방의 ▲초음파 진료비는 최소 390원에서 최대 3만원 ▲TENS는 780원에서 1만원 ▲ICT는 1,000원에서 1만5,000원 ▲골반견인은 2,000원에서 5만원가지, 청구한 비용이 들쭉날쭉했다.

그 외에도 한방은 ▲도인운동요법(1부위 기준)을 2,500원부터 최대 7만5,000원까지 받아 30배 차이가 났고, ▲근건이완수기요법(1부위 기준)은 6,000원에서 많게는 6만원을 받아 10배 차이를 보였다.

이에 비해 의원은 모두 급여항목으로 돼 있어 ▲초음파 1,230원 ▲TENS 3,680원 ▲ICT 3,680원 ▲골반견인 6,610원으로 한방 수가의 평균보다 모두 적게 책정돼 있다.

보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의과에서는 급여항목으로 일정한 수가가 청구되지만 한방은 비급여라는 이유로 유사한 행위를 하고도 비용은 수십배 차이가 난다”면서 “한방에서는 의과와 다른 행위라고 주장을 하는데, 정작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보는 건강보험급여 기준을 준용하기 때문에 급여항목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불가피할 경우 비급여를 해야 하지만 한방은 이마저도 안 된다”면서 “수가 또한 유사한 의과물리요법에 준하는 비용을 청구해야 하지만 한방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는데, 이를 막을 기전도 없다”고 덧붙였다.

치솟는 비급여 가격심평원 심사 기준 부재

심평원이 의료기관의 진료비 및 진료행위를 충분히 심사할 수 있는 체계가 아직 미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심평원이 자보 진료비를 심사하고 있지만 진료비 심사기준 제정권은 없는 상태라 그 권한을 주지 않는 한 심평원이 임의적으로 기준을 만들 수는 없다”면서 “또 비급여에 대한 심사가 어렵다는 것은 비단 자보만의 문제는 아니며 세부 심사 및 인정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손해보험협회 관계자도 “건강보험은 심평원이 일정 절차에 따라 진료비 심사기준을 제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 자동차보험에서는 그러한 권한이 없다”며 “심평원이 적정한 진료의 기준을 만들어야 과잉진료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한방 비급여 진료비 관리 부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일부의 과잉진료 및 의료쇼핑으로 인한 진료비 증가는 이듬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자보 한방진료비 증가율 32%를 건강보험 한방진료비 증가율 2.1%과 단순 비교해도 지난해 진료비 중 825억원은 과잉진료에 해당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 825억원의 진료비를 아낄 수 있다면 자동차보험 가입자 2003만 명에게 4,000원씩 골고루 나눌 수 있다는 게 손보협회의 설명이다.

이에 자배법을 개정해 심평원에 진료비 심사기준 제정권을 부여해야 하며, 의료기관에 대한 현지조사도 가능하게 관련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심평원에서 과잉진료 등이 의심되는 의료기관에 대해 현장에서 조사하는 것도 법적 근거가 없어 어려운 실정”이라며 “건강보험처럼 자보에서도 심평원이 불량 의료기관에 대한 현지확인 후 법 위반 등에 대해 업무정지 등의 제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심평원 단독이 아닌 보험업계와 공급자가 함께 협의할 수 있는 별도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한방 행위에 대한 표준화를 통해 급여 기준을 만들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한방을 보장 범위에서 빼야 한다”면서 “보험사에서 보장 범위와 적정 금액을 정하기 위해서는 공급자와 보험사가 함께 협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한방의 치료횟수나 부위 등 보장 범위를 불문하고 이를 악용하는 한방의료기관이 있다”며 “보험상품을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한 것인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설득해야 하고, 한방물리요법의 직접 비용을 산출해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방의 급여화를 위해서는 한방물리치료 행위에 대한 안전성 검증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 제도를 악용하는 의료기관과 환자로 인한 피해가 선의의 가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이하 자보심의회)처럼 상해환자를 위한 합리적인 급여기준을 만들고 환자들의 치료기준을 협의해 분쟁이 일어났을 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현 체계가 계속될 경우 일부 과잉 진료 및 과비용을 부과하는 의료기관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생기거나 보험료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측은 “비급여 진료비는 한방이든 의과든 적정한 국민진료비 지출을 위해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며 “자보 수가는 건강보험 기준 비급여 진료비도 심사대상이기 때문에 한방물리요법 등 한방수가·기준마련 및 개선·보완을 위해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보험에서 개발 중인 한의 표준임상진료지침을 적용하는 등 자보 한방진료비 관리를 위해 노력 중에 있다”며 “한방도 ‘비급여 진료비 가격공개’ 업무와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