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아니라도 대부분 착용…소수 주장 다수 피해 우려 정책이 일사천리 통과되는 현실 안타까워”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인 명찰 착용을 의무화한 의료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산적한 의료현안은 뒤로한 채 실효성 없는 정책만 일사천리로 강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상당수 의료인이 이미 명찰 착용을 하고 있는데 위반 시 과태료까지 부과하겠다는 방침에 명찰 착용이 그만큼 중요한 사항인지 의문이 든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의료인 및 의료기사의 명찰 착용 의무화를 규정한 의료법 시행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서는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한 관계자는 “개인 정보가 중요시 되는 시대에 개인 정보를 담은 명찰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면서 “의사 뿐 아니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의료기사까지 명찰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또 “명찰 착용 의무를 위반한 경우 의료기관장에게 시정명령이 내려지고 또 다시 위반한 경우에 1차 30만원, 2차 45만원, 3차 7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명찰 착용이 얼마나 중대한 과실이기에 권고도 아니고 과태료 처분을 내리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한 재활의학과 개원의는 명찰 착용 의무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 법은 일부 성형외과에서 이뤄진 유령수술 때문에 논의가 시작된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적용 대상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원래의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법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이미 대부분의 의사들이 명찰을 착용하고 있다”면서 “법으로 이런 것까지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의사들을 의심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쁘다”고 피력했다.

그는 “의료행위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믿고 내원해 진료를 진행하는 것으로 그 책임은 의료기관의 장이 지는 것이다. 이처럼 상호 신뢰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 의료행위인데 왜 정부가 명찰을 착용하라고 강제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어떤 명찰을 달지 규정하는 것 자체가 법치만능주의”라고 말했다.

한 안과 개원의는 “다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들은 추진하지 않으면서 일부 소수가 주장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정책들은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되는지 답답하다”며 “국민 건강권을 위해 개선돼야 할 문제들이 산적한데 의료악법들만 계속 통과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급 이상에서는 명찰 착용 의무화가 시행되더라도 큰 혼란이나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에 나서는 모습이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간호조무사까지 이미 명찰을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별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미 법에서 규정한 명찰을 착용하고 있다”면서도 “간호조무사들의 경우 직원증은 차고 있지만 법에서 요구하는 사안과 조금 달라 그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다. 법 시행 전에 준비를 마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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