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제백신연구소(IVI) 제롬 김 사무총장

독립유공자, 의사,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백신 전문가, 군인, 전쟁, 국제기구 수장 등등.

이는 모두 한국에 본부를 둔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IVI) 제롬 김(한국명 김한식) 사무총장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3월 국제백신연구소에서 공식 업무를 시작한 제롬 김 사무총장이 일제강점기 이승만 박사 등과 함께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김현구 선생의 손자라는 점은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부분이다. 하지만 그는 독립유공자이기에 앞서 오랫동안 미 국방부에서 의사로서 근무하면서, HIV 백신 개발 등에 지대한 공헌을 한 뛰어난 연구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6일 IVI 사무실에서 만난 김 사무총장은 온통 ‘백신 개발 및 보급’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임기 중 반드시 이루고픈 성과로 IVI의 보다 탄탄한 백신 연구개발 능력을 꼽으며, 백신의 개발과 보급 IVI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IVI가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백신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이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능력을 갖추도록 하고 싶습니다. 게이츠재단을 비롯해 한국 등 각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IVI는 일부 백신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 그 결과가 가시화됐습니다. 화이자와 같은 거대 기업은 백신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1조원 가량을 투자하는데, 우리는 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러한 (백신) 연구에서 상용화까지의 메커니즘을 계속 이어나가긴 위해선 연구개발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힘든 일입니다.”

백신은 사전에 질환의 발병을 차단하기 때문에, 최선의 치료라고도 일컫는다. 때문에 과거 천연두 등 일부 전염병에 국한됐으나, 최근에는 암(자궁경부암) 예방에까지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백신은 대개 고가일 뿐만 아니라, 열에 약하다는 단점 등 환경적 한계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선 ‘그림의 떡’인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에 장티푸스, 콜레라 등은 소위 ‘돈’이 되는 질병도 아니어서 기업들의 투자도 쉽지 않다.

여기에 IVI의 존재 이유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경구용 콜레라백신 ‘샨콜’이 콜레라 전염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를 세계적 의학 학술지 ‘란셋’(Lancet)에 게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IVI는 국내 백신업체인 ㈜유바이오로직스와 샨콜(국내명 ‘유비콜’) 대량생산을 위해 협력해 오는 2016년까지 WHO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E형 간염 백신에 대한 관심도 필요”

김 사무총장은 구체적 예로 로타바이러스 백신 등을 꼽았다.

“지금까지는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백신 파이프라인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예컨대 어린이들의 대표적인 설사병인 로타바이러스의 경우 현재 백신이 나와 있지만 너무 비싸서 많은 국가의 어린이들에게 사용되고 있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E형간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연간 7만명 정도가 이 질환으로 희생되는데 대부분이 임산부입니다. 임신 시 E형간염이 발생할 경우 사산이나 산모 사망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 질환들에 대한 관심은 적었습니다.”

IVI는 현재 콜레라와 장티푸스를 비롯한 설사병과 뎅기열 등에 대한 백신연구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20여개 국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 백신의 상용화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더 다양한 질환으로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다만, 이들 백신의 전제 조건은 보다 저렴하고 유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선 각 분야의 관심과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후원에 대해선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게이츠재단 관계자들과 SK케미칼을 방문해 장티푸스 백신 개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SK와 같은 거대기업에서 세계 보건에 기여하겠다는 약속과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을 보며, 좋은 모델(사례)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게이츠재단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밖에 LG그룹과 기아자동차가 각각 홍수 등 재난이 발생한 에티오피아와 말라위에 백신을 보급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선 것도 대표적인 민간 지원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가 생일날 전쟁터에서 들은 소식은?

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타가 공인하는 HIV 백신 전문가다. HIV 백신이 실제 감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3상 임상시험을 주도했으며, 백신 접종에 따른 실험적 연관성과 HIV 염기서열 변화를 확인한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연구들은 세계적 학술지 NEJM과 네이쳐 등에 게재됐다.

여기서 잠깐 연구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그는 자신의 연구가 NEJM에 게재되기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쟁터에서 들었단다. 미국 하와이주 출신인 그는 예일의대를 졸업하고 듀크대 메디컬센터에서 수련을 받은 후 진로를 ‘군인’으로 잡았다. 이후 20여년 넘게 미국 국립군의과의과대학 교수로, 미군 HIV 연구 프로그램 수석 부책임자 등으로 활동했는데, 그 사이 걸프전과 미국-아프가니스탄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 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병 치료 등을 하면서 틈틈이 협력하던 연구자들과 이메일 등으로 논문을 다듬으며 NEJM에 투고를 했는데, 게재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IVI에서도 자신의 전문 분야인 HIV 백신의 노하우를 전수할 뜻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재원 등이 허락한다면 (IVI에서도) HIV 백신 관련한 연구역량을 높이고 싶어요. HIV는 여전히 많은 이들을 고통에 빠지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IVI에서의 HIV 백신 개발은 환자들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이 백신 강국이 되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세계 5대 백신 생산국을 목표로 설정했다고 들었는데, 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잠재력을 가진 과학자들과 바이오 기술, 그리고 기술을 제품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어우러져 삼박자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이오 분야는 분자생물학, 면역학 등 기반이 되기 때문에 기초의학이 탄탄해야 합니다. 또 개발 리스크도 크기 때문에 꾸준한 지원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것만 갖춰지면 한국에서 암 치료가 가능한 백신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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