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집단면역은 허구다?

모든 약이 그렇듯 백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100% 효과, 100% 안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백신 회의론자들은 위험과 이익이 공존하므로 ‘맞고 싶은 사람만 맞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백신으로 인한 위험보다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접종을 받자는 거죠. 그러나 대다수 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방접종은 나 자신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할뿐더러 질병 전파를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백신의 효능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백신은 질병 전파를 억제할 수 없고, 오히려 질병을 전파시킬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조한경씨는 한발 더 나아가 ‘집단면역은 허구다’라고까지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단최면'만 존재할 뿐, '집단면역'은 없다…집단면역을 둘러싼 논리는 이렇다…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동들이 본인들은 질병에 감염되지 않은 채 예방접종을 받은 아이들에게 질병을 퍼뜨리고 다니는데, 접종을 받은 아이들의 백신은 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모두 접종을 받아야만 효과가 있다"는 식이다.” (환자혁명, 314-315p)

이 책에는 맞는 말이 거의 없지만 집단면역의 논리 역시 틀렸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에서 설명하는 집단면역의 의미를 봅시다.

"군집면역: 특정 집단에서 해당 감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갖는 구성원의 비율을 의미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집단면역을 획득하면 면역력이 없는 구성원에서도 간접적인 질병예방효과가 나타남."(성인 예방접종 가이드 발간 배경과 의의 - 질병관리본부)

그렇습니다. 집단면역은 사실 백혈병, 암, AIDS와 같이 면역 결핍으로 백신을 맞을 수 없거나, 접종을 받아도 효과가 없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면역자가 늘어날수록 감염자의 질병 전파력은 약해집니다. 그러다 면역자가 일정 비율을 넘으면(군집면역 역치, herd immunity threshold) 면역이 없는 사람도 감염에 노출될 확률이 극히 낮아집니다. 면역자들의 ‘우산’ 속에 들어가는 거죠. 따라서 면역력이 없는 구성원도 간접적인 질병예방효과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군집면역입니다. 면역적 약자들이 들어가라고 만든 우산에 엉뚱한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니 '무임승차'라는 표현이 나올 수밖에요.

저자는 제법 강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집단면역의 이론 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집단면역의 핵심인 ‘감염병 재생산지수(reproduction number)’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거든요(환자혁명, 301p). 질병의 감염병 재생산지수에 따라 해당 백신의 군집면역 역치가 정해집니다. 다만 '백신으로는 집단면역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집단면역은 음모다?

"'집단면역'을 언급하는 사람치고 '집단면역'의 역사적인 본래 의미까지 알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집단면역은 애초에 '자연 감염'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였다. 홍역과 관련해서 최초로 생겨난 말이다. 전체 인구의 60%가 자연 감염을 통해 면역이 생기면 그 집단에서 홍역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집단면역'이란 용어를 백신에 적용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백신 접종 거부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자…미접종자들을 겁박하기 위해 느닷없이 강조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환자혁명, 315p)

조한경씨, 제발 수준 있는 사람 좀 만나고 다니세요. 자기가 모르면 남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 맘에 안 들면 무조건 음모라니 어쩌면 그렇게 ‘안아키’의 김효진씨와 똑같은가요? 집단면역의 의미랍시고 대표적인 백신반대단체 Vaccine Awareness Network(VAN)의 논리를 그대로 베껴왔군요(참고자료1). VAN에서 집단면역에 관한 최초 연구라고 주장하는 자료는 1932년 AW Hedrich가 발표한 홍역 유행 양상에 대한 논문입니다(참고자료2).

사실 'herd immunity'라는 용어는 Hedrich의 논문 발표 10년 전부터 이미 사용되었습니다(참고자료3). Hedrich의 연구로 군집면역이 실험실 밖에서 자연현상으로 처음 인지됐는지는 몰라도 홍역과 관련해서 최초로 생긴 표현은 아닙니다. 물론 집단면역이란 용어가 처음에 자연 감염만을 설명한 단어였던 것은 맞습니다.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주요 백신들이 개발되기 전에 나왔기 때문이지, 백신에 이 개념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AW Hedrich의 연구는 '홍역환자가 몇 % 이상 발생하면 그 이후 홍역 발생률이 일시적으로 감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현상의 원인을 집단면역으로 설명하지요. 그런데 조한경씨는 모르는 건지, 고의인지 이 연구를 묘하게 해석합니다. 전체 인구의 60%가 자연감염을 통해 면역이 생기면 그 집단에서 홍역이 '사라질 수 있다'니? 인구의 60%가 홍역에 감염되면, "아, 할당량은 채웠다!"하고 그 땅에는 앞으로 홍역 바이러스가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단 뜻인가요? 자연감염으로 집단면역력 60%를 유지한다는 것은 홍역이 그 지역에서 풍토병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음 그림을 봅시다.

이렇게 해서 홍역이 사라진다고 기대하는 건 역학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지요.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병에 걸리지 않고도 집단의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백신입니다. 실제로 백신 개발과 집단면역은 동시에 논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홍역만 해도 1963년 홍역백신 개발 이후 1967년에 벌써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참고자료4). 사람들이 홍역백신 접종을 반대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집단면역과 백신의 관계는 미접종자들을 겁박하기 위해 느닷없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백신의 역사와 함께한 것입니다. 할 말이 없네요. 제발 그러지 좀 말자는 겁니다.

백신 접종 이전부터 감염병이 사라지고 있었다?

“장티푸스나 결핵은 백신 없이도 선진국에서 퇴치되었다. 1960년대 홍역 백신이 미국에서 출시되기 이전부터 이미 홍역의 위세가 크게 꺾여 있었다. (중략) 영양 상태와 위생 관념 덕분에 개체들의 면역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환자혁명, 111p)

백신 반대론자들은 백신 접종 전부터 영양과 위생 덕에 각종 전염병이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사망률 그래프를 들죠. 미국의 전염성 질환 사망률 그래프입니다.

20세기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디프테리아(파란색), 백일해(주황색), 홍역(초록색) 사망률이 모두 감소합니다. 디프테리아 백신은 1920년대, 백일해 백신은 1940년대, 홍역 백신은 1960년대에 개발되었습니다. 이 자료만 보면, ‘홍역 백신이 미국에서 출시되기 이전부터 이미 홍역의 위세가 크게 꺾여 있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자료를 잘못 제시한 것입니다. 사망률은 질병의 유행 정도보다는 치료 기술의 향상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예방보다는 치료의 영역이란 뜻입니다. 질병 유행이 이미 감소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사망률 그래프가 아니라 발병률 그래프를 제시해야 합니다. 미국의 디프테리아, 백일해, 홍역 발병률 그래프입니다.

백신접종 전후로 각 질환의 발병률이 의미 있게 감소했습니다. 우연히 동시에 위생과 영양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같은 호흡기 질환인 디프테리아, 백일해, 홍역의 발병률 감소 시점이 각기 다른 이유는 뭔가요? 영양과 위생으로 세 가지 현상을 억지로 꿰어 맞추기 보다 백신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최근의 예를 볼까요? 1992년 백신 도입 후 영국에서는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b(이하 Hib) 유병률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1999~2003년 사이 새로 개발된 DTaP/Hib 혼합백신의 효능 이상과 백신 거부 여파로 유병률이 점점 반등합니다. 영국 정부는 불량 제품을 교체하고, Hib 백신 추가접종 캠페인을 시행했습니다. 이후 Hib 발병률은 다시 감소했습니다. Hib이 일시적으로 유행했다가 다시 감소한 사건을 백신 이외의 요소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21세기 영국에서 단 몇 년만 어린이 영양과 위생이 악화되었다가 개선된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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