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그간 16회의 연재를 통해 <환자 혁명>이라는 책이 얼마나 많은 허구와 위험한 정보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안아키> 사태 이후 또 다시 불어 닥친 사이비 의료의 광풍으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막상 일을 하면서 정보와 능력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지만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신 덕에 예정대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썼던 글들을 다시 읽으며 이 사태를 돌아보니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선 <안아키>와 <환자 혁명>이 모두 건강서 분야에서 돌풍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 권 모두 황당할 정도로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고, 자격 미달인 자들이 개인적 이익을 꾀하기 위해 얕은 술수를 부리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 데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입니다.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조한경의 <환자 혁명>은 거의가 인터넷에 영문으로 나돌고 있는 사이비들의 조잡한 문건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런 문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작성된 것이고요. 결국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불신은 우리나라 의료의 특수성을 만나 더욱 깊어집니다. 제일 많이 들리는 말이 의사들이 불친절하다, 설명이 부족하다, 환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불만입니다. 우리 의료가 왜곡된 데는 수많은 이유와 사정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와 사정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순과 오해를 해소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되는 존재입니다. 당장 매일 환자를 보면서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고, 조금 더 환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한 마디라도 더 설명을 해주려는 마음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쉽게 ‘의사’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의사는 균질한 집단이 아닙니다. 글을 연재하면서 수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그 중에는 비과학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환자를 이용하는 의사들을 성토하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의사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감한 자정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책이나 강연을 통해 비과학적인 주장을 펼치는 의사들은 저희라도 나서서 과학적인 비판을 해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을 불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학적인 사고와 태도가 우리 생활에 깊이 스며들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수명이 늘어나고 훨씬 건강하게 살게 되었는데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만 부각시키면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나 가족의 병을 해결하지 못해 한을 품었거나, 의료사고를 당했거나, 기타 의료에 관련되어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고, 그분들의 얘기를 듣고 정의감에 불타 현대의학 전반을 증오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를 그 자체로 풀면 괜찮은데, 의학을 부정하면서 이상한 이론을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거나, 해열제를 먹으면 면역이 떨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황당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금방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때로는 자연주의, 인권, 전통중시, 사회정의 등 그 자체로는 바람직한 사상과 결합하여 아주 강고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비과학이 정의와 결합하는 순간, 과학적인 주장이 곧 불의라는 이상한 구도가 형성되고 맙니다. 명백한 근거를 들어 책의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는 데도 제약회사의 돈을 받았다거나, 의사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과학적, 합리적인 사고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의사나 과학자의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정부와 언론의 태도 또한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몇 가지 섭섭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동아일보>를 비롯한 크고 작은 언론에서는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이 책이 무슨 대단한 철학이라도 전하는 양 기사화했습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는 ‘오늘의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현대자동차> 그룹에서는 사내 방송을 통해 좋은 책으로 소개했다고도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과 언론에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이비와 과학을 가리지 못한 채 경솔하게 이런 책을 추천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과학적 토양이 얼마나 척박한지 드러내줍니다. 특히 의학기자까지 두고 있는 신문사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저희는 이 책으로 인해 <안아키> 때처럼 큰 사고가 나는 것을 막고자 보건복지부, 대한의사협회, 언론에 수많은 제보를 했습니다. 복지부는 단속 근거가 없다고 경찰로 공을 넘겼고, 경찰 역시 저자의 국적이 미국이며 피해자가 없다는 점을 들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의협을 비롯한 의료단체에서는 오히려 사이비를 순교자로 만들어 줄 우려가 있다며 무대응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다양한 언론사 역시 피해자가 없으면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모든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고가 나야만 이슈화시킬 수 있다는 말은 사고를 기다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정도가 되었는데 예상되는 피해를 미리 막지 못한다니요. 앞으로 이런 정보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예방적 시스템을 마련할 방법은 없을까요?

이전에도 썼지만 미국에는 의사 말고도 의료인이 많습니다. 척추지압사(카이로프랙터), 동종요법사, 자연요법사, 임상영양사, 침술사, 물리치료사, 한약사, 마사지치료사, 기공치료사 등입니다. 하나 같이 자격증에는 닥터라고 되어있습니다. 그걸 근거로 “의사”라고 주장합니다. 의사만큼, 아니 의사보다 공부를 더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저희가 의사라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거짓말을 하나 싶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조한경씨가 다녔다는 카이로프랙틱 스쿨에 전화를 해서 입학문의를 해보았습니다. 그 뒤로 입학을 권유하는 이메일과 전화를 10여 차례 받았습니다. 어떤 의과대학이 이렇게 집요하게 입학을 권유할까요? 학비를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10학기를 마치는 데 1억2,000만원이 넘게 들더군요.

물론 이 분들도 일정한 영역에서 공부를 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뭔가를 알 겁니다. 그럼 그 분야를 열심히 하면 됩니다. 전문가는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뇌수술을 하겠다고 나서거나, 영상의학과 의사가 항암치료를 하지 않지요. 하지만 사이비들은 모르는 게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조한경씨가 기막힌 사업모델을 제시했으니 비슷한 일이 또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이미 해외에서 수상쩍은 자격을 따왔다고 내세우며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회 시스템의 손은 미치지 않고, 환자들은 뭔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속아 넘어갑니다. 심지어 의사들 중에도 외국 유명대학에 돈을 내고 한두 학기 “참관”을 하고 나서는 대단한 공부를 하고 온 양 떠들고, TV에도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수상쩍은 과정을 이수한 후 모 학회에서 초청강사로 연례학회 특강을 한 사람도 봤습니다. 한국을 얼마나 어수룩한 사회로 보면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을까요? 명확하지 않은 해외 자격을 경계해야 합니다. 당국의 관심과 환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합니다.

의사 중에도 섭섭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조한경씨의 책에 추천사를 써주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해장국 같은 책’이라고 입 발린 소리를 하는 분들도 의사일까요? 책을 읽어나 보고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저희가 연재를 시작하자 ‘기능의학을 죽이려는 음모’라며 격분하셨습니다. 그때 저희는 기능의학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책 속에 따라서는 안 될 정보, 위험한 정보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진실과 거짓,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환자에게 해를 끼쳐도 ‘우리 편’이면 된다는 진영 논리로 환원시켜 음모론을 들고 나온 분이 같은 의사란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저희는 능력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이번 연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별것 아닌 글을 쓰면서도 팩트를 끝까지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글을 많이 써보지 않았기에 이틀에 한 번이란 스케줄도 버거웠습니다.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 후, 조한경씨가 학력이나 경력에 대한 문제를 일부 수긍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네이버 카페를 탈퇴했습니다.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여 연재를 중단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사를 통해 사이비 의료의 뿌리가 너무나 넓고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였습니다. 사이비들은 항상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팩트를 잘 정리해두면 환자들은 물론, 동료 의사들이 일선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올린 글에도 허점이 많고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이 시작점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놓친 것들, 틀린 것들, 보완 논리 등을 알려주십시오(quakeryhunter@gmail.com). 잘 취합하여 사이비 의료에 맞설 자료집을 내보겠습니다. 아울러 저희 모임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뜻있는 선생님들이 힘을 합쳐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역시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환자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의사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좋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도 있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욕을 하거나 외면하셔도 됩니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맡기지는 마세요. 의사는 나쁜 사람들이니 그들을 욕하는 사람은 무조건 착하고 옳다는 이분법에 빠지지 마세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돈도 잃고 건강도 잃습니다. 이번 일을 하면서 알아보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는 조한경씨는 초진료로 15만원을 받더군요. 그걸로 끝이겠습니까? 한국에서 그에게 맞장구 치는 분들을 찾아가 온갖 검사와 영양제 비용으로 수십 만원을 지출하셨다는 글이 카페에 올라옵니다. 의사를 욕하는 걸 사업모델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아키>, <환자 혁명>은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아예 이런 책들만 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영양제, 건강보조식품, 기능식품 판매회사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제품들이 건강을 지켜준다는 소리를 처음 들으면 대단한 비밀 같지만 사실 거의 1백년 동안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계속 반복 주장되는 말입니다. 비타민 C 열풍은 1970년대에도 있었고, 그 뒤로도 몇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의학의 분야로 흡수되지 못한 것은 근거가 많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저탄고지, 요오드, 아연, 코큐텐… 다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더 내도 좋은 진료를 받고 싶다면 그런 방향으로 의료를 고쳐야 합니다. 현재 우리 의료는 싼 값에 기본 진료를 제공하는 구도로 되어 있습니다. 적정한 가격에 좋은 의료를 제공하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의사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그런 쪽으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다면 여러분이 힘을 보태주실 걸로 믿습니다.

그간 모자란 글을 읽고 관심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시고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아낌 없이 지원해주신 청년의사 관계자들께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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