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경희대병원 외과 김창우 조교수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것이다. 거울을 당장 볼 수 없었으니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그 당시 내 안색을 살핀 누구라도 평소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내가 사색이 된 진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생리 현상 탓에 다급히 뛰어 들어간 화장실에서 마침 비어있던 한 칸에 느긋하게 앉아 즐기는 사색(思索)이 아니라, 모든 칸이 꽉 차있을 때 절망과 함께 찾아오는 바로 그 사색(死色) 말이다.

외래에서 조금 전 촬영한 복부 엑스레이 사진을 설명하려고 환자와 그 남편에게 모니터를 보여주면서 나는 그 때까지 10여 년의 의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맞이했다. 동시에 이보다 더한 일들을 앞으로 남은 내 의사 생활 중에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구토와 간헐적인 복통이 있어서 나를 다시 찾아온 환자의 엑스레이를 화면에 띄우자마자 하복부 근처에 하얀색 띠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절대자가 정해주는 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내야 한다는 식의 운명론은 믿지 않지만, 인연이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운명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다. 환자와의 인연 역시 내가 개입해서 어찌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어서, 5개월 전 그 날 당직이 하필 나였고, 우리 병원 환자의 대다수가 서울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데 반해 수원에 살면서 4년 전 수술을 받았던 병원에 다시 갔는데 우연히 그 날 수술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우리 병원을 찾아온 건 내 의사와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물론 외과의사와 환자의 인연은 깔끔한 수술과 좋은 경과로 인해 선연이 될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악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양태가 그리 간단치는 않은 법이어서 임상 경과와 환자와의 관계(rapport)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좋은 경과를 보이며 퇴원하지만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입원 기간 내내 ‘얼른 퇴원시키고 외래에서도 한 번만 보고 다시는 안 봤으면’ 싶을 정도로 나쁜 기억이 있는가 하면, 장 천공에 의한 범발성 복막염 및 패혈증으로 수술한 80대 노인 환자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가셨음에도 가족들이 되려 내 손을 잡고 최선을 다한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셨던 일도 있다.

사실 인턴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환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 워낙 이야기 주고받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환자들과 환자의 상태 외에도 시시콜콜한 삶을 나누곤 했으니까. 개복 수술을 받고 통증 때문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시면서 당신 손자가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자랑만큼은 쉬지 않으시던 어떤 할머니도 기억나고, 한 중년 아주머니는 수술 전날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데 하도 긴장하셔서 기도해드린다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한 후에 ‘실은 우리 남편이 목사님이요’ 하고 멋쩍게 웃으셨던 일도 생각난다. 전공의 시절 모교 병원에서는 ‘이 달의 친절 직원’을 직종별로 몇 명씩 선정했는데, 환자들과 마주칠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무직은 어떤 방식으로 정하는지 모르지만 교수, 전공의, 간호사 등 의료진들은 환자들이 직접 QI(Quality Improvement) 실에 찾아가서 몇 줄의 사유를 적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반영이 되었다. 나는 4년 내내 숱하게 ‘이 달의 친절 직원’에 이름을 올렸고, 누계를 파악해 매년 상위 몇 명씩을 선발해 싱가포르의 유명 병원들을 견학할 수 있는 제도의 혜택도 받았다. 물론 선정되는 달마다 소정의 문화상품권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한결 같은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에 기여한 바가 없진 않았다는 고백을 빠뜨리면 안되겠다.

이 환자와의 관계 역시 매우 좋았다. 4년 전 다른 병원에서 충수염이 터져 생긴 복막염 탓에 장을 자르고 이어 붙였고, 5개월 전 그 부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터져서 내가 추가로 장을 절제했던 터였다. 이후 음식도 잘 드시고 별다른 합병증이 없는 채로 잘 퇴원하셨고, 외래에서 한 번 상태를 확인 후 치료를 종결하였다. 하지만 지금, 내 외래 진료실 모니터를 세 사람이 함께 바라보던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제 이 환자와의 rapport는 끝이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이와 동시에 사람이 죽기 직전에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표현을 하는데,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정말로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 학생 6년, 인턴과 레지던트 5년, 군대 3년, 펠로우 2년, 총 16년을 거쳐 이제 교수 생활을 한지 2년째인데. 평생에 한 번 겪을 일이라면 조금 나중에 겪을 것이지. 언론에 나올지도 모른다. 주요 일간지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면 어떻게 하지? 해임당하기 전에 사직하는 것이 병원에 누를 끼치지 않는 현명한 결정인가? 환자와 가족들이 소송을 걸면 어떻게 할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판사나 검사 친구를 뒀어야 하는 거였나. 평생 재판정은커녕 경찰서에도 가본 일이 없는데. 모든 외과의사가 평생에 한 번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대부분 남의 일이라고 여긴다. 아니, 남의 일로 여기고 나의 일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일이 지금 나에게 일어났다.

“정말 죄송합니다.”
수 초 간의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들이 흘러 들어왔지만, 나는 무언가를 말해야 했다. 네 개의 눈이 나와 모니터를 번갈아 가며 주시하는 앞에서 검사 결과를 설명해줘야만 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목 뒤로 땀 몇 방울이 흘러내렸지만, 내 이성은 모든 생각들을 떨쳐내고 지금 이 환자의 상황과 해결책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게 내렸다. 그래, 지금의 상념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다. 무엇이 잘못 됐나 궁금해마지 않는 환자와 남편의 면전에서 고민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 결론은 단호한, 그리고 진심을 가득 담은 사과였다.

“배 속에 수술용 거즈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네?”

“혹시 제게 수술 받으신 이후 배 수술을 다른 곳에서 또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간 건강히 잘 지내다가 최근에 좀 아랫배가 불편했고, 이틀 간 계속 토해서 온 거예요.”

“그렇다면 제 수술 당시 사용했던 거즈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경위를 조사해서 알려드리겠지만 우선 그 수술의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늘 바로 입원하시고 제거 수술을 진행하시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너무나도 뒤로 물러나 앉고 싶었다. 적어도 날아올지 모를 주먹이나 흉기의 사정거리에서 약간의 안전거리라도 확보하고 싶었던 게다. 멱살을 잡히기 좋은 넥타이를 오늘 안 하고 온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고, 혹시 남편이 주먹을 날리면 맞아야 하나 피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폭력, 성, 기타 범죄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CCTV 설치가 왜 진료실에는 아직도 금지되어 있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엑스레이를 먼저 확인하고 보안 요원들을 미리 불러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물러나 앉을 수 없었다. 사소한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행여 사과의 진정성을 희석시키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의과대학 교과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학생 실습 때, 그리고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서 어깨 너머로 체득하게 되는 일종의 잠언들 가운데 “절대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사과하지 마라”는 내용이 있다. 진료 과정에서 의학적인 실수나 사고가 없었더라도 일정 부분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의료의 특성인데, 그러한 일을 당한 환자의 고통과 불편에 대해 공감하고 유감을 표하고자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 의료진의 의도와 달리 환자와 가족들은 의료진이 무언가 잘못했고 실수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만약 법정에까지 가게 될 경우, 의료진은 단지 인간적인 미안함을 표현했을 뿐인데 환자 측에서는 이미 의료진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 미안하면 ‘안타까운 일이다’라든지, 혹은 ‘유감이다’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배운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한 셈이 됐다. 내 배 속에 의료진의 실수로 수술 도구가 들어있다면? 환자의 입장에 섰을 때 분노가 치밀었고, 너무나 미안했다. 나 역시도 보호자의 입장에서-진료 과정에 대한 지식이 있는 의사인 보호자는 까다로운 경우가 많기에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음에도-모교 병원에 둘째 아이가 입원해서 병실을 지키고 있을 때 주사약 0.1mg를 0.01mg로 가져온 간호사나, 인공호흡기 연결을 위해 기도에 해야 하는 삽관을 식도에 해버린 소아과 전공의를 보며 화를 꾹꾹 눌러댄 적이 있었다. 비록 개인적인 경험이 역지사지를 배우고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는 귀한 기회가 되긴 했지만 의사라는 업을 행함에 있어 공감은 어떤 시험 성적보다도 중요한 요소임을 더욱 믿게 되었다. 아무튼 이 사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사과는 이 사건의 출발점이지, 종결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할 말이 아니라 시작부터 할 말이고, 해결 과정 내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만, 나는 그 출발이 올바른 사과에서부터라고 확신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거즈는 잘 제거되었다. 하지만 나와 환자와의 관계는 깨어지지 않았고, 법정 다툼 역시 없었다. 수술 후 퇴원이 가까워 올 무렵 환자의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병원 측에 이 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교수님께 해가 되진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나는 이런저런 회의에 불려 다니고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지. 거액을 주고 합의해야 할 수도 있고, 내게 구상권을 청구하려나? 그러나 나는 그 남편에게 내 걱정 말고 가족들의 결정대로 하시도록 권유했다. 의료진과 환자 누구에게나 사고임에 틀림없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러한 일은 당연히 예방이 최선이지만 이미 발생한 사건을 타산지석 삼아 재발 방지를 위해 논의하고, 또 교육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Gossypiboma 혹은 Textiloma라고도 하는, 수술 거즈나 스폰지 등이 수술 부위에 남겨진 경우는 약 5천 명 당 1명 정도의 확률로 발생하며, 발생한 사건 중 70% 정도는 수술을 마치고 봉합하기 전 거즈의 개수를 세어 일치도를 확인한 경우라고 한다. 즉, 분명히 올바르게 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오류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관련자들이 겸허히 받아들이고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어느 병원에서라도 발생 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면 쉬쉬하며 덮는 것보다 창피하더라도 드러내는 것이 내가 속한 병원의 질적 향상을 위한 일인 것이다.

완치된 후 퇴원한 환자는, 다시 외래로 찾아왔다. 종이 쇼핑백에 무언가 먹을거리를 잔뜩 들고-물론 김영란법 시행 전의 일이고, 이미 치료가 끝났으니 대가성도 없기에-웃으며 문을 여는 환자를 보고서야 나는 안도할 수 있었고, 수술 후에 촬영한 복부 엑스레이를 보며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이번에는…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모든 외과의사가 평생에 걸쳐 한 번씩 겪고 넘어간다는 무서운 일, 아무리 조심하고 살펴봐도 일어날 수 있는 악몽, 그러나 본인의 체면과 병원의 위신 때문에 술자리에서나 조심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합병증, 후유증, 의료사고, 상황과 원인에 따라 부르는 단어들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다가오는 새해를 막을 수 없고 먹어야 하는 나이를 외면할 수 없듯이 외과의사는 반드시 만나기 싫은 상황을 만나야 합니다. 이번에는 그 중 하나를 골라 당시의 섬뜩했던 심정을 글로 풀어보았습니다.

글에도 언급했는데, 우리 사람들은 기본적인 인사에 인색한 것 같습니다. 삭막해지는 세태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목례조차 없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수 초 동안 절절하게 느끼는 때가 많으니, 원래 국민성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 혹은 점차 여유가 없어져가는 OECD 자살률 1위 국가의 당연한 속살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마움, 미안함에 대한 표현 역시 문자 그대로 닿지 않고 무겁게, 또는 가볍게 오해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입을 닫고 사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의 가르침 – 환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 것 – 은 그 연장선상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왔고, 사실은 환자와 가족들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한 후 공격적이거나 소송을 불사할 것 같아 보이면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환자의 직계 가족들과의 관계가 괜찮더라도 면회 한 번 오지 않던 조카, 삼촌이 나중에 나타나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 비록 선별적이라도 – 미안하다는 말, 그 말 한 마디를 서두에 꺼냄으로 마음을 표시하고 환자와 가족들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귀한 경험임을 함께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청년의사와 한미약품, 그리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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