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자산화 논란에 업계 촉각…"연구중심기업 피해 없는 기준 필요"

금융감독원의 테마감리 발표부터 차바이오텍의 관리종목 지정,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까지 올해 상반기 바이오 업계는 회계 관련 이슈로 들끓었다.

바이오 업계를 가장 들썩인 이슈는 금융위원회 감리가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논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변경(2015년)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인 회계처리 위반이 있었는지 다투고 있는 이 공방은 세간의 이목을 순식간에 바이오업계로 집중시켰다.

검색 인기도를 집계하는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에서도 올해 '바이오' 키워드 검색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자회견으로 분식회계 논란이 본격 보도된 5월2일 가장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이후 주식시장에선 주요 바이오·제약주들이 한동안 일제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여파는 코스피 시장을 넘어 코스닥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데 바이오업계에선 이보다 '연구개발비의 무형자산화' 논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뚜렷한 개선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장기간 안고가야 할 이슈로 업계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개발비'는 비용이 투입됐지만 미래에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추후 연관 매출 발생시 비용처리를 한다. 비용처리 이전까지는 영업이익에서 차감하지 않는 '무형자산'이다.

때문에 이렇다 할 수입원 없이 치료제 개발에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바이오업체들은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화하는 비율이 적잖았다.

한편에선 투자자들에 민감한 일부 바이오업체들이 과도한 계상으로 회사 이익을 부풀리려는 등 해당 계정과목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돼왔다.

개발비와 관련해 그간 주목된 곳은 계상액이 가장 많은 셀트리온이었다.

2018년 1월 테마감리 계획을 발표할 당시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바이오·제약 상장사 152곳의 전체 개발비 잔액은 1조5,000억원이었으며, 코스닥 기업들이 1조2,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기간 코스닥 상장사였던 셀트리온의 개발비 잔액이 8,152억원(2016년 12월31일 기준)이었다.

바이오·제약 상장사들은 총자산에서 개발비 잔액이 차지하는 비중(약 4%)이 타업종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는 게 금감원의 지적이다.

아울러 지난 3월 차바이오텍이 외부감사에서 한정판정을 받고 관리종목에 지정되면서 테마감리 대상으로 유력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이는 비단 이들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회계법인 회계사는 "개발비는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하는 바이오 업체들에 유용하지만, 재무정보 왜곡의 가능성도 일부 내포하고 있는 셈"이라며 "연구개발을 차질 없게 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지만 현재로선 적정여부 등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비 처리, 이제 못하는 건가요?"

실제로 금감원의 테마감리 계획 발표 이후 바이오업체들의 개발비 회계처리도 크게 움츠러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위: 천원)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3개사들의 올해 개발비를 집계한 결과, 1분기 동안 개발비로 새롭게 회계처리한 금액(상각 및 정부보조금 등 개발비 잔액 차감항목 제외)은 총 209억4,700만원으로 전년도 1분기 당시 계상한 251억8,600만원보다 42억3,900만원 줄어들었다.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미국 3상 임상을 준비 중인 코오롱티슈진이 전년동기 대비 12억2,500만원, 휴젤이 8,200만원 개발비를 늘린 것 외에는 대체로 개발비 회계처리에 엄격해진 양상을 보였다.

감소폭은 바이로메드가 22억1,900만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메디톡스가 17억1,100만원, 차바이오텍 9억6,400만원, 셀트리온제약 4억7,900만원, 코오롱생명과학 9,000만원, 네이처셀 5,000만원 순으로 전년보다 개발비가 낮아졌다.

연구비를 모두 비용처리해 온 신라젠을 비롯, 제품 판매를 담당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 케어젠은 전년에 이어 올해도 개발비를 계상하지 않았다.

한 바이오 업체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 논란이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크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정말 큰 사건은 연구비에 대한 무형자산화 부분이다"라면서 "회사도 당장 올해 1분기부터 회계 처리하는 데에 곤욕을 치렀다"고 전했다.

개발비에 대한 엄격한 검토가 이어지면서 과거 회계오류를 바로잡는 정정공시도 잦았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3개 업체 가운데서 개발비 관련 정정공시를 낸 곳만 해도 바이로메드, 제넥신, 안트로젠, 케어젠, 코오롱생명과학 5곳이다.

이 중 안트로젠과 케어젠, 코오롱생명과학은 무형자산에 대한 주석 미흡 등 미비사항을 추가 기재하기 위한 정정공시였지만 바이로메드와 제넥신은 개발비 수정반영으로 인해 회사실적이 대폭 깎였다.

바이로메드는 2016년 개발비 495억원을 비용으로 처리, 당기순이익이 12억6,000만원 감소하면서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제넥신도 같은해 감사보고서에서 개발비 401억원을 비용처리하면서 영업이익 지표가 악화됐다.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당장 적자전환보다 큰 문제는 연구개발비를 모두 비용으로 처리하게 될 경우, 수익이 없는 바이오업체들은 계속된 적자 등으로 퇴출요건에 해당될 수 있어 상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보단 화장품이나 건기식을 판매하거나 투자를 줄이고 연구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이는 바이오 업계에는 보통 사건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한국바이오협회가 지난달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4%가 무형자산화 회계처리기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은 "일률적인 회계처리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각 분야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같은 바이오제약 업체라고 해도 유전자치료제, 줄기세포치료제 등의 개발과정이 다르고 각 질환별로 개발 성공률도 다르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또 "규제는 산업발전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 연구 중심으로 운영되는 바이오 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분명한 기준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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