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대처로 국민 혼란 및 의사-환자 간 불신 조장…저가약 인센티브 중단 등 제도 개선 나서야”

중국산 발사르탄 함유 고혈압치료제에 발암물질이 섞여 있는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대국민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다.

식약처가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를 사용한 고혈압치료제의 판매·제조를 중지하는 과정에서 무책임한 행정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게 이유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는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식약처의 미흡하고 안일한 대처가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의사와 환자 간 불신을 조장했다”면서 “식약처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과의사회에 따르면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5일 중국 ‘제지앙 화하이’가 만든 ‘발사르탄’에서 2A군 발암의심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을 발견, 해당 품목에 대한 회수조치에 나섰다.

이후 식약처는 지난 7일 국내에서 해당 물질을 쓰도록 허가 받은 82개사 총 219개 제품에 대한 판매·제조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뒤늦게 현장조사를 나선 식약처는 지난 9일 오전 8시 현재 해당 원료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한 91개 품목에 대해 다시 판매금지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아침부터 병의원에는 내원한 환자들과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해 제대로 진료를 볼 수 없었다는 게 내과의사회의 지적이다.

내과의사회는 “식약처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료계와의 협의 없이 무책임한 발표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고 이로 인해 이번사태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의료인과 환자 간의 갈등과 불신만 조장했다”면서 “과연 식약처가 한 나라의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의 모습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저가약 인센티브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네릭 약값을 오리지널 약가의 80%로 높게 책정해주다보니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특허가 풀린 약을 복제해 판매하는 데만 골몰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내과의사회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면서 “또 무책임한 행정으로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식약처장은 미숙한 대처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 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압박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와 전국의사총연합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저가약 인센티브제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상순환기학회는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적정성 평가 등을 이유로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저가 복제 의약품 처방을 조장하는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면서 “근거가 약한 적정성평가 우수의원 등의 타이틀로 병의원을 줄 세우고 저가약 인센티브 등을 통해 양질의 의료를 방해하는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정부의 저가약 권장 정책에 맞물려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라며 “성분명 처방은 결국 저가의 저품질 의약품만 양산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의총은 “의약분업 이후 약제 가격은 시장경제 방식으로 정해지지 않고, 국가에서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왔다”면서 “이로 인해 신약 개발보다는 특허가 풀린 복제약을 최소 원가로 생산하고 국가로부터 높은 가격을 책정 받아 이윤을 남기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즉, 이러한 시스템이 중국으로부터 저가 재료를 수입해 원가를 최소화 하는 제약회사들의 경영방식을 만들었다는 게 전의총의 지적이다.

전의총은 “경제적 관점으로만 국민 건강을 취급해온 정부가 또 다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며 “이제라도 정부가 현 보건의료제도가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의사 출신 식약처장 임명 ▲약가 결정 방식 변경 ▲저가약 인센티브제 중단 등을 촉구했다.

전의총은 “근본적 제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번 고혈압약제 사태와 같은 일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국내 제약산업의 발전하기 위해서도 제대로 된 심사와 허가, 평가 등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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