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

'문재인 케어’의 취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자는 것으로, 취지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국가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건강보험제도 및 의료정책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원칙에 따라 수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그간 문제가 되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문재인케어 시대에 법률적 정비가 필요한 부분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14년 국민건강보험법에 새로운 조문이 하나 추가됐다. 수사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 즉 속칭 ‘사무장병원’이라는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 또는 재판에 넘기기만(기소) 하면 요양급여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사무장병원이라는 결론이 확정되면 사무장병원으로 운영된 기간 동안 요양기관이 지급받은 요양급여 전액을 환수처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사 및 판결 확정 전 일부 개설자들이 폐업 등의 방법으로 의료기관을 청산하고 지급받은 요양급여를 빼돌리는 일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이전부터 보건복지부의 내부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일부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지급을 보류해왔고, 2014년에는 법률상 근거를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다.

비의료인이 오직 영리만을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남용하는 경우, 그에 대한 제재가 가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장래에 발생할 요양급여의 지급을 보류하는 것은 사실상 의료기관의 운영을 중단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이같은 조항이 입법되기 전에 A의료기관은 의료법 제33조 제8항(의료인의 다중의료기관 운영 금지) 위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내부 업무지침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의 지급보류처분을 했다. A의료기관은 진료를 하고도 그 비용을 받지 못하여 당장 경영상 어려움에 빠졌고, 의료인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급여와 퇴직금도 지급하지 못했다. 결국 개설원장은 개인회생절차에 들어갔고, 급여와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형사책임 문제까지 거론됐다.

B의료기관은 사무장병원으로 몰려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급여의 지급을 보류했고 위 A의료기관과 마찬가지로 B의료기관 개설자는 회생절차에 들어가고 의료기관은 문을 닫았다. 오랜 법정 싸움 끝에 B의료기관은 사무장병원이라는 혐의를 벗는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사라진 후였다.

유무죄가 확정되기도 전에 장래의 요양급여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는 조항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

일단, 어느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인지는 그 누구도 자로 잰 듯 속단할 수 없다. 특히 최근에는 의료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마저 ‘사무장병원’이라는 취지로 수사하고 기소하며 요양급여의 지급을 보류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의료법은 의사 외에도 비영리법인 또는 의료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인제도는 의료기관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지 않던 시절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의료인이 재산을 출연하고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일부 의료법인들이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개별 행위에 대한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묻는 것과 별개로 의료법인은 의료법에 따라 당연히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비의료인이 이사진을 구성하고 횡령 및 배임혐의가 있는 의료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을 ‘사무장병원’이라는 취지로 기소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급여지급을 보류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사무장병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음에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도 전에 사실상 진료업무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유죄 확정 여부를 떠나 일단 요양급여의 지급을 보류하는 것은 일부 선량한 피해자를 낳더라도 사무장병원을 확실히 처단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방식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되며, 불가피하게 불이익을 입힌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한도로 해야 한다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이다.

과거에는 변호사가 형사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지기만 하면 법무부장관은 그 변호사에게 업무정지명령을 발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유무죄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죄를 추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취지로 위헌결정을 했다. 의료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유무죄 확정 전에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함으로써 의료기관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유죄를 추정하여 불이익을 가하는 결과가 된다. 물론, 국민건강보험법은 장래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 지급받지 못한 요양급여비용에 이자를 보태어 돌려주도록 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2~3년에 걸친 법정 싸움을 거치는 동안 이미 의료기관은 사라졌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미지급된 요양급여비용과 이자는 주인을 잃고 결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그대로 보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근대 형사재판의 대원칙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느슨하게 적용된다면 형사절차에서의 평등원칙이 지켜지는지 의문이다. 사무장병원에 대한 환수가 어려울 것이 예상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미리 이들을 상대로 부당이득의 반환 또는 손해배상의 소를 제기하고,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하는 방법으로 환수처분을 담보하는 등 덜 침해적인 방법을 고안하자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아직 유죄확정도 되지 않은 의료기관에게, 진료의 대가인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하는 것은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이며 위헌적인 방법이다. 현재 이 조항의 위헌여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사건이 법원에 계속 중이다.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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