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사회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치부해선 안 돼”

정부가 9년 만에 낙태(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가운데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관련 규정을 현실에 맞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4일 성명을 통해 “처벌을 강화한다 해도 낙태 건수의 감소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여성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모자보건법과 형법 규정들을 현실에 맞게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형법에서 낙태죄로 처벌하고 있으며 모자보건법에서는 그 허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임산부의 우생학적 측면, 강간이나 준강간,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친족 간의 임신, 임산부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인공임신중절 허용사유에 태아 부분이 없어 임신 중 발견된, 출생 후 생존이 힘든 심각한 질병이나 선천성기형아라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임신중절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의사회는 “실제로 의료현장에서는 시급히 해결을 해 줘야 하는데 이러한 적응증을 판단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강간 여부의 판단도 의료인이 할 수 없고 경찰에 신고 등 사법 당국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죄를 계속 존치시킬 경우 여성의 건강권 상실은 물론, 모성사망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수술을 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적절한 의료설비가 돼 있지 않은 곳에서 수술을 할 경우 출혈, 자궁손상,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나 불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범죄 집단인 양 조장하고 있다”면서 “피치 못할 사정에 놓여 있는 임산부를 도와 줄 사람은 우리 산부인과의사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단체의 낙태 허용 확대 주장에 뜻을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산부인과 의사는 환자 및 임산부의 치료자로서 태아의 생명권도 존중하지만 여성의 건강권 역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미 OECD 국가 대부분이 낙태를 허용하고, 미국, 영국은 1970년대인 50년 전 낙태 허용 후 의사를 처벌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이어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치부해 법적 강제와 현실을 무시한 윤리적 의료를 강요하겠다는 발상은 구시대적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 및 국민들에게 돌아갈 게 명백하다”면서 “하루빨리 우리나라 여성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모자보건법과 형법 규정들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14일 낙태수술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낙태 실태를 조사해 발표하는 것은 지난 2005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다.

실태조사는 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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