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재수사서 유해성 자료 은폐 정황 포착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고위직 임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다.

SK케미칼의 조직적인 유해성 자료 은폐 여부를 정조준하고 있는 검찰이 수사에 힘을 받으면서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4일 SK케미칼 부사장급 임원 박철 전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임원 3명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기각됐다.

검찰은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가습기 살균제(제품명 가습기메이트) 원료 물질 유해성 자료를 숨기려 한 혐의(증거인멸)로 SK케미칼 임직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이날 구속된 박 전무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으로 현재 SK디스커버리와 지난해 사업부문 인적분할로 재탄생한 SK케미칼에서 윤리경영부문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27일 고광현 전 애경 대표 등 2명이 증거인멸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SK케미칼 임원까지 구속되면서 가습기 메이트에 관여한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 바이오텍 사업팀이 개발한 가습기메이트는 옥시 다음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지만, 그동안 SK케미칼은 수사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SK케미칼이 원료 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개발했지만, 과거 수사의 초점이 옥시의 원료물질인 PHMG·PGH 제조사에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습기메이트 원료물질인 CMIT·MIT는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중지됐다.

하지만 지난해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가 SK케미칼과 가습기메이트 판매를 담당했던 애경산업 관계자를 재고발하고, 환경부가 유해성을 입증하는 역학조사 결과를 모아 검찰에 제출하면서 사건이 새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지난 1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SK케미칼이 1994년 가습기메이트 첫 생산 당시 유해성 관련 자료를 은폐한 정황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그동안 SK케미칼은 제품 개발 당시 유해성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으며, 회사명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료가 사라졌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2013년 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SK케미칼은 유해성 관련 자료들을 고의로 삭제한 정황이 발견됐다. 검찰은 당시 SK케미칼 임원들이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SK케미칼의 거짓 주장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SK케미칼이 옥시에 납품했던 원료물질 PHMG가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되는지 몰랐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은 CMIT·MIT 외에 PHMG도 독점 공급해왔는데, 2016년 수사 당시 “PHMG를 옥시 등 제조사가 아닌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해당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수사를 통해 검찰은 SK케미칼과 옥시 측이 주고받은 이메일 등 자료 등을 기반으로 이 같은 주장이 거짓이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가습기넷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정부에 신청된 가습기 살균 피해자는 총 6,309명으로 사망자는 1,386명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다양한 증상의 폐 질환 등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가습기넷은 "가해기업들은 이 순간에도 자신들로 인한 피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임직원 구속영장 신청 소식에 14일 SK케미칼은 전일 대비 1,900원(2.62%) 하락한 7만6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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