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심평통신

[청년의사 신문 양기화] 심평통신을 시작할 무렵이니, 지난 해 다루었던 주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대한심장학회와의 갈등이 원만하게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다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돌이켜보면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지라도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견을 좁혀갔어야 했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상황들이 불거졌고, 양측의 입장이 구전으로 혹은 기사를 통하여 전해지는 과정에서 오해가 증폭된 측면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칼럼이 또 오해를 부르지 않을까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으나 얼마 전에 있었던 간담회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조심스럽게 짚어보려는 생각이라고 이해되면 좋겠다.


▲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사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심혈관통합평가에 대한 시범사업을 수행하면서 심장학회가 자료제출의 거부를 주도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공공기관으로서 심평원은 수행하고 있는 사업이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쪽을 방향을 잡고, 시범평가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심장학회와 같이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심장학회는 ‘선시행 후보완’이라는 심평원의 입장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사태가 해를 넘기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심혈관통합평가의 항목으로 편입된 관상동맥우회술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는 관상동맥우회술에 대한 평가를 속개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포함하여 그동안의 공백기에 변화된 사정들을 교감하기 위하여, 심장학회와 만남이 필요하여, 거의 1년 만에 다시 만남의 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날 심평원에서는 심장학회가 요구한 사항들을 대폭 수용한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행정비용보상, 그동안 시행해온 급성심근경색증 평가의 정책효과분석, 대규모 예비평가를 통한 PCI(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평가모형 구축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학회에서 나온 대표는 ‘심평원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해 당혹스러웠다.

이해가 엇갈리는 양측은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협상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협상과정에서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수용되는 협상은 없다.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견해의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통하여 합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시절 잠시 활동하던 연극동아리의 인기 레퍼토리 가운데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의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가 있었다. 고전극은 대체적으로 사필귀정으로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다. 일시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듯 보여도 결국은 균형을 맞추게 되는 것이 세상사라는 것이다.

심장학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혹시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해온 급성심근경색증 평가를 중단하고, 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PCI(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 평가를 받지 않으려는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가감지급을 비롯하여 질향상지원금 등을 통하여 수가를 보전하는 기능이 강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이 진료정보로 활용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어 대부분의 요양기관들이 급여적정성평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로는 평가대상에서 빠져 있는 진료부문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한다.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이 흐르고…’로 시작되는 「미라보다리」로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은 〈사랑받지 못한 애인의 노래〉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세월에 걸쳐 치열하게 밀고 당기면서 급성심근경색증 평가를 해오는 와중에 쌓인 미운 정 고운 정을 생각해서라도 심장내과 선생들이 잊혀진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뜻대로 하시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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