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자고로 예부터 식구(食口)라면 아침 밥상을 마주하고 건강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밥 한끼 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진 않는가. 바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공의들이 한자리 모여 삼시세끼를 마주하는 곳이 있다.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는 부모와 같은 교수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전통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주한 밥상의 수가 많아질수록 서로 배려하고 닮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솥밥 먹고 자라고(?) 있다는 인하대 재활의학과 1년차 김은석·박찬혁 선생, 2년차 최하윤·한희준 선생, 3년차 이의창·홍상은 선생, 4년차 권수연 의국장을 만났다. 4년차 김이진 선생은 파견으로 이날 아쉽게 함께하지 못했다.

발 디딘 이유는 달라도 보는 것은 같아

치료사인가, 전공의인가 헷갈릴 정도로 젊은 선생들이 북적이는 재활의학과.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들고나는 이들이 ‘사진 찍는다’는 말에 한자리에 모였다. 7명이 환자들 사이에 자리잡고 카메라 앞에서 제법 멋진 자세를 취했다.

이들을 보면서 뭐랄까, 보이지 않은 정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하루 세끼를 함께 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미 병원 내에서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재활의학과는 교수들이 주축이 돼서 이미 가족이 됐다.

“우리의 자랑은 교수님들과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거죠. 가끔 일이 있어 빠지려고 하면 ‘전통을 깨지 말라’며 ‘밥은 꼭 같이 먹어야 한다’고 교수님이 끌고 가시죠. 하하.”

처음에는 낯설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지 모를 듯 하다가도 밥심(?) 때문인지 서로 묘하게 닮았다. 사실 알고 보면 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갖고 이곳 재활의학과를 찾았다.

특히 1년차 박찬혁 선생은 이래봬도 결혼 10년차 가장이다. 전공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이다.

“대학 때 재료공학과를 전공하고 대학원 나온 뒤 대기업에 4년간 있었죠. 대학 때부터 장애인을 돕는 동아리활동을 해왔는데 불연 듯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의학전문대학원을 갔고 결국 재활의학과까지 오게 됐어요.”

또래 친구들이 대기업 차장 직함을 달고 돈을 버는 것을 보면 배 아프다가도, 일어서지도 못했던 환자가 버젓이 두발로 걸으며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의 보람과 비교할 바 못된다고 깨알 자랑이 한창이다.

다소 외소한 체격의 1년차 김은석 선생은 군대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면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어 의전원을 선택했단다. 김 선생은 “군대 내과병동에서 암으로 투병중인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제 역할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도전을 하게 됐다”며 “지금은 많이 못하지만 장애인캠프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신체장애를 극복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과가 맘에 든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중풍으로 치료를 받았던 할머니 생각에 재활에 관심을 가졌다는 2년차 최하윤 선생을 비롯해 대다수는 재활의학과의 매력이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과 사회복귀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환자와 함께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지는 것

재활의학 특성상 한번 내원한 환자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알아가고 관심을 갖게 된다.

최 선생은 “타 과에 비해서 입원 기간도 길고 환자 치료 효과를 위해서는 강한 의지를 불어넣어줘야 해서 라포(rapport)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3년차 홍상은 선생도 “1년차 때 담당했던 환자가 지금도 외래를 오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사회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다”고 했다.

사람을 많이 좋아해야 하는 과 같다는 우문에 2년차 이의창 선생이 입을 열었다.

“사람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환자와 함께 하다보면 계속 가는 것이다. 예방과 팔로업을 함께 하다 보니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어느 과보다 환자와의 접촉이 많기도 하다. 신체검사도 주 단위, 월 단위로 하고 치료사들의 역할도 있지만 우리도 접촉을 통해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

4년차 권수연 선생은 “이 환자가 과거에 무릎수술을 한 적은 있는지, 오른손잡이인지, 집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등 생활습관이나 사회 경제적 상황을 다 고려해서 치료를 해야 효과가 빠르다”며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재활의학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환자들이 치료와 검사를 받을 때 늘 곁에서 챙겨주다 보니 많은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기도 하단다. 한두 번씩은 허리디스크에 걸려봤다는 이들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쓴다고.

권 선생은 “환자를 돌보면서 운동의 중요성을 알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며 “저는 허리가 좋지 않아 필라테스를 하는데 다들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을 좋아해서 스포츠의학을 배우고자 지원했다는 이의창 선생은 역시 주지스부터 검도, 헬스, 수영 등을 섭렵하고 요즘은 크로스핏과 수영만 하고 있으며, 홍상은 선생은 필라테스, 한희준 선생은 그동안 못한 운동을 올해 꼭 시작하겠다고.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해맑은 이들은 환자를 보면서 희망을 배워가고 있다.

권 선생은 “젊은 사람이 일시 사고로 사지가 절단돼 내원했었다. 치료 후 의족으로 걷는 연습을 하고 퇴원하는 경우를 보면서 그들의 굳은 의지와 긍정적인 생각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과연 나였다면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가족은 오늘과 내일을 함께 하는 것

가족이라서 그럴까. 이들은 병원을 떠나서도 함께 어울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치료실 등 다른 부서와 회식을 할 때는 행사일정을 준비해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야구 관람도 한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술보다 대화가 앞서고 한 달에 한번씩 봉사활동도 한다.

여기에는 교수들의 배려와 관심이 한몫 했다. 끼니를 챙겨주는 것뿐만 아니라 장학금제도도 만들었다. 몇해 전부터 교수진들이 직접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동문들도 더해서 장학금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4년차만이라도 해외 연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이런 교수님들이 늘 감사하다는 이들은 남은 의국생활서 무엇을 더 하고 싶냐고 물으니 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처럼만 소통하고, 즐겁게, 신나게, 다같이 지내고 싶다고. 참, 박찬혁 선생은 90kg가 넘었던 인턴시절 몸매로 돌아가지 않도록 계속 체중조절을 할 거라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리켰다. 이들은 탈진상태였다. 하루 종일 환자와 뒤엉켜 지내다가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리던 그들은 지쳐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내일은 더 나아졌겠지, 내일은 또 어떤 환자를 도와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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