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극복 국민연대 준비위원회 간사 맡은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첫 확진환자 발생 69일 만인 지난 7월 28일, 정부는 사실상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의료제도 개선을 위해 논의해야 할 사항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정부는 우선순위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소비자단체, 시민단체, 환자단체, 노동계, 의료계가 메르스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았다. 지난 6일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 준비위원회(이하 국민연대 준비위) 발족식을 개최하고 보건의료체계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18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직속 특위 구성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지난 17일 만난 국민연대 준비위 간사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응급실 밀집 문제 등 단기적 과제부터 해결하고, 메르스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를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르스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의료계의 힘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메르스 대책에 대한 논의가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민사회,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 메르스 사태의 문제가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시민사회·소비자단체에 모임을 제안하니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했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준비위가 발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준비위 체제로 돼 있고 공식적인 운영에 돌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 환자단체, 시민사회단체, 소비자단체에 노동조합까지 함께 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에 사는 국민이면 누구나 겪은 문제고 관심이 갈 것이다. 기존 소비자단체들은 의료 문제에 큰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는 사회적인 여파도 컸으며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시민사회와 소비자단체의 참여가 많았던 것 같다.

- 국민연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한의학회에서 이사진의 논의를 거쳐 연대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준비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공동 메르스대책위원회 차원에서 참여하기로 했고, 메르스대책위 정책위원인 내가 간사를 맡게 됐다.

- 국민연대 준비위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중장기적인 업무는 메르스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건의료체계 개편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편에 소비자와 환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현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나가는 단계다.

때문에 우선 준비위를 발족했고 국내 메르스 환자가 들어온 지 100일 되는 18일에는 메르스 후속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연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국가 방역체계 개편 방안’ 공청회에도 정부는 발제자가 아닌 토론자로 들어가 있다. 마치 정부가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숨어서 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대안을 직접 내놓든지 논의가 필요하다면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 정부가 메르스 후속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라고 보나.

일을 제대로 못하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지금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괜찮은 구조다. 실수에 대해 민감할 뿐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관료주의적인 모습이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는데, 경제뿐만 아니라 정책에서도 창조가 필요하다.

메르스 종식 선언 후 구체적으로 정부에서 한 일이 없는 것 같다. 보건의료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한 메르스 후속조치 추진단을 만들었지만 당장 결정할 수 있는 사안들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각계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지, 추진단의 목표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정부가 후속 대책의 일환으로 백서를 만드는 것도 부적절하다.

잘못된 방역체계로 정부가 비판을 받았는데, 실수를 저지른 주체가 백서작업을 하려고 한다.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백서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부가 만들더라도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 구조로는 백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 메르스 이후 단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나.

다인실 문제가 있다. 당장 격리실을 써야 하는 감염위험 환자나 중증 환자들만이라도 1~2인실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준 병실(다인실)을 70%로 상향하는 정책은 병원감염관리 강화정책과 충돌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의학적인 이유로 1~2인실을 써야 하는 환자의 범위를 넓혀주면 된다. 폐렴 환자가 전체의 3%, 폐렴을 제외한 감염환자가 2%, 그 외 격리가 필요한 중증 환자까지 합치면 10% 정도다. 이 수준으로 격리실을 확보하도록 하면 4인실 기준 병상 70%를 확보하기 위해 1~2인실을 다인실로 전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 대부분은 병원 감염이다. 병원은 감염병 발생 시 치료기관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감염이 집중될 수 있다. 신종인플루엔자나 메르스 환자가 병원으로 갈 때 첫 번째 출입구는 대부분 응급실이었다. 응급실에서 감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결국 병원 중심의 대량 확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 병원의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전달체계 상의 문제도 있지만 이는 단기간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보건부 독립이나 질병관리본부 청 승격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보건부 독립은 시기적으로도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실익도 명확하지 않다. 보건부를 독립시키면 다른 부처에 있는 보건 파트는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고용과 복지를 붙여야 할지의 문제도 발생한다. 연쇄적인 중앙부처 개편은 정권 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보건부가 독립된다고 해서 의료인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건강보험을 보건부에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질병관리청 설립 문제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연관되는 문제도 적고 질병관리본부의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독립성도 갖지 못하고 있고 위상도 약하다 보니 전문가가 성장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질병관리청 설립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점이 될 수 있다.

-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공공병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메르스 환자가 민간병원을 거쳐 가면 병원은 환자감소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병원이 감염병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하는 체계가 나을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메르스 방지를 위해 격리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텐데 그 대상이 공공병원이라면 논리적으로도 납득이 된다. 전염병을 포함한 재난의료 발생 시 공공병원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이 상생할 수 있는 체계가 될 것이다.

- 메르스 이후,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메르스 사태 당시의 과오들을 복기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 반성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후속조치가 만들어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신채호 선생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실패를 반복하는 국가나 사회에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에서도 메르스 이후를 미온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책임감 있게 제도를 적극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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