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독일 본 대학병원 에베르하트 그루베 박사

[청년의사 신문 박기택] 심장의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의 대동맥판막이 좁아지는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의 심장에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이하 TAVI)을 시행했는데, 막상 그 위치가 적절치 않다면 대개의 경우 판막을 꺼내 재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시술 중 인공판막의 위치 조절이 가능하다면?

이식된 판막을 필요시 카테터로 다시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인공 대동맥 판막(Core valve, 이하 인공판막)인 메드트로닉 ‘에볼루트R 시스템’(이하 에볼루트R)의 첫 시술이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이뤄졌다. 에볼루트R은 언급한 바와 같이 수술 도중 인공판막을, 접이식 우산과 같이 접어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대동맥 판막과 카테터 등으로 구성됐다.

단순히 기존 인공판막을 잠깐 오므렸다가 펼 수 있게 만든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TAVI 수술을 고려하면 이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공판막을 심장의 제 위치에 자리하게끔 하려면 다리 등의 동맥 혈관을 따라 풍선을 판막까지 도달하게 한 뒤, 좁아진 판막 사이를 부풀려 인공판막(그물망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을 고정시켜야 한다. 즉 좁디좁은 혈관을 통과해 판막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또 상처 나기 쉬운 인체 조직 안에서 인공(금속) 판막을 펼쳤다가 접는 것이다.

재수술을 하지 않고 시술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역시 ‘정말 안전할까?’이다. 이에 메드트로닉코리아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TAVI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명인 독일 본 대학병원 에베르하트 그루베 박사를 만나 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방한 목적은.

TAVI 자체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술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아가 에볼루트 R은 유럽에선 2개월 전부터 미국에선 더 최근에 도입된 말 그대로 최신 시술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 시스템을 처음으로 시술하게 됐다고 들어, 도움을 주고자 프록터(proctor) 자격으로 방한하게 됐다.

- 에볼루트R이 TAVI에서 갖는 의미는.

TAVI에선 인공판막이 심장의 제 위치에 잘 자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데, (에볼루트R은) 시술 과정에서 인공판막의 위치가 잘못되면 다시 정확한 위치로 이식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개흉 등 재수술을 하지 않고도 인공판막 조절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더해 인공판막이 잘 안착돼 혈액이 역류 유출되지 않게 막아주고, 새로운 판막을 삽입하는 ‘디바이스’(device)의 크기도 5mm 정도까지 작아져 보다 많은 대동맥판막협착 환자에게서의 시술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나이 등의 이유로 혈관이 좁아 TAVI 시술이 어려운 환자가 있었는데, 에볼루트 R 시스템은 디바이스의 직경을 줄임으로써 시술 가능한 환자의 폭을 넓힌 것이다.

- 어떻게 ‘인공판막 재조정’이 가능한가.

물론 처음 시술시 판막을 정확하게 제 위치에 안착시키는 게 중요하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정확한 위치 선정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TAVI에 다양한 기술들이 도입돼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판막의 위치가 너무 깊거나 높게 시술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에볼루트 R 시스템은 다시 카테터를 집어넣어 손잡이의 휠을 돌려 우산을 접듯이 판막을 접을 수 있다. 그 뒤 더 정확한 위치로 조정을 한 뒤 다시 펴면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에는 판막이 자리를 잘못 잡으면 재수술 등을 통해 다시 빼서 다른 제품을 넣어야 했는데, 이런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 이 시술의 임상적 근거가 있나.

유럽과 호주의 TAVI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놀랍게도 합병증이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안전성 등을 바탕으로 EU에서 (에볼루트R의) 허가가 이뤄지게 됐다.

- 인공판막을 접었다 편다는 것이 편리성 등에선 의미가 있지만, 내부에서 자칫 오작동 등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단언컨대 매우 안전하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판막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 재질도 의료기기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안전함이 입증된 니켈과 티타늄 합금인 나이티놀(Nitinol)이 사용됐다. 이 재질은 신축성이 좋아 몇 번을 접었다 펴도 약해지지 않는다. 차가울 때 수축됐다가 따듯해지면 확장되는데, 일단 정확하게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하지만 만일 첫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잡아 조정하면 된다. 재차 말하지만, 접었다가 편다고 안전을 더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루베 박사는 인터뷰 중 판막의 신축성을 직접 보여줬다. 얼음물이 담긴 컵에 인공판막을 담그고 손가락으로 힘을 가하자 모양이 변형됐다. 이후 인공판막을 얼음물에서 꺼내 살짝 입김을 불자 금세 제 모습을 되찾았다.)

- 에볼루트R이 특히 필요한 환자군이 있다면.

TAVI가 등장한지 10년 정도 지났는데, 이 수술법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매우 고위험군, 즉 나이가 매우 많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주 대상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경험이 축적되고 수술의 이점과 안전성이 확인되면서 대상 환자도 고위험군에서 중등도로, 연령도 이전보다 더 낮아지고 있다. 에볼루트R은 이런 추세를 더 빠르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 임상의들에게는 어떤 장점이 있나.

인공판막을 잘 안착시키는 게 환자 예후나 부작용 발생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볼루트R은 혈관이 좁거나 기형인 환자의 시술 성공률을 높여준다. 특히 석회화 등으로 인해 인공판막 시술을 이미 받은 환자에게 또 인공판막을 시술해야 하는 경우에 정확하게 제 위치에 시술하는 게 중요한데 에볼루트R은 위치 재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의미하다. 정리하면 에볼루트R은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정확한 포지셔닝(positioning)이 가능하고 작아진 디바이스로 (인공판막을) 판형에 정확히 매칭(matching)시킬 수 있다. 이는 시술 후 판막주위누출, 혈관합병증, 심장리듬 문제 등 TAVI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예방에도 일정부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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