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고요함과 평온함, 그 사이를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의국탐방을 위해 찾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을 들어서며 역설적인 감정의 조각들이 기자를 덮쳤다. 나쁜 짓 한 적 없어도 경찰차를 보면 흠칫 놀라게 된다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런 것일까. 정신과 의사들을 마주하는 자리가 이렇게 긴장될 줄이야. 환자 이야기에 늘 경청하는 습관 때문인지, 귀를 쫑긋 세우고 기자의 질문에 집중하는 의국원들 앞에서 한껏 긴장한 채 더듬더듬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의국원들의 이야기에 경청해야 할 기자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으니 말이다.

조용하지만 조곤조곤한 말투가 퍽 인상적이었던 1년차 이지현·김상현·김성환·한태선 선생, 2년차 오지혜·이상섭 선생, 3년차 정수빈·김용민 선생을 만나봤다. 아쉽게도 일주일 간 충청북도 음성 꽃동네로 파견 간 2년차 노승훈 선생과 서초구치매지원센터로 파견 간 3년차 김지은 선생은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정신과의 응급상황은?

정신질환을 다룬 드라마들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많이 해소됐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는 심지어 정신질환자들에게조차 문턱이 높은 곳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환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담도 그 중 하나지만, 현장에서는 긴급하고 급박한 일들도 다반사라고 설명한다. 가장 먼저 1년차 김성환 선생이 포문을 열었다.

“가끔 환자들이 난폭한 행동을 보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있어요. 키도 크고 몸이 좋은 남성 환자들이 갑자기 화를 내고 난폭한 행동을 보이면 사람인지라 겁도 나거든요. 간혹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환자들에게 맞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환자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땐 무섭기도 하지만 환자들을 보다보면 정이 들어 행동제한을 할 때면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고. 김 선생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환자들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땐 어쩔 수 없이 안정시키기 위해 격리를 하거나 주사를 놔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매일 마주하는 환자라 행동제한 과정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요. 주치의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야지 하면서도 아직 1년차라 내공이 더 필요한가보다 생각도 들어요.”

정신질환에 대한 더 나아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 당당하게 치료 받고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국장인 김용민 선생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환자들이 외래에 오는 것만으로도 주변 시선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스스로 입원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안 좋게 보는 시선들 때문에 입원을 꺼려하거든요. 사실 정신과 병동을 돌아보면 다른 병동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마음의 문을 열면 치료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죠. 환자들은 물론 보호자들의 편견이 가장 먼저 해소됐으면 해요.”

귀를 여니 마음이 보였다

의국원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져 질문을 던져봤다. 돌아온 답 속에서 의국원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 경청의 대가였던 것. 1년차 이지현 선생은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에 들어오기 전 고등학교 교사였단다.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던 학생들과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고등학교 교사로 교편생활을 했어요. 학생들과 접촉할 일이 많았는데,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힘들어 하는 학생도 만나봤고요. 다양한 학생들과 면담할 일이 많았지면서 좀 더 전문성을 갖추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어요. 때문에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년차 한태선 선생은 군대에서 병사들을 상담했던 경험이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나이가 많아 공중보건의사나 군의관이 아닌 군대를 다녀와야 했거든요. 또래 병사들보다 나이가 많으니 부대장이 부대 적응을 못 하는 병사들 상담을 맡겼어요. 크게 한 일은 없고 그저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입대해 이등병으로 힘들어 하고 죽고 싶다던 병사들이 점점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해졌어요. 제대하면 정신건강의학과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늘 환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다보니 ‘직업병’도 생겼다. 김용민 선생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말 수가 줄었고, 한 선생은 지나가는 사람의 행동거지도 세심히 살피게 된단다. 한 선생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사소한 행동을 관찰하게 되요. 행동 중 특이점을 발견하면 혹시 저 사람이 질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분석해 보기도 하고요.”

김성환 선생은 오히려 이 직업병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친분을 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제가 먼저 물어보기도 전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해줘요. 그러면서 말문이 트고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입국식도 독특해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은 입국식도 독특했다. 사람을 탐구하고 치료하는 이들의 직업 특성은 1년차들의 입국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으니 말이다. 의국에 새로 입국하는 1년차들은 입국식 때, 원로교수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담은 슬라이드를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고. 김용민 선생의 설명이 이어졌다.

“입국식 때 1년차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자료를 만들어 발표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정신과 특성인 것 같기도 해요. 슬라이드로 사진까지 곁들여 스스로를 소개하는 거죠. 3년차 동기 중 김지은 선생의 자기소개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연예인을 닮았다며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교수님 한 분만 동의하시고 모두 실소를 터뜨렸거든요.”

때론 짓궂은 농담도 서슴없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의 최대 장점이라면 서로 힘들 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돼 준다는 것이란다. 서로에게 건네는 “아, 그랬었구나” 이 한마디가 힘든 의국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마법의 말이라고. 타인의 아픔을 먼저 들어줄 줄 아는 이들이 있어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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