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병원 영상의학과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다른 진료과보다 환자를 많이 보지는 않더라도 환자의 상태는 더 잘 알 수도 있는 이들이 있다. 온종일 각종 사진들과 씨름하며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영상의학과 의국원들이다. 이들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것보다 판독실에서 환자 엑스레이, CT, MRI 사진 등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진료과 환자들의 사진을 봐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판독에 임한다. 사진 판독을 ‘숨은그림찾기’에 비유하며,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독을 해야 한다는 한양대병원 영상의학과 의국원들. 인터뷰에는 1년차 김동선·여현정, 2년차 이상준·안새미, 3년차 이현규·이정훈, 4년차 이철민 선생이 함께 했다. 숨은그림찾기의 달인이라는 4년차 임봉국 선생은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 했다.


진로를 정하게 만든 사진 한 장

2년차 안새미 선생은 학생 시절 본 사진 한 장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고 했다. 강의는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갖고 진행됐는데, 학생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어 영상의학과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학생 때 고병희 교수님 수업을 들었어요.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갖고 수업을 하셨는데, 처음에는 사진 한 장 갖고 뭘 알 수 있을까 의아했죠. 그 때까지 영상의학과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고요. 그런데 교수님 강의를 들으며 질문을 했고, 하나하나 찾아갈 때마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영상의학 수업을 들을 때 흥미가 생겼어요.”

숨은그림찾기나 마찬가지인 사진 판독. 실제로 한양대병원 영상의학과 의국에는 숨은그림찾기 달인이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이날 인터뷰에 유일하게 함께하지 못한 임봉국 선생. 의국원들은 임 선생이야말로 스피드의 달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치프인 3년차 이정훈 선생은 “의국 역사상 가장 빠른 판독을 하는 것 같아요. 저라면 5분에서 10분 걸리는 사진을 2분이면 다 찾아내요. 그리고 놓치지도 않아요. 컴퓨터를 잘 해서 판독 프로그램 단축키도 일일이 찾아 의국 전체의 판독 속도가 훨씬 빨라졌어요”라고 말했다.

1년차 김동선, 여헌정 선생은 영상의학과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단다. 김동선 선생은 “영상의학과는 판독과 인터벤션(intervention)등 진단과 치료를 모두 할 수 있는 과예요. 환자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보고 흥미를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여현정 선생도 “실습을 나와 영상의학과를 겪으면서 여러 과를 통틀어서 결정을 내리는데 제일 큰 영향을 미치는 과 같았어요. 경험이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몰라서 윗 연차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라고 거들었다.

2년차 이상준 선생은 군 생활을 하면서 영상의학과의 필요성에 눈을 뜬 경우다.

“군병원에 가면 상급부대에 가야 엑스레이 정도의 장비가 있어요. MRI나 CT를 찍기 쉽지 않고 만져보고 약을 줘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더라고요. 그 때 영상의학이 현대의학에서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반면 3년차 이현규 선생은 환자를 잘 만나지 못 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게 영상의학과의 매력이라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영상의학과의 최대 장점은 환자를 직접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제 성격상 환자를 많이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정확한 지식으로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모든 과랑 연결돼 있는 것도 장점이죠.”

이정훈 선생은 인터벤션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최소침습이 트렌드가 돼 가는 의료계에서 영상의학과는 작은 구멍 하나로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데 반했다는 것이다.

“영상의학과는 혈관에 도달하기 위해 작은 구멍 하나만 있으면 돼요. 외과에서 시술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저희 과가 나서서 할 수 있죠.”

영상의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달라도, 전공 선택에 대한 자부심은 똘똘 뭉쳐 있었다.

그가 밤새 20통의 전화를 건 까닭?

의국의 분위기를 말해달라는 단골 질문에는 ‘민주적이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 재차 물으니 김동선 선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처음에 당직을 서는데 아는 게 없어서 백당직을 맡은 이상준 선생님에게 계속 전화한 적이 있어요. 스무 번쯤 전화했던 것 같아요. 수도 없이 깨우고 전화하는데 화도 안 내고 받아주시더라고요.

의국원들은 그래도 20통은 너무 했다며 수군거렸지만,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이 선생은 의연한 모습이었다. 이 선생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전화를 받아요. 자기 자신이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는 게 나중에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도 돼요. 전화하기 꺼려진다고 해서 전화를 안 해서는 안 될 일이죠.”

4년차 이철민 선생도 윗 연차를 괴롭히며 물어보는 게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 선생은 “백(당직)을 맡게 되면 사실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게 나아요. 사고를 치는 것보다 전화를 받고 하는 게 낫죠. 물론 새벽 중에 전화가 오면 힘들기도 하지만 평정을 찾으려고 하죠. 아래 연차 선생님이 어떤 생각으로 전화하는지 알기 때문이에요”라고 했다.

1년차 때 평생 볼 책의 절반을 본다?

영상의학과는 인체 각 부위와 각종 장기에 대해 보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분량도 많다고. 안새미 선생은 “배우다 보니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정신이 말똥말똥할 때는 잘 보이던 사진이 새벽 3~4시에는 컨디션을 타서 판독이 안 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렇게 배운 게 결국 기억에 남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안 선생은 “윗 연차 선생님들이 항상 모르는 걸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그 분들이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물어볼 예정이예요”라고 했다. 이정훈 선생도 “복부를 보다가 무릎도 보고, 뇌도 보고 하니 학생 때 실습할 때보다 지금 해부학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 같아요”라고 거들었다. 이 선생은 “김용수 교수님이 ‘1년차 때 평생 볼 책 절반을 봤다’면서, 1년차 때 많이 공부하는 게 유리하다고 하셨어요. 저도 2년차 때까지는 공부 열심히 했는데 그 열정이 살아나서 다시 열심히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고 다짐했다.

다른 전공의 선생들도 판독량과 공부량 압박을 돌파하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란다. 이상준 선생은 “단기적으로는 오늘 해야 할 판독을 다 하는 게 목표예요. 장기적으로는 다른 진료과 의사들이 갖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4년차 이철민 선생의 조언은 짧지만 담담하게 들렸다.

“의국원들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고생스럽겠지만 그렇게 배운 게 밑거름이 될 거예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닐 겁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