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심평통신

지난 달 중순 발표된 중환자실 적정성평가의 결과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자승자박(自繩自縛)’한 꼴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환자실의 열악한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인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의미로 읽힌다. “중환자실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라는 병원계의 볼멘소리로부터 “실상보다 높게 평가됐다”라는 중환자의학회의 불만도 쏟아졌다.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4년 4/4분기 동안 중환자실 입원 진료분이 청구된 기관 가운데 종합점수가 산출된 263개 기관(상급종합 43개, 종합병원 220개)의 종합점수의 평균은 58.2점에 불과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들의 평균점수는 89.2점이나 종합병원은 52.1점에 머물러 종별 평균이 양극화돼 있다.

물론 중환자실을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인력구조에 가중치를 둔 결과이기도 하다. ‘전담전문의 1인당 중환자실 병상 수’와 ‘병상 수 대 간호사 수의 비’가 핵심지표였다. 심평원이 수행하고 있는 30여 종류의 적정성평가 가운데 첫 평가에서 이토록 참혹한 결과를 보인 경우는 없었다. 특히 유방암, 폐암, 위암 등 암평가의 경우 초회 평가에서 전체 평균이 95점에 가깝게 나온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사실 평가대상인 요양기관들의 종합점수들이 너무 심한 변이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등급구간을 어떻게 조정해볼 도리가 없었다. 구간을 좁게 가져가면 아주 낮은 점수의 기관들의 점수가 과대포장될 우려가 있고, 1등급의 기준을 낮추면 실정에 맞지 않게 1등급 기관이 늘어나면서 질 향상 노력을 소홀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통상적인 경우보다 더 많이 열린 분과위원회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읍참마속하는 심정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의료평가조정위원회에서는 분과위원회의 결정대로 확정한다면 결과를 받아들 국민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분과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는 절차까지 밟아야 했다.

평가지표별 결과를 놓고 보면, 인력부문에 대한 가중치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전문장비 및 시설구비 여부’, ‘진료 프로토콜 구비율’과 같은 구조지표나 ‘심부정맥 혈전증 예방요법 실시 환자비율’이나 ‘표준화 사망률 평가 유무’와 같은 과정지표 등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충족이 가능하고, 그 비중이 인력부문과 대등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개별 요양기관에서 중환자실의 적정성평가에 대한 준비가 다소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중환자실 적정성평가 틀을 보면 구조지표에 대한 가중치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정작 문제는 과정지표나 결과지표가 너무 빈약한 까닭에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적정성평가를 맡고 있는 심평원 입장에서 보면 현재 모니터링지표로 운용되고 있는 ‘다직종 회진 일수 비율’, ‘인공호흡기 사용 환자 비율’, ‘중심도관 혈핵 감염률’, ‘인공호흡기 사용 환자 페렴 발생률’, ‘요로카테터 관련 요로감염 발생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환자실 사망률’과 같은 결과지표를 평가지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들 지표들은 환자의 중증도를 보정하기 위한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1차 평가부터 평가지표로 사용할 수가 없었고, 일부 학회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내세운 지표도 있어서 모니터링 결과를 가지고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열악한 현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문제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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