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심평통신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리조직진단과 관련된 면역조직화학검사를 조정하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청구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면역조직화학검사의 경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실 면역조직화학검사는 특성상 사례마다 적용검사가 다르고, 요양기관마다 특성이 달라 고시 등을 통해 급여범위를
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면역조직화학검사에 적용하는 시약의 유효성을 충분히 검토하는 기전이 없는 것도 심사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리진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감별진단 ▲종양의 유형분류 ▲치료약제 선택에 필요한 경우 ▲예후판정 목적으로 사용되는 면역조직화학검사는 그동안 급여로 인정해왔던 게 사실이다.

건강보험에서는 연구목적의 검사나 불필요한 검사는 급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기관지 점막 생검에서 폐암으로 진단된 모든 사례에 대해 편평상피암 표지자로 P63과 CK 5/6, 선암표지자로 TTF-1과 napsin A, 소세포암 표지자로 CD56과 synaptophysin을 적용하는 사례처럼 정형화된 검사는 대부분 불필요한 검사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검사를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심평원에서도 병리검사보고서 등을 제출받아 꼼꼼히 검토하여 인정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병리검사보고서에는 시행한 면역조직화학검사 항목에 대해 양성 혹은 음성 등의 결과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왜 그런 항목들을 검사했고, 검사결과가 병리진단을 결정하는데 어떻게 기여했다는 사유를 기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여건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심평원에서는 보고서에 적힌 병리진단을 최대한 고려하여 검사의 인정범위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건에 대한 소명자료에서 “제발 삼각 시 어떤 근거로 했는지 특기해 달라”고 당당하게 적은 것을 보면 적반하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같은 병리의사인 필자의 입장에서 “제발 어떤 근거로 동 검사들을 했는지 분명하게 적어 달라”라는 답을 주고 싶다.

조정을 하고 이의신청을 하는 불필요한 행정업무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원심결정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면역조직화학검사의 시행 원칙만 달랑 적은 소명서와 이미 검토를 마친 병리보고서를 제출하지 말고, 관련 슬라이드 일체를 제출하여 심평원의 병리전문가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환자의 예후결정을 위한 검사항목이라고 하는데, 검사와 관련된 임상의사도 용도를 모르는 검사를 기본처방으로 하는 사례도 있다. 기본 처방으로 하던 검사를 심사에 반영하기 위하여 3~4개월에 걸쳐 사전 안내를 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처방 관행을 변경하지 않던 요양기관에서 심평원이 일방적으로 삭감했으므로 법적 책임을 묻고 싶다고 하니 할 말을 잃게 된다.

필자 역시 병리전문의라서 병리진단을 결정하는 과정이 지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병리진단을 결정하는데 꼭 필요한 검사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병리진단이 자로 잰 듯 똑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괄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면역조직화학검사의 심사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영역부터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고 있어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으로는 병리조직검사의 수가체계를 개선하여 병리의사의 상대가치를 충분히 반영하고, 특수염색, 면역조직화학검사, 면역형광현미경검사, 전자현미경검사 등 병리진단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최대한 반영한 포괄수가를 적용하는 방안이 어떨까 고민하고 있다. 병리의사들은 심사조정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검사를 충분히 시행하고, 심평원 역시 심사를 간편하게 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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