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환우단체 블로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의 타그리소 급여화 지연 횡포'라는 폐암 환자 보호자의 글이 올라왔다.

폐암 환자 아내를 둔 이 보호자는 글에서 "외부 의학교수들로 이뤄진 평가위원들이 타그리소를 약제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외고집에 보험등재가 좌절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여기서의 평가위원들은 '암질환심의위원회(이하 암질심)'를 지칭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타그리소가 국내에서 진행성 또는 전이성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 식약처 허가를 받은 지 4년이 지났는데, 이 기간 동안 타그리소 1차 치료 급여 안건은 4번 신청됐지만 모두 암질심 문턱을 넘지 못했다. 타그리소 판매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현재 5번째 신청을 해 놓고 암질심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암질심이 계속해 타그리소 급여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6일 복지부 보험약제과가 서정숙 의원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는 그 이유가 적혀 있다. 복지부는 타그리소 1차 치료의 임상적 유용성(전체생존기간 개선 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고, 고가 약제로서 급여 확대에 따른 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자료를 회사에 보완 요청했다고 답했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암질심이 '임상적 유용성'과 '재정 영향'을 평가했다는 부분이다.

타그리소는 현재 진행성 또는 전이성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 '글로벌 골드 스탠다드'로 인정 받고 있는 약제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암학회(ESMO) 등 전세계 유수의 폐암 관련 가이드라인은 타그리소를 이 단계의 유일한 최우선 권고 약제로 언급하고 있다.

타그리소의 3상 임상인 FLAURA 연구에서 전체생존(overall survival, OS) 데이터가 발표될 무렵, 아시아인 하위분석 결과 OS 혜택에서 대조군과 차이가 없다는 게 공개돼 한동안 국내에서 논란이 일었지만, 이후 일본인 코호트의 분석 결과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FLAURA China 연구 결과를 통해 아시아인에서도 생존 혜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논란은 일단락됐다.

폐암 분야의 국내 전문가들도 타그리소가 글로벌 골드 스탠다드 약제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타그리소 1차 치료 급여 안건을 뽑을 정도다. 실제로 몇몇 국내 암 관련 학회는 심평원에 타그리소 급여 확대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즉, 국내외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암질심만 타그리소의 임상적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꼴이다.

재정 영향에 대한 평가에 대한 답변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암질심 본연의 역할은 암 전문가들이 모여 약제의 임상적 가치를 근거에 기반해 평가하는 것이다. 건보재정 관련 부분은 암질심 다음 단계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이하 약평위)가 심의할 사안이다.

앞선 폐암 환자 보호자를 비롯해 일각에선 타그리소의 1차 치료 급여 행보가 지지부진한 배경으로, 경쟁 제품인 국산 신약을 고려한 행보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후발주자인 해당 제품이 연내 1차 치료 적응증은 물론 급여까지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환자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타그리소가 필요한 환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매달 자비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 폐암 환자 보호자는 타그리소 사용을 위해 4주에 600만원이 지출되는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출 등을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국산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등의 지원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러한 대의적 명분 하에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외면하는 게 과연 대의일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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