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너무나 안타까운 앳된 죽음이었다. 대구 소아 장중첩증 사망 사건, 전주 소아 교통사고 사망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또 발생한 이번 대구 청소년 추락 사망 사건에서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민낯과 현실을 보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가슴을 치게 된다. 먼저 꽃다운 나이에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청소년의 남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관련한 다양한 사실 보도와 기획 기사, 칼럼이 발행됐다. 그 가운데 응급의료 현장 경험이 없는 분들도, 때로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 응급의료 현실을 개탄하며 나름의 개선책을 주장하고 있다. 자기 확신에 찬 이론과 어디서 인용했는지 출처 모를 통계에 대해서 하나하나 논박하기보다는 20년 이상을 우리나라 응급의료에 종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실을 바로 알려 드리고 싶다.

미국 여행 갔다가 갑자기 아파서 미국 응급실에 갔다가 진찰하고 수액 정도 맞았는데 100만~200만원이 청구됐다, 수술까지 했는데 몇천만원 나왔다는 얘기는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진찰, 응급 진료조차도 우리나라와 같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의사가 한 것이 아니라 nurse practitioner, acute care practitioner와 같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의사가 아닌 직종이 한 것일 수도 있다. 영국이나 미국의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합법적으로 다양한 non-medical staff들이 존재하며,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병원 종별 가산 차이가 있을 뿐, 응급실이나 외래 모두 진찰료는 동일하다. 1만5,000~2만원 선으로 야간 공휴일 가산이 더 있을 뿐이다. 물론 응급의료기관에는 ‘응급의료관리료’가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에 따라 차등 부과되지만, 이것이 끝이다.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공휴일 새벽에 와도 진찰료, 응급의료관리료 모두 합쳐도 10만원이 안 되는 7만~8만원 선이다.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에 의한 ‘응급’ 환자는 50%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니 본인부담금은 더 준다. 입원하면 심지어 20%만 본인 부담하면 된다.

성인 복통 환자에서 X-ray, CT검사에 혈액 검사, 수액, 주사 처치, 퇴원약 처방까지 해도 100만원은커녕 본인부담금은 20만~30만원 선이다. 물론 개별 환자 사례마다 진료비는 다르겠지만, 도대체 투입되는 인력부터 수가까지 선진국이라는 영미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미국에서 911 신고 전화해 출동하는 EMS 구급대원과 구급차는 유료이며, 그것도 꽤 비싸서, 미국에서 해당 비용까지 지불해 주는 민간의료보험은 당연히 보험료도 비싸게 마련이다. 국가가 보편적 복지 제공 차원에서 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119구급대와 전혀 다르다. 경증 증상은 물론, 이건 뭐 응급진료가 필요 없는 수준인 “어디 부딪혀서, 손톱이 약간 들렸다”(놀라실지 몰라도, 직접 경험한 사례이다), “어제 술 먹고 속이 안 좋다” 정도로 119구급차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환자들이 많은 우리나라 응급의료 현장에서 미국 응급의료를 비교 대상으로 삼고, 개선점을 참고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경제적으로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은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의 현실 모습을 바로 이해해야만, 우리나라에 맞는 올바른 응급의료 개선책이 논의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병원들이 인력, 시설, 장비 등의 자원을 응급실에 우선 배정하지 않아서 소위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발생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Big 4’라고 불리는 대형병원들의 하루 외래 진료 인원이 병원과 요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1만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대형병원들에서도 응급실 진료 인원은 200~300명 선이다. 물론 응급실 특성상 400~500명 선까지 치솟는 날도 있지만. 그리고 1년이 365일이니 하루 100명이 오면 연간 3만6,500명을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병원인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우리나라 응급실 중 가장 규모가 큰 권역응급센터의 연평균 응급환자 수는 약 4만명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편향된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권역응급의료센터 간 편차가 얼마나 심한데 그것을 전체 권역응급의료센터 연평균으로 따지는지 모르겠다. 즉 서울대병원도 권역응급의료센터이고, 병상 규모와 진료 능력에서 단순 비교조차 불가능한 지방 소도시의 종합병원들도 역시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다. 심지어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은 현재도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아닌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어 있다. 어쨌든, 외래 1만명 진료해야 하는 병원에서 하루 300명 진료하는 응급실에 얼마의 자원을 투입할 수 있고, 또는 투입하려고 하겠나.

진정으로 응급의료에 인력, 장비, 시설과 같은 자원이 충분히 투입되기를 원한다면 투입돼야 하는 인력과 장비, 시설에 대한 충분한 댓가를 우리 사회가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수가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119구급대 유료화는 천지가 개벽해도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책이 아니고, 그렇다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인력, 장비, 응급환자가 사용할 시설(입원실, 수술실, 중환자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면, 심지어 충분한 수익이 남는다면, 어느 병원이나 외래 환자보다 우선해서 중증응급환자를 진료, 입원, 수술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기흉 환자에서 흉관 삽관을 하면, 외래에서 시행하든 입원해서 시행하든 수술실에서 시행하든 응급실에서 시행하든 동일한 수가로 책정되어 있는데도 “응급실 진료수가는 입원환자나 외래환자 진료수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실제 병원의 진료비용 대비 건강보험 수가를 잘 따져보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건강보험 수가 탓을 하는 것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하는 어떤 신문의 칼럼을 보며 그저 임상 현실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현행 수가체계 구조에서 어렵다면 응급의료관리료와 같이 응급의료기금에서 조달하거나 또는 다른 국가 재정에서 이번 필수의료대책에서 언급된 공공정책수가와 같은 추가 재원 지원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단순한 응급실 환자의 우선 병상 배정, 수술실 배정, 중환자실 배정과 같은 형식적인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우선 병상 배정, 수술실 배정, 중환자실 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응급실 환자의 우선 병상 배정이나 대기 병상 확보 등을 국가 정책이나 법률로 밀어붙이면 당장 외래로 와서 검사, 입원, 수술해도 되는 환자들도 응급실로 내원해서 빨리 입원하려고 응급실은 더욱 북새통이 될 것이고, 중증응급환자들은 여전히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나타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래가 멀쩡히 열려 있는 평일 낮에도 심지어 외래 예약되어 있는데도 빠른 검사와 빠른 진료 원하여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이 많은데, 불에 기름을 붓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응급의료의 거부 금지’가 응급의료법 제6조에 법제화돼 있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어마어마한 벌칙과 면허 취소, 면허 정지와 같은 행정 처분이 따라 오는 데, 현실에서는 이 법률 조항으로 말미암아 응급실 민원에 악용되고 응급의료체계의 효율적 작동도 막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응급실에서 응급 진료가 필요하지 않거나 또는 응급실 폭력을 행사하는 등 난동을 부려 응급진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이후 해당 병원과 의사에게 앙심을 품고 해당 법률 조항에 근거해서 보건소에 민원을 넣고, 경찰에 고발을 한다. 그럼 행정당국과 수사당국은 절차에 따라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고, 해당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될 때까지, 해당 의사와 병원 관계자는 불필요한 소명서를 작성하고 보건소 실사를 받으며 때로는 경찰서에 방문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마음 고생하게 된다. 이를 통해 응급의료인력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응급이든 비응급이든 관계없이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는 해당 법률 조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진료할 수밖에 없다. 실제 중증응급환자에 대해서 응급실 여유 병상과 진료 여력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게 만드는, 해당 법률이 의도했던 법률 취지는 달성하지 못하면서 응급의료체계의 효율적 작동마저 떨어뜨리고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법률 개정이 쉽지 않으니,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구체적인 응급 진료 거부 금지의 예외를 명시해야 한다.

어느 의사의 영웅 서사, 미담 때문에 신화화되어, 기존의 응급의료체계 내에서 쪼개 내서 별도로 만들어진 권역외상센터는, 전주 소아 교통사고 사망 사건, 대구 청소년 추락 사망 사건에서 보듯이 전혀 설치 의도대로 작동하지도 않았고, 외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심뇌혈관 중증응급환자의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겠다며 이제는 권역심뇌혈관센터를 외상체계처럼 별도로 구축하자는 주장까지도 마치 개선책으로 주장하고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외상 체계든, 심뇌혈관 체계든 포괄적 응급의료체계 내에서 정말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안전을 지킬 수 있게 재정비해야 한다.

선진국의 응급의료체계의 현실과 내밀한 속살은 알지 못한 채, 단순한 선진국 제도의 모방이나 이식 수준의 대책으로는 우리의 응급의료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는 상상 속의 이상적인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주장이나 또는 뜬금없이 “대한민국에서 중증응급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병원들이 응급환자를 적극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와 같이 주장하는 것 역시 우리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중증응급환자들을 열심히 진료하겠다는 병원들의 선의에 기대어야만 우리 응급의료체계가 개선된다는 말인가. 우리의 응급의료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고 직시해야만 올바른 개선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 개선책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 설계와 실질적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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