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류옥하다 인턴

산골 마을부터 서울까지, 아기를 받을 의사부터 소아를 진찰할 의사, 심장 수술할 의사가 없어 난리다. 필수의료라 불리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의사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 노동 강도, 다른 전공에 비해 낮은 급여, 소송에 대한 위험까지. 다양한 장애물이 의사들을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 미용성형으로 향하게 한다. 최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하며 회원들에게 미용, 보톡스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세태에 새내기 의사들도 필수의료를 지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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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으로 '의사를 수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으론 솔깃하다. 국제화 시대, 이미 연수 중이거나 교류 중인 외국 의사들을 한국에서 일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들이 필수의료를 지탱해주리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은 외국 의사가 의료를 배우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러나 근무하고 싶은 곳은 아니다. 노동 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임금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1인당 진찰 건수는 OECD 평균인 2,122건의 세 배(6,989건)에 달하고, 명목 GDP(물가상승분 반영) 대비 임금은 OECD 회원국 35개국 중 29위다(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년 의료정책연구소).

언어 장벽도 문제다. 타국 의사들이 한국어를 배울 유인도 없다. 영어가 가능하다면 굳이 한국이 아닌 미국을 포함한 다른 대안이 충분하다. 제3세계 의사들이 한국을 택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고 의료체계가 한국의 1970년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의사를 수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연 그들에게 '필수' 의료를 맡길 수 있을까. 소아청소년과 진료의 질이 담보될지, 심장 수술과 같은 고난도 수술을 믿고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사 수입은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주장하는 이들도 내심 이것을 알고 있다. ‘의사는 월급 300만원이 적절하다’, ‘의대 정원을 10만명으로 만들자’, ‘공공의대를 만들어 지방에 배치하자’는 말처럼 감정적인 분풀이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분풀이를 진지한 해결책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강제로 배치된 의사가 과연 책임감 있게 사명을 가지고 환자에게 최선의 처치를 해주리라 믿는가. 성숙한 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가 사명이란 이름 아래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고 전체주의적이다.

의대 증원 문제도 마찬가지로 필수의료 해결책이 아니다. 의료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특수한 시장이다. 늘어난 의사(공급)가 불필요한 의료서비스(수요)를 만들어내어 사회 전체적으로는 의료비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현 상황에서 의대 정원만 늘리면 필수의료 분야 대우는 더 취약해지고 인기과라 불리는 미용성형 분야로 더 몰릴 뿐이다. 대단한 기득권의 음모가 있어 의사 증원을 막는 게 결코 아니다.

물론 의사 집단에 대한 공분에는 부끄러운 선배들의 지분을 부인할 수 없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던 이들, 각종 범죄를 저지르던 이들, 환자에게 권위적이고 불친절하던 이들이 모여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 대부분은 생명을 살리고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의사는 구름 위에 살아가는 도인들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동료 시민일 뿐이다. 단지 분풀이로 정교한 의료체계를 훼손하고, 의료 자원을 망가뜨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과 돌봄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약과 의료기기는 수입할 수 있지만 사람을 함부로 수입할 수는 없다. 감정을 걷어내고 현명하게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잘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존 인력을 대우하고 활용하는 게 그 길 중 하나인 것은 명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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