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니우샤 샤릴루 씨
한국어 배우러 와 한국 유방암 치료 연구로 석사 마쳐
"힘들어도 값진 나날"…47만 팔로워에 유학 생활 공유도

4년 전만 해도 니우샤 샤릴루(Niusha Shariloo) 씨는 한국어를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암병원에서 일했지만 암 치료는 막연한 분야였다.

그러나 "운명은 이 앞에 전혀 새로운 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이란인 유학생은 어느샌가 '한국 유방암 데이터' 분석에 골몰했다. 스웨덴으로 날아가 세계적인 석학 앞에서 한국의 유방암 치료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47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로 다른 이들의 한국 유학을 돕기도 했다.

지난 26일 청년의사 자매지 'Korea Biomedical Review(KBR)'와 만난 샤릴루 씨는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NCC-GSCP) 교정과 연구실에서 보낸 3년이 "무엇 하나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값진 나날이었다"고 했다. 샤릴루 씨는 지난 2021년 GSCP 석사 과정을 지원해 올해 우등으로 졸업했다.

니우샤 샤릴루(Niusha Shariloo) 씨는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에서 보낸 유학생활이 "어렵지만 그만큼 값진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사진 제공: 니우샤 샤릴루 본인).
니우샤 샤릴루(Niusha Shariloo) 씨는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에서 보낸 유학생활이 "어렵지만 그만큼 값진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사진 제공: 니우샤 샤릴루 본인).

고국 이란에서는 이슬라믹아자드대(Islamic Azad University) 의대에서 분자세포생물학을 전공했다. 마하크어린이암병원(Mahak Cancer Children Hospital)에서 소아암 환자를 돌보며 암 치료에 보탬이 되고 싶단 꿈도 가졌다. 하지만 암 분야 연구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희망사항에 그쳤다.

지난 2019년 한국행을 택한 건 "어릴 때 다짐대로 한국어를 다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샤릴루 씨는 테헤란 세종학당에서 4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 정부 학생 초청 연수 프로그램(KGIP)'으로 지난 2016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이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공부를 마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짐대로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GSCP도 오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한국에 도착한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고 유학길이 막혔거든요."

전염병이 창궐하고 조국이 봉쇄된 상황에서 "한국어 공부를 위해 찾아 읽던 논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암센터 암의생명과학과 김영욱 교수가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암 유전단백체(proteogenomic) 논문이었다. 김 교수는 "암 유전체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란인 유학생의 요청에 연구실 인턴 자리를 내줬다. 샤릴루 씨는 3개월 동안 김 교수에게 지도받은 끝에 GSCP 석사 과정 합격 통보를 받았다.

"연구실을 오가며 GSCP가 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대학원과 병원, 연구소가 한 곳에 모여 있죠. 암 연구자에게 훌륭한 네트워크예요."

관련 전공 학위도 없고 연구 경력도 짧았지만 문제없었다. GSCP 대학원장인 명승권 교수(암AI디지털헬스학과)가 보기에 샤릴루 씨는 '지식과 실무를 겸비한 암 관리·연구 분야 글로벌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에 꼭 맞는 인재였다.

"GSCP는 지난 2014년 개교 이래 석사 과정 177명, 박사 과정 18명을 배출했습니다. 우리 학생 반이 샤릴루 씨처럼 유학생입니다. 한국에 남거나 본국에 돌아가 종양학과 공중보건 분야에서 일하고 있죠. 연구기관·병원·대학·정부·제약사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습니다(명승권 교수)."

국제암대학원대학교(GSCP) 원장인 명승권 교수(사진 오른쪽)는 GSCP가 샤릴루 씨처럼 암 관리·연구 분야의 인재를 위한 곳이라고 했다(ⓒKBR).
국제암대학원대학교(GSCP) 원장인 명승권 교수(사진 오른쪽)는 GSCP가 샤릴루 씨처럼 암 관리·연구 분야의 인재를 위한 곳이라고 했다(ⓒKBR).

연구 성과 올렸지만 생활 불편도 따라…'유학 생활의 기쁨과 슬픔'

우수한 학생을 지원하는 GSCP 장학 제도와 교수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샤릴루 씨는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한국 유방암 관련 데이터 10년 치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유전단백체 기술을 이용해 원발성 유방암 샘플에서 Erbb2 표적 치료 효과를 보이는 유전체를 가려냈어요. 연구실에 틀어박혀 긴 시간을 쏟아야 했지만 성공하려면 이 정도 헌신은 당연하죠."

이 같은 연구 성과는 곧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생명과학 분야 유럽 최대 학회인 유럽생화학회(Federation of European Biochemical Society)에서 포스터 발표도 할 수 있었다. 스웨덴까지 갈 경비를 구하느라 애를 먹자 지도교수인 김영욱 교수가 나섰다.

"교수님이 여비를 내겠다고 하셨을 때 깜짝 놀랐어요. 고작 석사 과정생인데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그만큼 제 연구가 중요하다고 인정받은 느낌이라 기쁘고 감사했죠."

꼭 고맙고 소중한 경험만 있는 건 아니다. 이란인으로서 한국 생활에 감수해야 할 불편도 많았다. "은행 계좌를 만들 때도 보안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그럴수록 유학 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유학 전부터 해온 인스타그램에 타지 생활이 "좋기만 하다고 부러 꾸며내지 않았다." 유학생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 초청 외국인 대학원 장학생(GKS)' 서포터즈로서 의견도 적극적으로 냈다.

"인스타에서 해외 유학을 희망하는 후배들을 상담해 주고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이란인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팔로워들에게 공유하기도 하고요.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해 왔는데 요즘은 대학원 연구로 좀 뜸했죠."

바쁜 생활 중에도 샤릴루 씨가 인터뷰한 사람만 200명 가까이 된다. 샤릴루 씨와 이들 유학생의 경험은 47만명이 넘는 팔로워에게 공유됐다. 실제로 샤릴루 씨를 통해 한국을 찾은 이란인 유학생들도 있다. 꼭 이란만 아니다.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가 샤릴루 씨를 따라 최근 GSCP에 입학했다.

앞으로 본인의 학업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박사 과정을 밟을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기에 앞서 심사숙고하고자 한다.

"저는 한번 결정한 일은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끝까지 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야 시작해요. 이제 다시 새로운 장(next big move)을 앞두고 있어요. 여러 길 가운데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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