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평원 최동진 정보운영실장
‘로봇사원’ 도입해 업무시간 연 8100시간 단축
RPA 도입 성공 요인…직원 공감대 형성과 참여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입사한 감사실 청렴감찰부 ‘나청렴’ 주임. 올해 2년차인 나 주임은 감사실에서도 ‘열일’하기로 소문난 사원이다. 열일만 하랴. ‘빠르고 정확한’ 업무 처리에 선배들에게는 언제든지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후배다. 올해는 심평원 직원들의 외부강의 신고 적정성을 검증하고 복무 점검 자동화 업무도 맡았다.

나 주임은 지난해 심평원의 ‘특별채용’으로 등용됐다. 심평원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 쏟던 시간을 줄여 업무환경을 효율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필요 직군을 모집했다. 이런 이유로 채용된 인재만 총 18봇이다. ‘명’(名)이 아닌 ‘봇’(Bot)인 이유는 이들이 사람이 아닌 ‘로봇’이기 때문이다.

나 주임처럼 심평원에서 활약하는 로봇들은 총 22개 분야에 배정돼 있다. 나 주임과 입사 동기는 11봇이고 나머지는 지난 2021년 채용된 선배 로봇들로 올해 ‘대리’로 승진했다. 로봇들의 활약으로 심평원은 단순 반복 업무에 소요됐던 연간 약 8,100시간을 절감했다. 수작업으로 인한 실수도 없어 신속하고 정확한 자료 제공이 가능해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처리자동화’ 기술로 '로봇사원'을 채용했다(자료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처리자동화’ 기술로 '로봇사원'을 채용했다(자료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는 심평원이 지난 2021년 도입한 ‘업무처리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RPA) 기술의 성과다. RPA는 단순·반복적 업무를 알고리즘에 따라 처리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이 들어가지 않는 모든 일은 이를 통해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업무는 신포괄수가 조정계수 산출을 위한 포괄·비포괄 구분과 단가 보정 업무다. 신포괄수가 요양기관 98개소의 조정계수 산출에 필요한 기관별 자료를 수집하고, 포괄마스터 DB관리, 단가 변동사항 업데이트 등 통계분석시스템(Statistical Analysis System, SAS)을 활용해 업무를 처리한다. ‘심평봇’이 담당이다.

그간 기관별로 일일이 자료를 모아 구축하기까지 100일이 소요됐다면 심평봇 도입으로 업무시간이 3일로 단축됐다. 처리속도가 33배 향상된 것이다. 더불어 오류율이 개선되면서 업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게 심평원의 설명이다. RPA 도입으로 심평원의 업무환경 혁신을 이끈 최동진 정보운영실장을 만나 앞으로 계획을 들었다. 인터뷰에는 정보운영실 경영정보부 최기일 팀장이 함께 자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최동진 정보운영실장(사진)은 ‘로봇사원’ 도입으로 업무처리 방식을 개선해 단순 반복 업무 시간을 크게 절감한 것은 물론 수작업으로 인한 실수도 줄었다고 했다(ⓒ청년의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최동진 정보운영실장(사진)은 ‘로봇사원’ 도입으로 업무처리 방식을 개선해 단순 반복 업무 시간을 크게 절감한 것은 물론 수작업으로 인한 실수도 줄었다고 했다(ⓒ청년의사).

- 로봇사원들은 어떻게 출근하나. 또 이들에게 ‘주임’과 ‘대리’ 등 직위를 부여한 이유가 있나.

최기일: 직원들은 모바일이나 PC를 통해 시스템으로 로그인해서 업무를 처리하지만 로봇사원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로봇사원 자리의 PC를 켜서 (사원) 고유번호를 입력해 일을 할 수 있도록 깨워준다. 이처럼 시스템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시스템 접근을 위한 직원번호를 부여해야 했다. 인사부와 협의를 통해 직원 등록 절차를 거쳐 시스템 이용을 위한 OPT를 발급했다. 일반 직원으로 채용할 경우 급여 등 문제가 있어 용역직원으로 직번을 부여했다. 1년에 한 번씩 갱신도 해줘야 한다.

- 로봇사원 명명에도 직원들이 직접 참여했다고 들었다.

최동진: 부서 고유 업무 특징에 맞게 각 부서 직원들이 해당 부서 로봇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줬다. 캐릭터는 내부 직원의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이름을 붙인 직원들과 캐릭터를 그린 직원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진 점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 신포괄수가 조정계수 산출 업무 이외에 RPA 도입으로 성과를 거둔 분야는 무엇인가.

최동진: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공공데이터포털’ 사이트가 있다. 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구축한 통합 제공 시스템이다. 내부망과 분리돼 있다 보니 직원이 계속해서 사이트를 들락날락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때문에 10일 안에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걸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RPA 도입으로 로봇사원이 요청 자료가 오면 신청자료 리스트를 정리해 담당 직원에게 전달하고 처리한다.

- 단순·반복 업무에 RPA를 도입한다고 했다. 업무 분야는 어떤 방식으로 발굴했나. 적합한 업무분야가 따로 있나.

최동진: 처음 RPA 도입을 시작했을 땐 솔직히 어떤 업무가 적합할지 감이 안 왔다. 그런데 막상 기능에 대해 이해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 시켜보니 지금은 22개 분야에 적용 됐다. 현장 중심으로 업무과제 발굴을 위해 올해 3월에는 RPA 업무 경진대회를 열어 담당자 인터뷰를 통해 업무 적정성을 파악하고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접수된 총 48개 과제 중에 최종 14개 과제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구축 작업에 한창이다. 특히 업무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젊은 직원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로봇사원'인 약제관리실 '진심봇' 대리의 자리다. 각 부서 한켠에는 발령 받은 로봇사원들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사진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로봇사원'인 약제관리실 '진심봇' 대리의 자리다. 각 부서 한켠에는 발령 받은 로봇사원들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사진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 업무에 RPA를 도입할 수 있는 기준이 있나.

최기일: 4가지 틀이 있다. 규칙성이 있어야 하고 반복적이어야 한다. 정보의 인풋과 아웃풋이 정확해야 한다. 또 통계 같은 것도 주기성을 가져야 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만들어 가공을 해야 하는 분야는 효과가 떨어진다.

- 일선 현장에서는 RPA 도입으로 어떤 이점이 있을까.

최기일: 예를 들면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정책 자료의 경우 데이터 정합성을 검증하는데, 그 검증된 결과에 대해 담당자가 크로스체크가 필요하다. 사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이 투입된다. 그간 건정심 들어가기 전까지 1~2주간 직원들이 엑셀 작업을 하며 바뀐 정책이나 수반된 사항 등을 일일이 검증해야 했다면 RPA가 낸 결과만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정확도가 높아졌고 업무 효율성도 향상됐다.

- RPA 도입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최기일: RPA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매뉴얼을 만들어 보라고 하면 규칙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수시로 예외적인 것들이 발생한다. 이것들을 모두 RPA로 녹여낼 수는 없다.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고 의료정책에 대해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심평원의 업무는 특히 그렇다. RPA는 협업에 대한 시스템이지 인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만큼 활용된 인력들이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로봇사원을 채용관점에서 보면 ‘인턴’ 같은 실무부서의 조력자라고 보면 된다.

-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동진: 공감대 형성과 직원 참여다. 이를 위해 직원 대상 교육만 수차례 진행했다. 시범적으로 도입해 활용해 본 담당 팀장이 직접 나와 RPA 도입 전후 차이에 대한 설명도 했다. 직원들 반응도 정말 좋았다. 최근 교육 현장에는 3층 회의실에 60여명이 참석하면서 꽉 찼다. 때문에 단순히 RPA를 구축한다기보다 ‘로봇사원’을 채용한다는 관점에서 실무부서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직원들이 업무 개선에 의지를 갖고 참여해야 가능한 일이다. 업무 효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적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각 부서 직원들과 업무 플로우(flow)를 그려가며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완성했다. 의견을 조율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신규 직원들과 업무적인 공감대뿐만 아니라 세대 간 공감대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시각적으로 로봇사원의 업무 성과를 볼 수 있고 모니터링도 할 수 있도록 RPA 포털을 구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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