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여유리 변호사

형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근로기준법 외에도 의료분쟁조정법 제51조 단서, 의료법 제87조의2 제2항 단서 등과 같이 의료 관련 법령에도 반의사불벌죄가 규정되어 있다. 반의사불벌죄는 형사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에는 그 의사에 반하여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한 범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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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 규정이 없는 이상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해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이 판결 사안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전방주시의무를 게을리한 과실로 전방에서 보행하고 있던 피해자를 들이받아 피해자는 뇌손상 등 중상해를 입었고 그 후 식물인간 진단을 받았다(피해자는 제1심 변론종결일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정법원은 피해자의 배우자를 성년후견인으로 선임하면서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소송행위’를 포함시키고 그 대리권 행사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정했다. 그 후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은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후 제1심 판결 선고 전 법원에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이로 인해 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인 피해자를 대리해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 표시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됐다.

원심은 형사소송절차에서는 명문 규정이 없으면 소송행위의 법정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반의사불벌죄에 관해서 피해자를 대리하거나 독립해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수원지방법원 2021년 8월 11일 선고, 2020노7245).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도 원심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므로 문언상 그 처벌 여부는 피해자 본인의 명시적 의사에 달려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성년후견개시심판과 형사소송절차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있어서까지 성년후견인의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과 무관하고 오히려 이에 역행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인 피해자를 대리해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희망의사를 철회할 수 없다고 했다(대법원 2023년 7월 17일 선고, 2021도11126).

의료사고로 인해 환자가 뇌사 등 의식불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의료분쟁조정법에서는 환자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장애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 조정 성립·합의가 이루어져도 형사적으로 반의사불벌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그렇지만 의료계에 형사 구속 사건이 늘어나면서 이 경우에도 반의사불벌 조항 도입 필요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의료분쟁조정법상 반의사불벌 조항 적용 범위 확대 및 개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입법론적으로 참고해야 할 유의미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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