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동현 한사랑병원장(대한외과의사회 총무부회장)
지역 외과 의사와 2차 병원 위한 지원 必
"나를 믿는 환자 있어 오늘도 수술방 연다"

대한외과의사회 총무부회장인 최동현 한사랑병원장은 지역 사회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와 2차 의료기관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대한외과의사회 총무부회장인 최동현 한사랑병원장은 지역 사회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와 2차 의료기관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의료는 드라마 단골 소재다. 외과 의사는 대개 주인공이다. 의료진 헌신과 생사의 아픔을 그릴 때 카메라는 곧잘 수술방을 비춘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고 외과 의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의사가 헌신해도 피할 수 없는 '생사의 아픔'은 소송으로 돌아온다. 전문의로서 내린 의학적 판단이 재판부 시각에 따라 중범죄가 되기도 한다.

지난 10일 대한외과의사회는 기자간담회에서 "외과계가 멸종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의는 수술을 포기하고 외과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는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필수의료과' 문제에 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현장은 이대로면 수술하는 외과 의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총무부회장인 최동현 한사랑병원장은 "외과가 집단 우울에 빠졌다"고 했다. 뭘 해도 이제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수술하는 병원은 수술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 외과 의사는 늘 소송과 민원에 시달린다. 자진해서 지역 응급 환자를 맡아도 정부 지원은 받기 힘들다. 목소리 낼 곳도 마땅하지 않고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외과전문병원인 한사랑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그래도 최 원장과 외과 의사들은 매일 수술방을 연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지만 매일의 수술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순간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청년의사는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사랑병원을 찾아 최 원장에게 외과전문병원이자 지역 2차 병원 시선에서 본 외과계 현실에 대해 들었다.

청년의사는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한사랑병원을 찾아 지역 외과전문병원 시선에서 외과계 현실을 들었다(ⓒ청년의사).
청년의사는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한사랑병원을 찾아 지역 외과전문병원 시선에서 외과계 현실을 들었다(ⓒ청년의사).

- 지난 10일 외과의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외과가 집단 우울에 빠졌다'는 말을 했다.

맞다. 지금 외과계 행사 어디를 가나 집단적인 우울감이 느껴진다. 이러다 외과 자체가 '망할 것 같다'는 절망이다. 수술하는 의사가 갈수록 줄어든다. 몇 년 안에 충수염 수술 못 해서 사망하는 환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심각하다.

내가 2001년부터 레지던트로 근무했다. 그때는 외과 의사 하기 더 쉬웠나? 전공의 경쟁은 심하고 수련 환경은 열악했다. 사흘 일하면 이틀이 당직이었다. 응급실에 환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밤낮으로 수술방 올라갔다. 그러고 다음 날 또 수술했다. 그래도 최소한 지망을 후회하는 과는 아니었다. 불과 20년 만에 상황이 너무 나빠졌다.

- 최근 한 외과 의사가 장폐색 환자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수술을 미루고 보존치료를 우선했다는 이유다.

명백하게 잘못된 판결이다. 전국의 외과 의사가 매일 비슷한 환자를 만난다. 외과 의사라고 무조건 수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신중하게 판단한다. 배를 가른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법원은 그 신중함까지 잘못됐다고 한 셈이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의학적 판단보다 법적 판단이 앞섰다. 다학제 진료처럼 수술할 때마다 판사 의견 듣자는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 한사랑병원도 소송 등 환자와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나.

지금 소송만 안 걸렸지 민원이 힘들다. 교육 현장이 악성 민원으로 힘든데 여기도 똑같다. 뭐 하나 걸릴 때까지 보건소고 심평원이고 쫓아다니며 민원 넣는다. 99번 잘해도 1번 때문에 돌아오는 상처가 크다. 주변에 민원 때문에 그만두는 의사들도 있다.

3차 병원 치우친 정책…외과의 일하는 지역 2차 병원 지원책을

-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잇따라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작 외과가 거기서 빠졌다. 지원해도 3차 병원 위주다. 한사랑병원 같은 2차 의료기관 특히 준종합병원과 중소병원은 정책에서 소외됐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 영향이라고 본다. '서울 대형병원조차 수술을 못 한다'는 충격이 크다. 그러나 정책은 사건의 임팩트가 아니라 빈도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당장 응급 현장에서 매일 터지는 건 장 천공, 충수염, 담낭염이다. 초점을 다빈도 응급 질환에 맞춰야 국민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린다.

- 필수의료 정책에 응급의료 관련 대책도 있는데.

그것도 3차 병원이 운영하는 권역·지역센터에 집중돼 있다. 응급 수술은 오히려 우리 같은 지역 외과가 더 많이 한다. 정부가 말하는 심뇌혈관질환자만 응급 환자인가. 모든 병원이 문 닫은 심야에 찾아오는 복막염 환자도 똑같이 응급 환자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는 지역 외과도 이런 복막염 환자도 '응급'에서 배제돼 있다.

지역 내 2차 병원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집중 지원해야 한다. 한사랑병원을 비롯해 많은 지역 병원이 손해를 감수하며 지역 의료에 헌신하고 있다. 특히 응급 수술은 할수록 적자다. 한사랑병원도 지역사회에서 외과 병원으로서 역할 하고자 24시간 응급수술을 선택했지 어떤 이익을 생각했으면 애초에 시작도 못 했다.

수술할수록 적자인 외과계 현실…재료비 조정만으로도 도움 돼

- 수술하는 과 모두 '수술할수록 적자'라고 한다.

수술해서 100원 벌면 그대로 다 빠져나간다. 한사랑병원도 수술하는 병원이고 외과전문병원인데 수술만 해서는 직원 월급도 못 준다.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매출은 높아져도 순이익이 없다. 열어보면 병원 대부분 적자다. 당장 빈 곳을 메꿔야 하니 다음 수술을 하고 계속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끝내 넘어지고 만다.

- 원인이 뭔가.

재료비 문제가 크다. 병원은 수십 개 업체가 관여한다. 수술에 드는 비용 상당 부분이 재료비다. 수술하고 100원 벌면 고스란히 업체로 빠져나간다. 비급여만큼은 아니어도 재료비에 최소한의 마진은 허용해줘야 한다. 병원들이 수술로는 돈을 못 번다.

- 의사 행위료 인상도 자주 나오는 해법이다.

행위료는 개선될 가망이 없다. 상대가치로 묶어놔서 건드려봤자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다. 애초에 워낙 낮게 설정해서 웬만큼 올려서는 효과가 없다. 수가 인상은 정책수가로 해야 한다. 지금은 즉효가 중요하다. 의대 정원 증원처럼 10년 뒤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현장에 꽂히는 게 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재료비에서 병원이 마진을 남길 수 있게 되면 수술해서 월급 주고 병원 운영도 할 수 있다.

- 인력 부족 문제도 크다고 들었다.

한사랑병원은 경기도고 수도권이라 그나마 괜찮다. 비수도권은 어렵다. 의사는 물론 간호인력이나 의료기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수술실 CCTV 설치가 본격화되면 그나마 남은 인력도 수술방을 나갈 거다. 간호 인력이 부족하면 입원 치료도 힘들다.

지금 의료 문제 대부분 핵심은 양극화다. 의대도 인력도 지역도 양극화되고 있다. 의사가 되고자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조차 양극화다. 이건 사회적 현상이고 문제다. 사회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료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환자 있어 오늘도 수술방 연다…외과계 함께 더 버틸 수 있길

외과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한사랑병원처럼 여전히 수술방을 여는 외과 의사들이 있다(ⓒ청년의사).
외과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한사랑병원처럼 여전히 수술방을 여는 외과 의사들이 있다(ⓒ청년의사).

- 그런데도 오늘도 수술방을 연 이유가 뭔가.

특별한 이유 없다. 해야 하니까 한다. 외과 수술은 하면 좋다고 설득하고 강요하는 영역이 아니다. 환자는 병원, 의료진, 나를 믿고 온다. 그리고 치료된다. 이 간결한 드라마틱함이 외과 매력이다. 어쩌면 외과 의사 드라마를 계속 만드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웃음).

- 어려운 상황에서 외과 의사하겠다고 들어오는 후배들도 있다.

나는 이런 후배들에게서 어떤 '신심'을 느낀다. 그만큼 외과는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고 인내와 공력을 요한다. 안 되겠다 싶으면 차라리 빨리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과다. 하지만 처음 그 각오로 버텨낸다면 길은 많다.

- 그렇게 버텨내고 있는 외과 동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나처럼 수술방에 남은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떠났다. 더 이상 힘들다는 사람도 많다. 외과와 관계 없는 곳으로 가거나 요양병원에 간 동료도 있다. 그 고민과 어려움을 왜 모르겠나. 그래도 이제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갈 때가 가까웠다고 느낀다. 우리 같이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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