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충북대병원 한정호 기획조정실장
30여년 전 신설 의대들 대부분 서울‧수도권 ‘먹튀’, 되풀이 안돼

충북대병원 한정호 기획조정실장은 의대대학 정원을 확대하고 의대를 신설하는 것은 지역의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 실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추진에 대해서도 과학기술 발전에 앞장서야할 곳이 돈벌이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북대병원 한정호 기획조정실장은 의대대학 정원을 확대하고 의대를 신설하는 것은 지역의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 실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추진에 대해서도 과학기술 발전에 앞장서야할 곳이 돈벌이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자, 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의료 살리기'란 명목 하에 의대 신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충청북도 또한 지역 의료 활성화를 역설하고 있지만 다른 지자체들의 요구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지역 의대 신설이 아닌 지역 내 충북의대와 건국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지난 19일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 내 의대 정원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최소 108명 이상 정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증원하는 의대 정원은 지역 출신 인재를 우선 선발하고 현장 실습을 충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 일정 기간 지역 의무 근무를 하게 해 사실상 공공의대 신설과 같은 효과를 내겠다고도 했다.

이러한 주장에 충북지역 의대 정원 확대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충북대병원의 한정호 기획조정실장(소화기내과 교수)은 한발 더 나갔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확대 정원을 기존 의대에 배정한다면 국립의대 중심으로 배정해야 하며 사립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지방 의료인의 서울‧수도권 진입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이 외에도 의대 신설 분위기를 타고 ‘의사과학자 양성’을 무기 삼아 의대 신설을 추진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행태에 대해서도 과학기술에 앞장서야 할 곳이 돈벌이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정호 실장을 만나 그 이유에 대해 들었다.

30여년 전 신설 의대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병원 설립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정한 후 다수 지역에서 공공의대와 부속병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충북도는 기존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30여년 전 전국에 10여개 의대를 신설했는데, 이들 중 지방에 순수하게 남은 의대가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신설 의대 중 대부분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 병원을 건립해 돈을 번다. 지역의료를 살린다며 의대 인가를 받고 수도권에서 돈벌이하는 모양새다. 이미 이런 일을 겪었는데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또 의대 신설을 주장하는 것은 이전 실수를 되풀이 하겠다는 것이다.

-의대 신설에 앞서 교육이 가능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의대교수 인력에 대한 고민도 없이 의대 신설만 주장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도 국립의대에 기초의학 교수가 없는데, 의대 신설하면 기존 의대들도 교수 채용이 어려워 진다. 인력 고민 없이 신설만 하면 의대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은 망상 수준이다. 기존 의대들도 해부학교수 등이 부족해서 충원이 안된다. 서남의대 폐과를 봐도 기초의학 담당 교수가 없었기 때문에 과가 없어졌다.

-의대 신설이 기존 의대 교육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의대인증기준평가를 하고 있고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생은 의사국가고시 응시가 안된다. 인증이 쉬운 것도 아니다. 이미 몇몇 의대들은 기초교수 채용이 안돼 평가 유예상태다. 의대 신설하면 (교수를 구하지 못해) 인증 통과 못하는 곳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의대 정원을 확대해 기존 의대에 배정할 경우, 국립의대에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 소재 사립의대 상황을 보면 의대는 지역에 있지만 교육과 수련은 거의 서울과 수도권에서 진행한다. 지방 사립의대는 이미 (의료인력이)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가 됐다. 사실상 지역에서 ‘먹튀’한 사립의대 정원을 더 늘려주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 의료인력 늘려주는 꼴이 된다.

-국립의대 정원을 늘려주면 사립의대와 다른가.

국립의대 정원을 늘려주는 대신 해당 정원만큼 지역인재정원으로 묶어야 한다. 한계는 있겠지만 사립의대처럼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되진 않는다. 또한 국립의대 정원 중 2~3명 만이라도 좀 더 강력한 수단으로 지역에 묶어두는 방안을 도입하면 연간 50명, 10년이면 500명을 지역의료인으로 키울 수 있다.

-정부도 계속 논의 중이지만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최소한 2001년 의대 정원 350명 줄인 것은 복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의대 정원은 한번 확대해도 향후 모니터링 등을 통해 조정이 가능한 반면 의대를 신설하면 정원을 더이상 줄일 수 없다. 이런 점도 의대 신설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국립의대 중에서도 충북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강원도, 전라북도, 충북 인구가 약 50만명으로 비슷한데, 전북과 강원은 도내 의대 정원이 각각 260명과 280명이다. 반면 충북은 49명 뿐이다. 인구가 비슷한 지역 중 의료인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곳이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이를 정상화해야 한다.

카이스트 의전원 설립 추진, 의과학자 양성에 악영향

-의대 신설 분위기를 타고 카이스트의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이슈도 뜨겁다.

카이스트에 의전원 설립 문제는 지난 의전원제도 도입 사태를 생각하면 된다. 의전원체계 도입 때문에 필수의료와 의과학자 양성 시스템이 붕괴된 측면이 있다. 의대 입학생들은 (소수라도) 기초과학자가 되거나 필수의료로 진출하는데 (의과학자나 필수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도입한) 의전원 출신 의사들이 바로 개원 시장으로 진출해 피부‧미용분야 개원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됐다. 카이스트 의전원이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하지만 결국 지난 의전원 사태와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카이스트 의전원 추진으로 오히려 의사과학자 양성 시스템에 균열이 온다는 이야기인가.

지금까지 서울의대, 연세의대 등에서 임상의사를 (연구도 가능한) 교수로 키우기 위해 카이스트 박사과정이나 연수를 많이 보냈다. 그런데 카이스트에서 의전원을 만들고 병원을 건립하겠다고 하니 이런 협력관계가 다 무너졌다.

기존 모델이 미국 하버드의대 등에서 메사추세츠 공대(MIT)로 연수를 보내던 모델을 따라한 것인데, MIT가 갑자기 의대를 신설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스템이 깨진 꼴이다. 기존 의대들에서 배신감을 느끼고 카이스트 연수를 꺼리면서 의사과학자 양성에 이미 악영향을 주고 있다.

(카이스트와 다르게) MIT는 수십년간 하버드의대를 비롯한 보스톤의 의과대학들과 신뢰를 지켜며 공생해왔다.

-카이스트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지금 카이스트가 해야 할 일은 의전원 설립이 아니라 공학자 일자리를 늘리고 고액연봉을 받게 해서 (의료분야에 진출하는 공학자들이) 신약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카이스트가 의대 유치하고 병원 건립해서 수익사업하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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