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든 JCI 인증 열풍…국내 상급종합병원 3곳만 ‘인증 유지’
인증원 인증평가로 ‘선택과 집중’…“이중 비용과 업무 부담 No”
이중 인증평가로 업무 부담 커진 세브란스병원 노사 간 갈등도

한 때는 ‘JCI 인증’ 획득이 유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도 나도’ 인증대열에 합류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시들하다. JCI 인증을 두고 ‘옛 이야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한 때는 ‘JCI 인증’ 획득이 유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도 나도’ 인증대열에 합류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시들하다. JCI 인증을 두고 ‘옛 이야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JCI) 인증. 이를 바라보는 국내 의료기관들의 시각이 변하고 있다. 한 때는 ‘JCI 인증’이 유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도 나도’ 인증대열에 합류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시들하다. JCI 인증을 두고 ‘옛 이야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JCI는 미국 의료기관의 의료 수준을 평가하는 비영리법인 ‘The Joint Commission’이 지난 1994년 세운 국제기구로, 엄격한 국제표준 의료서비스 심사를 거친 의료기관에게 발급된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13개 분야 1,000여개 항목에 걸쳐 평가하며, 인증 주기는 3년이다.

이에 JCI 인증 획득은 국제적으로 안전한 병원으로 인정받은 훈장과 동시에 병원의 국제적인 위상을 확인시켜 주는 하나의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의료기관들이 JCI 인증에 도전해 성공했고, 재인증 시도를 이어왔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10월 기준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JCI 인증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등 3곳이 전부다.

그나마 최근까지 JCI 인증을 유지해 온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아주대병원, 인하대병원 등도 더 이상 인증을 받지 않는다. 지난 2016년 3차 인증을 받은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인하대병원은 2019년 4차 인증을 받지 않았다. 아주대병원은 지난 2017년 3차 JCI 인증까지만 받았다.

인증 중복 평가 받던 의료기관들 ‘선택과 집중’

의료기관들이 JCI 인증을 받지 않기로 한 배경에는 국내 의료기관인증제 도입이 영향을 미쳤다. 그간 3년 주기로 JCI 인증을 받으면서 4년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위해 의무적으로 의료기관인증까지 모두 받아오던 의료기관들이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국제 수준의 인증시스템을 갖추게 된 의료기관인증만 받기로 결정한 것이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지난 2010년 의료기관인증제 도입으로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주된 내용으로 평가하고 있다. 필수 요건을 충족했음을 보증하는 ‘인증’과 그렇지 못한 ‘불인증’으로 공표한다. 지난 2012년부터는 인증의 전문성과 객관성 제고를 위해 국제수준의 인증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국제의료질향상연맹(ISQua)으로부터 인증기준과 조사원 훈련에 대한 인증도 받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는 JCI 인증이 국내 도입될 무렵과 비교해 우리나라 병원들이 안전해졌으며 의료의 질도 크게 향상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인증원의 인증평가를 연속해서 받은 병원들은 수가보전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관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국내 인증제도의 장점으로 꼽았다.

즉, 인증원의 인증평가를 통해서도 안전한 병원 문화 조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증원의 ‘의료기관 인증제도 성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속 인증을 신청한 병원들의 동기 우선순위를 살펴보면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 관리를 위해서가 가장 높았고 ▲정부지원 수혜 ▲병원 인지도 향상과 홍보에 도움 ▲환자와 내원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타 병원과의 경쟁적 우위 확보 등 순이었다.

상급종합병원인 A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감염 확산 우려 속에서 JCI 인증을 받는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자연스럽게 JCI 인증을 받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 데다 국내 인증 수준이 향상됐다고 보이니 JCI 인증을 추가로 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B병원 관계자는 “JCI 인증이 국내 들어왔던 초기 너도 나도 인증을 획득하기 위한 붐이 일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내 인증제도가 정착됐다. JCI 인증과 인증원의 인증평가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에 굳이 이중으로 모두 평가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증 평가를 받을 때마다 이중으로 부과되는 비용 부담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줄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인증하기 전 컨설팅은 물론 인증을 위해 해외에서 오는 조사원들에 대한 숙박비, 항공권 등도 제공해야 한다. 인증원의 인증 기준도 강화됐고 중간평가에 최종평가까지 받는데 굳이 이중으로 비용을 부과하면서까지 해외 인증을 받을 이유는 없다”며 “JCI 인증은 옛 이야기인 것 같다”고도 했다.

인증 준비에 따른 과중한 업무로 인한 간호사들의 줄 사표도 문제다. 심지어 인증을 앞두고 업무 부담으로 인해 노사 간 갈등으로 번진 병원도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인증 준비에 따른 과중한 업무로 인한 간호사들의 줄 사표도 문제다. 심지어 인증을 앞두고 업무 부담으로 인해 노사 간 갈등으로 번진 병원도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JCI 인증 앞두고 노사 간 갈등 드러난 세브란스병원

특히 인증 준비에 따른 과중한 업무로 인한 간호사들의 줄 사표도 문제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간호사들의 인증 스트레스는 채용공고에서도 드러난다. 일부 병원에서는 간호사 채용 시 ‘O주기 인증 완료’를 명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증을 앞두고 업무 부담으로 인해 노사 간 갈등으로 번진 병원도 있다. 국내 최초 JCI 인증 타이틀을 거머쥔 세브란스병원이다.

세브란스병원 노사는 JCI 인증을 두고 수년 째 갈등 중이다.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 중복 인증평가로 인한 현장 피로감을 호소하며 필수가 아닌 선택에 해당하는 JCI 인증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연세대의료원 측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9월 진행된 JCI 인증을 앞두고 갈등이 고조됐지만 JCI 인증으로 인한 업무 부담이 가중되지 않는 선에서 평가가 진행되도록 노사가 합의하며 일단락됐다. 단, JCI 인증 유지 여부에 대해 추후 노사가 지속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노조 관계자는 “JCI가 국제 인증이고 국내 의료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커 현장 피로감이 상당했다. 더욱이 인증원 인증평가와 JCI 인증이 중복되면서 이로 인한 심적 부담도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시행됐어야 했던 JCI 인증이 한 해 연기된 거라 평가를 받되 평소 수준으로 유지하는 차원에서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의료원 측에 요구했다”며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에 대한 중요성은 구성원들 모두 알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질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 수준에서 평이하게 받더라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원은 ‘국내 최초’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JCI 인증을 중단하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은 것 같다. JCI 인증 폐지는 의료원 결정사안이지만 지속적으로 직원들과 중단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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