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세종충남대병원 피부과 교수

의과대학 의학과(본과) 3학년생이었던 2000년, 허갑범 교수님의 외래 진료를 참관했을 때 한 타임에 환자 200명을 여유롭게(?) 직접 혈압까지 재면서 보시던 그 광경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극대화된 생산성(낮은 임금/극강의 진료실적)을 보유한 시절이었다. 명의인 시니어, 가정을 버린 주니어, 그리고 100일 당직 가능한 전공의, 4주 출산휴가가 미안한 여전공의, ‘인간이 하루 2~3시간씩 자도 살 수 있구나’ 하면서 인간한계를 모르던 인턴들로 2023년 현재의 생산성(높은 임금/낮은 진료실적)의 3~5배는 올리는 구조였다.

이에 더해 환자들도 먹고 살기 힘들 때라 정말 아파서야만 병원에 왔고, 비용 문제로 누구나 우선은 동네에서 건강보험 진료를 보고 동네병원 의사가 ‘진짜 안되겠소. 큰 병원 가보쇼’ 하면 그제야 큰 병원 왔다. 그 땐 이미 중환이라 인공호흡기(Ventilator)를 달아야하는데 병원에 기계 없으면 ‘인턴기계’가 24시간 앰부 백(AMBU bag)을 짤 각오로 환자를 받던 시절이었다.

세종충남대병원 피부과 김현정 교수 
세종충남대병원 피부과 김현정 교수

하지만 2023년의 한국은 어차피 내가 낸 실손보험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는지라 언제든 시간만 있으면 우선 동네병원에 진료 받으러 간다. 의사도 뭔가 돈 버는 온갖 신기술을 선보이고 보험만 보려하면 사람 취급안하니까 ‘내가 돈이 없냐’고 고성이 나온다. 고비용으로 휘청여 돈 벌어야하는 동네병원은 경증이어도 ‘진상 상대거부권’을 발휘해 큰 병원으로 보낸다. 그러면 이미 그쪽에서 돈 안된다고 무시당한 ‘의학적으로’ 경증이며 심증으로는 초중증인 환자(동네병원 의사가 빨리 큰 병원 가라 했으니)는 의사새끼 운운하며 큰 병원에 도달한다.

하지만 큰 병원에는 2000년처럼 생산성을 가진 의사들은 이미 은퇴하고 없다. 워라밸과 선진국형 진료를 꿈꾸는 젊은 의사들이 태반이라 환자 30명 보면 예약초과이고 진료방침에 어긋나니 예약을 더 받지 않는다. 연차는 무조건 다 써야하고 아프면 개인사정으로 진료를 중단한다. 하지만 이것이 삶의 질이니 생산성은 포기해야한다.

왜? 우리는 개발도상국이었던 2000년이 아닌 2023년의 선진국이라 세상이 다 그 기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병원이 편의점 수준의 접근성이라 어제 발견한 수십 년 된 발바닥 점이 암이라며 진료실에 당도해 소리 지르는, 폭증한 의료수요를 워라밸이 우선인 생산성 극저의 의료진이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재원은 예전과 같아서 사칙연산을 해도 의사를 많이 뽑아서 예전에는 의사 1명이 하던 일을 3명이 나누어야 가능한 2023년이 됐다. 그리고 오는 2030년에는 2000년 의사 1명이 하던 일을 5명이 나눠서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교육 역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공격받아 마땅하다. 의대 교수는 대부분 병원에서 임상 진료를 하고 있으며 그런 그들에게 학교에서는 정말 매일매일 할일들을 메일로 던진다. 중간 평가, 기말 평가, 멘토링 연구수업, 정규수업, 개인상담, 수많은 교육이수 그리고 연구비 수주와 그에 따른 결과물 제출, 승진용 논문 제조 그리고 전공의 정원을 받기 위한 요건을 맞추려고 학회 활동도 해야 한다.

솔직히 교수 때려 치고 계약직 촉탁의 아니면 임상교수하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워라밸 극강인 주니어들이 대학으로 오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서 또 미국이나 유럽 기준으로 맞추라고 기존 인력들을 쥐어짤 텐데 누가 의대 증원을 찬성하겠는가.

김밥도 3배 이상 올랐는데 수가는?

2000년 김밥천국에 가면 김밥이 1,500원이었다. 이모님 혼자 정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군분투하며 김밥 말고 라면 끓이고 바쁘면 딸내미가 와서 무급으로 일했고 그렇게 벌어서 그 딸 대학 보내고 시집보냈다.

2023년 웬만한 김밥은 5,000원 정도 한다. 3배 이상 비싸졌다. 이제 이모님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최저시급보다 더 많이 줘야 움직이는 알바를 최소 3명은 두어야하고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재료비가 오르니 당연히 우리는 그 가격을 내야한다고 생각하고 김밥 한 조각 남기지 않고 귀히 먹는다.

다시 2023년 병원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2000년보다 수가를 3배 받고 있지 않다. 2000년 1만2,000원이던 외래초진료는 2023년 1만7,000원으로 13년 동안 5,000원 올랐다. 매년 수가 인상률도 물가 상승률에 밑돈다.

2023년 김밥천국처럼 인건비 상승 즉, 알바생의 생산성은 낮지만 높은 워라밸 지상주의와 경쟁적으로 지어낸 7성급 호텔 같은 건물들, 세상 최고의 기계 확보 및 모든 원재료비 상승이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3배 오른 김밥천국처럼 가격도 못 올리고 엄한 알바생만 괴롭히고 있을까.

어차피 ‘의사놈들’이라며 욕먹고 있다. 의대 증원은 시대의 요구다. 단, 우리는 이제 메뉴판에 김밥 5,000원 기재를 선행하는 작업, 의사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의대 요건 확보 등을 치밀하게 협상해야한다. 친절하고 실력 좋은 의사나 소 닭 보듯이 환자 보아내는 의사나 같은 수가를 받는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하는 병원장이나 의대 학장들은 치열하게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숫자하면 우리 아닌가. 의대 내 인재들을 활용하고 의료경제경영전문가의 자문비는 이 때 지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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