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 포항여성병원 산부인과장

필자는 모 의과대학 교수로 22년간 재직한 후 의원면직했다. 의원면직을 택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무엇보다 의대 교수로서 교육과 진료를 병행하면서 관심 있는 연구 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회의를 느껴서다. 의대 증원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시점에 교수가 교육·연구·진료를 균형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의학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포항여성병원 산부인과 한명석 과장 
포항여성병원 산부인과 한명석 과장

필자의 전공은 산부인과다. 대표적 기피과로 알려져 병원 내 전공의 수급도 원활하지 않은 것이 산부인과의 현실이다. 그러나 학부 의학 교육에서는 내과·외과 등과 함께 주요 과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의사 국가시험에서도 비중이 작지 않은 까닭에 강의 시간도 많고 학생 실습시간도 많이 배정되어 있다. 하지만 근무했던 학교는 산부인과 전임 교원이 4명에 불과해 학생 교육이 파행적으로 운영됐다.

의대 강의는 쿼터제로 운영된다. 약 한두 달 사이에 산과·부인과 강의가 집중되는 커리큘럼이다. 한 주에 한 명의 교수가 적게는 3~4시간, 많게는 10시간 정도 강의를 한다. 이렇게 약 6~7주간 수행한다. 그 사이 시험도 치르니 강의 기간은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최근에는 교육 행정 규정(시험감독 수행 등)도 늘어나 더욱 교수들을 힘들게 한다.

강의 기간에도 수술 등 진료는 해야 하니 강의 준비가 원활하지 않다(학생 입장에서는 낯선 내용이니 질적 내용에 대해 평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연차별로 전공의가 있다면 진료를 일부 맡기고 강의에 집중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점은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당직 다음 날도 강의나 수술·회의가 많다. 집중력과 체력이 되는 젊은 시절에는 힘들게나마 수행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그만큼 진료와 강의를 동시에 해야 할 때 버거움을 느꼈다. 학생 평가조차 문항 만들기가 버거워 평가가 소홀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교육은 다년간 경험을 쌓은 교수가 수행할 때 그 지식의 내용과 깊이가 달라진다. 피상적인 지식보다 학생을 지도하며 얻은 경험과 진료 경험이야말로 학생들이 산부인과 내용에 좀 더 친숙해지게 돕는다. 그래서 오랜 교육 경력이 중요하다.

강의 기간에 진료를 중단할 수도 있으나 진료를 중단하면 교수 개인에게 지급되는 진료 수당 등이 없어진다. 결국 강의가 적은 다른 과 교수보다 급여가 줄어준다. 임상 교수 급여 재원이 병원 수익에 기반하고 있기에 강의로 인해 진료가 중단되면 급여 생활자인 교수 개인의 수입은 감소한다. 외부 강사를 초청해보기도 했지만 강사를 구하기도 힘들고 학교는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부 강사 초청을 제한한다. 지급하는 강사료도 너무 미흡해 수월하지 않다.

수익에 집착해서 정작 중요한 교육은 방치하는 사립대 병원의 행태에 대해서는 증원에 앞서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병원에 산부인과 교원 증원을 여러 번 전달했으나 산부인과는 진료 수익이 적다는 이유로 매번 퇴짜 맞았다. 교원 수급은 학교가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임상 교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학장은 권한이 없다. 병원장의 의사를 대신하는 기획조정실장이 교원 모집 관련 인사위원회에 참여해 임상 교원 수급에 실질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다. 병원은 오로지 수익만 기준으로 교수 정원을 책정한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증원을 요청하는 대학들은 대학병원 교원 수가 충분하니 증원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 교원은 진료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 내용에 맞춘 전임교원 수를 세부적으로 비교하면 충분히 교원을 확보했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학교가 많을 것이다.

대학병원을 표방하지만 수익 중심인 사립 종합병원과 별 다를 바 없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현재 대학병원은 수익에 몰두한 구조다. 교수회의에서 과별 수익을 비교하고 직간접적으로 교수 개인에게 수익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수익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교수 연구 활동 등을 제한하기도 한다. 교수 가운데서도 수익에 몰두하고 논문 등 교수로서 자질 향상에는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

의대 교수의 논문 업적을 조사하면 한심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논문이 교수의 모든 것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변변한 원저 논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교수가 어떻게 지식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지식을 판별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국가시험 대비 학원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의대 교육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의대 증원 논의가 한창이다. 필자는 주요 과목의 자질 있는 전임 교원을 충분히 확보한 학교에 한해 증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부인과는 각 세부전공별 2명 이상 교원을 확보한 학교,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교수가 적어도 8명에서 10명은 확보된 학교를 대상으로 증원을 논의해야 바람직하다.

단, 필자의 이같은 의견이 특정학교에 유불리 조건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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