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 전 한국의료윤리학회장(단국의대)

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가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가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리도 황망히 가시다니요.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인생 여정에, 맑고 밝은 이정표가 사라진 기분입니다. “잘 지내지요? 늘 보고 싶소, 정 교수~” 따뜻하고 정갈한 교수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를 울리는데, 교수님이 부재한 지구별의 첫 새벽이 밝아옵니다.

3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대학병원 내 금연클리닉을 시작하면서 금연운동협의회 부회장이신 교수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담배는 남자라면 당연히 피울 줄 알아야 하는 일종의 기호품이었고, 열차나 버스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의 흡연도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금연을 모토로 하는 시민운동이나 한국금연운동협의회의 발족을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보건학자이자 역학자로 일찍이 흡연의 해로움을 간파하신 교수님은 상아탑 안의 지식을 꺼내어 시민들의 삶 속으로 풀어내는 선각자셨습니다. 이후 한국금연운동협의회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금연 운동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대한금연학회를 창립하시고 초대 학회장으로 더 넓고 탄탄한 길을 다져주셨지요.

문학청년의 풍모가 더 잘 어울리는 교수님은 해부, 생리, 생화학, 기생충학 등의 기초의학 교육과 내외산소를 비롯한 임상의학 교육만 소화하기도 버거운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이 역시 ‘소금사막에 물대기’처럼 당시로서는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지요. 1997년 의료윤리교육연구회를 조직하시고 같은 해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후 학회는 전국의 의과대학에 의료윤리교육을 정착시키고, 전공의 윤리와 졸업 후 윤리교육, 그리고 우리 사회의 생명의료윤리 제반 사항을 다루는 한국의료윤리학회로 성장하였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시작된 의사파업을 겪고 난 저는 의사파업의 윤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작성한 논문의 초고를 교수님께 보내드렸더니 기꺼이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몇몇 완고한 심사위원들은 명색이 의과대학 박사 논문인데, 실험도 없고 통계도 없는 논문을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실험과 통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위 취득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아직 의료계에 없는 지식과 통찰을 더하는 연구가 더욱 귀하다”며 다른 심사위원들을 설득해 주셨습니다. 심사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값비싼 식사대접은 윤리적이지 않다며 국밥 한 그릇을 맛나게 드시던 교수님의 담백한 자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당연한 금연 운동이나 의료윤리 교육이 30년 전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이 무관심한 주제였던 것을 생각하면, 교수님은 당대에 중요한 이슈를 넘어 미래 사회에 어떤 것들이 더 중요해질 것인지를 미리 파악하는 혜안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한 현재야말로, 먼 훗날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교수님의 가르침이 필요하신 시기인데, 이렇게 떠나시니 너무도 아쉽습니다.

정유석 단국의대 교수
정유석 단국의대 교수

삶을 여행으로 비유한다면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서의 선택들이 그 사람의 여정, 곧 인생이겠지요. 그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특히 인적 없는 사막이나 깊은 산속과 같이 외롭고 힘든 길을 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겠지요. 교수님은 제 인생에서 큰 걸음으로 길을 내시고 함께 해주신 ‘동행’이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평생 추구하셨던 신앙대로 하느님 품안에서 평안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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