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생아집중치료실 전담전문의

산전 진찰 소견은 계속 정상이었다. 엄마는 이전에 유산했던 적도 없었고, 건강엔 자신 있는 편이었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첫째도 순산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리라 기대했다.

운명의 공격은 출산을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갑자기 찾아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태아의 모니터가 급격히 흔들렸다. 제왕절개로 급히 아기를 꺼냈지만 초음파로 들여다본 아기의 머리 속은 안타깝게도 이미 상당한 출혈에 이은 수두증이 진행중이었다. 검사 결과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놀라운 것은 부모의 반응이었다.

“아기를 포기하고 싶어요. 아무런 처치도 하지 말아 주세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갑작스러운 병이나 조산으로 인한, 아기의 치명적인 상태를 처음 설명할 때 납득하지 못해 한사코 괜찮다는, 나아질 거라는 대답만을 원하는 부모의 격한 반응엔 늘 진땀이 나지만, 그래도 이해는 간다. 나도 아이가 있고, 그를 포기해야 한다면 삶이 무너지는 기분일 테니까. 그런데 이런 뜬금없는, 지극히 냉정한 반응이라니.

“영상 결과가 안 좋긴 합니다만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순 없어요. 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많아도 그렇지 않…“
“아니요, 우린 이 아이를 살리지 않겠습니다. 수술이나 처치에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꾸하는 엄마에게는 알고 보니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시설에 들어가 있지만 긴 세월 온 가족의 희생이 요구되었고, 중증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어떤 엄마인들 내리사랑이 없겠는가. 또 이토록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사회에서, 자식에게 적어도 심각한 결점은 없길 바라는 것 역시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아기는 이미 생사의 고비를 넘겨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수술적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그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저 장애의 확률과 정도만 올라갈 뿐.

그래도 부모들은 강경하게 버텼다. 의료진 및 병원 사회사업실과의 면담, 설득이 이어졌고, 아동 학대를 언급하는 법조인들의 경고도 가세했다. 이런 와중에도 소란의 주인공은 그저 천진한 얼굴로 매일 하루만큼의 시간을 새겼고, 그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토요일 오전, 주말 당직의 시작이었다. 입원 환자도 많지 않은데다가 상태도 다들 안정적이라서 제법 느슨한 마음이었다.

“이제 병상이 좀 차야 되는데…”

아뿔싸, 생각만 한다는 것이 그만 입으로 나와 버렸다. 환자가 많든 적든 정해진 근무 시간에 따라 일정한 급여를 받는, 제 아무리 속 편한 월급의사라지만 요즘 같은 출산 절벽의 시절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거시적인 우국지정이 그 표면적인 이유라면, 당장의 일자리 보전이라는, 개인적이지만 더욱 절실한 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가한 티를 내면 꼭 바쁜 일이 터진다는 징크스가 있기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아니 되었다. 근거는 없어도 좀처럼 빨간 펜으로는 이름을 쓰지 않는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나른함을 깨고 울리는 휴대폰 화면은 익숙한 응급실 번호를 띄웠다.
“방금 집에서 낳은 아기인데 25주밖에 안됐답니다. 구급차에서 씨피알(심폐소생술)하면서 오는 중이라는데요, 거리가 멀어서 30분은 걸린답니다!”

맙소사.

내 지식과 경험의 깜냥 속에서 태아 나이 25주의 분만은 설비와 인력이 준비된 상태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사건이다. 십중팔구 일 킬로그램도 채 안 되는 이런 아기에겐 출생과 동시에 적극적인 호흡 보조와 함께 습도 및 체온 유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초기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러 합병증 때문에 생명의 불씨가 쉬이 꺼질 수 있는 것이 초미숙아인데, 구급차에서의 처치만으로 30분 넘게 버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우면서도 솔직히 마음 한편에선 이미 디오에이(도착 시 사망 상태)를 선언하고 있었다.

잠시 후, 출입구가 소란스러워지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오렌지색 유니폼들에 둘러싸여 조막만 한 주인공은 보이지도 않는다. 축 늘어진 800그램짜리 아기의 모습은 영장류라기보단 양서류에 가깝다.

지체할 것 없이 손톱만 한 입을 벌려 빨대 같은 튜브를 넣는다. 명함 크기의 가슴에 진동한동 청진기를 대 보는데 웬걸, 느리긴 해도 분명 익숙한 그 소리가 들린다. 앰부(호흡주머니)를 쥔 손에 몇 번 힘을 주니, 거무죽죽하던 아기의 피부색도 바알갛게 생명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후 내내 후속 처치들을 하고 나니 어느새 땅거미가 졌다. 열대 식물원처럼 김이 서린 인큐베이터에 바짝 얼굴을 붙이니, 싸릿대 같은 팔다리지만 제법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다. 뻐끔뻐끔 입술도 달싹이며 소변도 보기 시작했다. 갈 길이 구만 리지만 안정적인 모니터 숫자에 일단은 한시름 놓았다. 조금 전 만난 아기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 아기 괜찮은 거죠? 나와서 잘 울었단 말예요. 잘 닦아주고 덮어줬어요.”

칠삭둥이도 안 되는 꼬맹이가 울어 봐야 얼마나 잘 울었겠나 헛웃음이 나면서도, 사연 깨나 있으려니 했지만 짐작보다 더 암담했다. 사기죄로 수감 중인 아기 아빠와 소년원에 있는 아기 누나(전남편과의 아이)와 조울증을 진단받은 아기 엄마가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신파.

산부인과 차트에는 조기 진통의 병력과 함께 ‘치료 거부’, ‘탈원’이라는 기록도 있었다. 진절머리나는 사건들 때문에 친지들은 다 떨어져 나갔고 엄마는 그렇게 혈혈단신, 핏덩이를 낳고 탯줄을 자르고 구급차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 아기는 열심히 살아남는 중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읍소하는 엄마는 몹시 초라해 보였다. 단지 산모라는 이유보단 그 삶의 굴곡으로 생긴, 나이보다 많은 눈가의 주름이, 몸에 밴 흡연의 흔적이, 항정신성 약물의 부작용인 듯 느릿느릿 쥐어짜는 음성이 더욱 안타깝다.

그래도 그 사람이 바로 아기에게는 절대적인 후원자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의 원천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혹독한 시련들로 인해 임신 기간 내내 술담배를 지속하고 치료를 거부했을지언정, 모성은 여전히 압력솥처럼 끓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아기는 놀랍게도 큰 합병증 없이 3개월여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예후를 좀먹는, 초미숙아에게 흔한 뇌 백질 연화증이나 동맥관 개존, 괴사성 장염도 없었고, 망막병증이 생겨 레이저치료는 받았지만 그 결과도 양호했다. 첫 돌 무렵까지 정기적으로 외래에서 만나온 아이는 살도 제법 붙고, 잘 걷고, 똘똘해 보였다. 사랑을 받고 자라는 태가 났다.

그런데 엄마는 곧 교도소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아기 아빠와 연루되어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결국 징역을 살게 되었다고. 법적으로 생후 18개월까지는 교도소에서 아기를 키울 수도 있지만, 어차피 그 이후에는 친인척이나 양육시설로 보내야 하므로 미리 떼어놓고 타지에 있는 종교 기관에 임시 양육을 부탁하기로 했단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기구한 팔자에 안타까움을 넘어 맥이 탁 풀렸다. 그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끊어졌다.

강인했지만 조금 무모했던 그 엄마를 떠올리자, 지금 이들의 고집 또한 그녀와 다를 게 없는, 사랑의 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비정하고 이기적인 결정처럼 보이지만, 그 동기가 단순한 부모 자신들만의 안녕이나 욕심 따위가 아니라면?

결국 가장 힘든 것은 아픈 본인일 터, 사랑하는 아기에게 고통뿐일지 모를 평생을 짊어지우려 하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본 적 없는 내가, 감히 그 행위를 평가해선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아니, 애초에 이런 문제에 옳고 그름이란 게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한참을 버티던 부모는 결국 마지못해 치료에 동의하였고, 일차 수술을 마치고 앞으로의 기나긴 치료를 위해 연고가 있는 다른 병원으로 떠났다. 엄마는 퇴원 전까지 아기를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그에게 말을 많이 걸지는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여기까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가 시행된다. 상반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신고 출생 아기들의 충격적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른 제도적 보완인데, 비교적 늦은 감이 있고 예상되는 부작용들도 있지만 어쨌든 소아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방치되는 아기들을 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된 것이니까.

그렇지만 결코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정책이 지켜주는 것은 그들의 생명일 뿐, 삶은 아니기에.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할 지점은, 자식을 사지로 내몬 부모들에 대한 피상적인 단죄가 아니라 부모임에도 그들에게 유일한 것이었던 ‘포기’라는 선택 자체에 대한 공동의 고민이다.

모든 고통의 무게는 결국 당사자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제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타인은 그것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앞서 밝힌 사연들 역시 어설픈 도덕적 판단이나 단순한 교훈 같은 것을 말하고자 꺼낸 것은 아니다.

난 그저 그 이야기들의 결말이 궁금할 뿐이다. 어떤 삶이든 행복의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고, 각자의 파란만장 끝에 오롯이 피어나는 미래가 아직도 헷갈리는 내게 그런 확신을 심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인생의 긴 여정을 가장 절망적인 형태로 시작해야 하는,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말해 주고 싶다 ― 세상에 있는 모든 형태의 불행은 어쩌면 우리에게 온갖 방식의 사랑을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불행이 생길 리 없을 테니까요 ― 하고,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수상소감 이동준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점점 더 많은 무용無用과 마주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직까지 다수가 인정하는 최고의 가치인 인간의 생명에 관여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여전히 꽤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의 부모로서, 여러 모로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이렇게 병원 안에 틀어박혀서 진료만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일개 봉직의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할(것이라고 생각되는) 일’ 들 사이의 괴리감이 커질 때, 글을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 그 조급함을 가라앉히고 불필요하게 발산되어 희석될 뿐인 분노나 열등감 같은 감정들을 여과시켜 다시금 제 안에 그러모으게 만드는 수단입니다.

수많은 작가들의 문장을 선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느꼈던 그러한 감동의 일부라도 글에 담아내보려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습의 시간 때문에 언제나 결과물은 그저 딱딱하고 납작한, 재미없는 일기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한 꼭지라도 더 써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현재 저의 입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삶의 편린들을 어떻게든 남기고자 하는 발버둥일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위기의 저출산 시대를 맞아,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당연히 여기는 정상 출산의 반대편에서 생을 시작하게 되는 가족들의 모습을 나누고, 태어남과 살아감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었습니다.

서툰 글임을 잘 알고 있지만 선정해 주신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의중를 헤아려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고의 격려이자 채찍으로 여기고 그 취지대로 환자와 깊이 공감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의사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애써주신 모든 심사위원들과, 매번 좋은 기회로 응원해 주시는 청년의사, 한미약품에 감사드리며, 늘 저를 새롭게 해주는 아내와 딸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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