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환자용식품…수가는 낮고 관리는 부실하고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스스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영양보충이 쉽지 않다.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더라도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환자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환자에게는 정맥영양이나 경장영양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경장영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중영양치료료라는 수가가 신설된 것도 2014년 9월이다. 수가 신설로 건강보험 제도권에 들어오긴 했지만 경장영양에 필요한 유동식(환자용)이나 피딩백(Feeding bag)·튜브 등의 관리체계는 부실한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처럼 ‘메디컬 푸드법’을 제정해 환자용 식품을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환자용 식품 시장 규모는 2010년 300억원대에서 2015년 500억원대로 연평균 10.8% 성장률을 보였다. 환자용 식품을 사용하는 환자도 2010년 5만7,000여명에서 2014년 8만여명으로 늘었다.

급여권 들어오면서 꼬였다?

경장영양이 급여권으로 들어온 건 지난 2014년이다. 정부는 선택진료 폐지에 따른 중환자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수가 조정 차원에서 ‘집중영양치료료’를 신설했다.

경장영양에 대한 수가 신설이 논의되던 당시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는 병원들이 NST(Nutrition Support Team, 영양집중지원)를 운영해 환자영양관리에 신경을 쓰려면 주 1회 기준 16만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NST는 의사와 간호사, 약사, 영양사가 한 팀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수가는 학회 요구의 4분의 1도 안되는 3만6,870원(상급종합병원)으로 책정됐다. 집중영양치료료는 NST를 운영하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2만7,700원)만 주당 1회 청구할 수 있다.

경장영양식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튜브 등 재료대 비용도 별도 산정되지 않았다.

경장영양이 필요한 미숙아에게 펌프로 일정하게 경장영양식을 넣어주는 경장영양펌프가 급여권에 들어오는 과정도 비슷했다. 경장영양펌프에 대한 수가를 정하는 과정에서 폴리우레탄 튜브보다 싼 실리콘 튜브만 포함됐다. 두 튜브의 가격차가 10배 가까이 나는 만큼 저렴한 실리콘 튜브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한림대동탄병원 외과 신동우 교수는 “경장영양펌프가 신의료기술로 등록돼 비급여로 쓸 수 있었을 때는 1회에 1만8,000원 정도였는데 상대가치점수(수가)를 정하는 과정에서 폴리우레탄 튜브는 실리콘 튜브보다 10배 정도 비싸기에 산정 불가 대상이 됐다. 그리고 수가는 2,400원 정도로 정해졌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실리콘 튜브는 모양을 유지하려면 벽이 두꺼워야 한다. 그래서 같은 두께라고 해도 유동식이 들어가는 내경이 좁고 딱딱하다. 반면 주삿줄로 많이 쓰이는 폴리우레탄은 실리콘 튜브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내경도 넓다”며 “폴리우레탄 튜브를 산정할 수 없다고 한 건 비급여로도 받을 수 없고 환자들이 사와서 쓸 수도 없다는 의미다. 폴리우레탄 튜브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월 발표한 회수 대상 유동식 공급용 피딩 백·튜브(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호르몬 검출된 경장영양 용기·튜브가 불러온 파장

환자용 식품을 관리하는 별도 체계가 없다보니 자라분말이나 자라기름 등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환자용 식품으로 등록되는 일도 생겼다(관련 기사: 자라로 만든 기름이 특수환자용식품?). 유통경로가 불투명하고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서 출시하기 어려운 환경 등도 문제로 꼽혔다.

식약처는 지난 2016년 12월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을 개정해 당뇨환자, 신장질환자, 장질환자 등 질환별로 한정해 구분했던 ‘특수의료용도 등 식품’을 환자용 식품으로 통합했다. 기존에는 환자용 균형영양식, 당뇨환자용식품, 신장질환자용식품, 장질환자용가수분해식품, 연하곤란환자용 점도증진식품으로 분류돼 있었다. 2016년 기준 환자용 식품은 총 138개다.

경장영양식 투여에 쓰는 용기나 튜브에 대한 관리체계도 부재하다. 때문에 최근 일부 유동식 공급용 피딩백과 튜브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돼 판매 금지되면서 일선 현장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식품용 기구로 부적합한 피딩 백·튜브 제품들이 유동식 공급용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5개 업체가 판매하는 6개 제품을 회수하고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들 제품은 환경호르몬 물질인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이소노닐프탈레이트(DINP), 디이소데실프탈레이트(DIDP) 등 프탈레이트가 용출규격을 초과해 검출됐다.

학회 조사에 따르면 피딩 백과 튜브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 7곳 중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은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2곳뿐이지만 시장 점유율이 낮다. 생산하는 제품이 적다는 의미다. 이에 식약처 판매금지 조치 이후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은 피딩 백과 튜브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두 배 이상 뛰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동식 공급용 피딩 백과 튜브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대형병원들은 일회용 경장영양식인 RTH(Ready To Hang)로 교체했다. 경장영양식과 공급용 피딩 백과 튜브가 일체형인 RTH는 학회가 권장하는 방식이지만 다른 제품에 비해 비싸다.

문제는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이다. 특히 정액수가제로 묶여 있는 요양병원은 경장영양을 모두 일회용으로 교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존에도 튜브 등 경장영양식 투여에 필요한 재료대를 한 달에 한번 정도만 교체하는 곳이 많았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유통되는 환자용식품의 41.3%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사용됐으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18.0%, 병·의원 10.4%이다.

경장영양식을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환경호르몬이 검출된 제품들을 지난해 12월부터 회수했고 식약처가 공식 발표한 건 올해 2월 28일이었다”며 “그 이후 2주에 한 번씩 튜브를 교체하던 요양병원도 비용 문제 때문에 한 달 넘게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쉽게 말하면 밥그릇을 한 달 넘게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 요양병원 원장은 “수가 자체가 정액으로 묶여 있어 재료대를 따로 청구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 한 달에 한번 정도 교체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죽이나 미음을 쑤어서 환자들에게 주는 요양병원도 많았지만 지금은 제품이 잘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 그걸 사용한다”고 말했다.

“문제 드러났으니 정부가 책임져야”…‘메디컬 푸드법’ 제정 필요성 제기

환경호르몬이 검출된 피딩 백과 튜브를 판매금지한 것을 계기로 경장영양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서정민 교수는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백과 튜브를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는 없다. 늦었지만 정부가 잘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백과 튜브는 비싸다. 결국은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피딩 백과 튜브 구입비를 환자에게 받으면 불법이다. 결국은 정부가 별도 수가를 만들어서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보험을 적용해서 보상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 왔지만 현재 경장영양식이 식품으로 분류돼 있어 보험 적용이 어렵다고 한다”며 ‘메디컬 푸드법’을 제정해 관리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 교수는 “우리도 선진국처럼 환자용 식품에 대한 별도 법을 제정해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국내 경장영양식 업체들이 수출을 할 수도 있고 해외 제품들을 우리가 수입하는데도 수월하다”며 “별도로 법을 만들면 경장영양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업체들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환자용식품 세계 시장은 2015년 41억3,000달러에서 2020년 59억5,000달러로 그 규모가 연평균 7.6%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 “환자용식품은 국민 건강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산업도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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